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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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해하는 존재들은 소실이지 소멸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더욱 간절히 붙들여 메어두려 하는 것이다. 실체가 눈 앞에 있으니 포기를 할 수 없는건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든 곁에 두려 하겠지. 옥주가 묵호를 생각하듯, 묵호가 좀비가 된 상황에서도 무의식 중에 옥주를 키지려 하듯이 말이다. 어딘가 하나씩 어그러져 있더라도 화자들에게는 이 존재는 여전히 유의미함을 알려주고있다. 과한 상상은 내가 닿아있지도 않은 미래의 사건들에도 만약이라는 전제를 두면서 나라면 어떠할지 괜한 고심을 하게 만든다. 이러저러 잔꾀를 부릴 생각을 하지만 결국 결말은 그거다. 어떻게든 지키는게 맞다는 것에만 집중하겠지. 그리고 지키겠지. 그러니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내가 널 기다리고 있어'로 이어지겠지. 그게 꽉 닫힌 결말이겠지.

📖울컥 치민 울음을 찾기 위해 내뱉은 말이 고작 저거였다.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못 배웠다. 비위를 맞추거나 변명하는 것만이 내가 배운 삶의 방법인데, 옷장 밖의 세상에선 저런 말들보다 고맙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내뱉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셈이다.

어린 시절의 제때 받지 못한 사랑과 보살핌. 그나마 붕어빵 사장님에게 얻고 자란 귀한 마음. 사랑도 받아봤어야 표현하고, 타인에 대한 상냥함도 교육이 되어야만 행동 할 수 있었던 아주 여린 것들이었다. 불쌍하다는 마음 너머에 보살피려는 마음을 생각해본다. 나라도 이 여린 것을 보살펴줘야 더는 허튼 마음 안 쓰고 쭉쭉 뻗어가며 자랄 것 같아 애틋한 시선을 주는 어른이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게된다. 사랑도 반복학습이고 다정함도 계속 자극받아야하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감정 교류라는 것을 느낀다. 묵호든 옥주든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그랬지 롤모델이 된 붕어빵 사장님은 이걸 알면 얼마나 뿌듯해하실까. 또 얼마나 팥소를 두둑히 넣어 붕어빵을 구워주셨을까 그려보면 므슨 죄가 이들을 그리 내몰리게 했나 싶어 이 상황이 원망스러워진다.


📖아빠가 기억하니 괜찮아. 기억은 한쪽만 가지고 있어도 괜찮아. 아빠가 엔딩까지 잊지 않으면돼.

남은 자가 기억하면 된다는 슬픈 약속. 같이 기억하면 제일 좋은데 매번 그러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게 국룰인가봐. 매번 눈물바람이되거나 남겨진 사람만 하염없이 그리워해야 되는게 당연시 되어지는 관계성에 현실이든 소설속이든 서러울 뿐이다. 시체같은 엄마를 바라보는 막막한 기다림. 3년 전 사라진 아빠를 기다리는 공허함. 자폐아인 딸을 홀로 키우며 나아지는 날이 있으리라 막연한 믿음으로 사는 삶. 다들 남겨진 자로서, 남보다 멀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든 싫든 모든 과정을 기억하게되는 사람. 그래서 미안하다. 좋은 기억만 줬음 싶은데, 그보다 더 큰 실망과 슬픔의 기억까지 얹어준 듯 하여 남겨진 이들이 더더욱 안쓰러워진다.



📖입에 담긴 건 고작 말 한 모금뿐인데, 그걸 종일 뱉어 내야 하는 하루. 그 한 모금을 하루 종일 흘려보낼 수 없으니까 아무거나 막 뱉는 거지. 세상의 온갖 일들. 내 머릿속에 있는 온갖 문장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엄마에게 세상을 실어다 주는 마법사가 된 느낌이야. 내 입에 웅크린 세상이 있어. 사탕처럼 달콤하고, 단단하고, 깨지면 혀에 피를 내는, 달고 아픈 세상이.

시체같은 상태의 아픈 엄마. 껍데기만 남은 엄마. 존재는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쓰다듬어 주거나 포옥 안아 줄 수 없는 존재. 원하는 것 보다 단념하는게 더 많아지는 관계성. 그럼에도 끌어다 놓고 괜한 말들로 당신의 움직임을 기대하는 애틋한 간절함. 대답하지 않을걸 알지만 종일 떠드는 건 이렇게라도 해야만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내가 자각할 것 같아서 해보는 악착같음에 이 상황이 SF소설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도 심심찮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입이라도 놀려보며 대답없는 이에게 질문하고 시선을 맞춘다. 입이 바쁜 것도, 진이 빠지는 것도 결국 나라도 이 과정을 해야만 덜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헤어질 때를 놓쳐서는 안 돼. 놓아주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안개 속에 갇히게 되니까.

그걸 다 알고 있으니까 때를 어기고 싶어진다. 다들 같은 맘일거다. 놓아주어야 할 때를 알지만 놓지 못하지. 내가 먼저 손을 뿌리치진 못하지. 그게 매번 약자의 마음인냥 내가 더 좋아하고 애틋해서 그런 것이라 여길 수 밖에 없는 을의 마음이지.




📖우리는 욕심이 없잖아. 많은 걸 바란 적이 없잖아.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3부작의 인물들은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들아니다. 어디서든 흔하게 볼 법한 그냥 지나가는 행인1,2로 여길만한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고, 주목받길 바라지도 않은 인물이다. 그래서 새로운 땅에서 우두머리 노릇 하길 바라는 욕망덩어리가 아니다. 그저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니 조용조용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살고싶어하는 여린 것들이라 이러한 바람들이 더욱 가엾게 여겨진다.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과 평생 쿵짝쿵짝 맞춰가며 살아간다면, 평생 어떤 고난이 와도 홀 케이크 한 판으로 모든 하루를 이벤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우리는 늘 미래를 암묵적으로만 공유해 왔다.

그냥 사람을 사랑한 것이었다. 여기서 동성이나 이성에 대한 세부적인 갈래가 아니라 나랑 같이 살아도 될만한 동반자를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래서 사사로운 일상의 공유가, 같은 결을 띄고 있는 마음의 갈래가 나란함에 미래를 맡겨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평생 함께 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행복은 그렇게 나란하게 이어지리라 여겼는데, 이게 과한 바람이었음을 보여줬다. 뇌종양에 걸려 존엄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엔 아내는 나와 같은 생물학적 생존의 형태를 띄지 않고 있었다. 좀비로 그득한 상태. 아내 또한 온전한 살아있음이 아닌 상황. 이게 재난이지 뭐 더 다른게 있을까 싶은 암담한 상황. 다들 좀비가 되든 상관이 없는데, 내 사람이, 내 평생을 함께 이어가리라 믿은 배우자가 그리 되었다는 것에는 여전히 실감하기 어려운 극단의 상황이며 최악의 감정 소모였다.



📖작가의 말_ 내가 이 장르에서 느낀 주된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사무친 슬픔이었고 죽어버린 자, 살아남은 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해피엔딩은 없는 장르였다.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 위에 덧얹어진 좀비 아포칼립스의 결합체. 감염과 붕괴라는 큰 주제안에서 우주선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한계성. 살리고 죽이느냐에 대한 선택의 과정속에서 느끼게되는 감정이 1부에 집약되어있다. 2부에서는 탈출하지 못한 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이 연대하며 살지만 불안은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담겨있다. 목표점에 다다르면 확실한 행복이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한다는 생의 지속성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건지를 이야기한다. 마지막 3부가 서사의 완성. 인류가 사라지고 멸망에 이르는 불안한 과정. 사람을 기억하고 지속하는 모습. 좀비가 되더라도 관절이 꺾이고 형태가 뒤틀리더라고 내가 사랑하는 아내임은 변함이 없다는 확신으로 어떻게든 카트에 태워 바다로 향한다. 그 바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바다를 넘어선 또 다른 세상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며 윤슬처럼 빛나는 바다에 다다르길 응원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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