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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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도 있었고, 핀 시리즈 소설, 위픽 단편소설도 출간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내어두던 저자인데 나는 초면이다. 그런데 그 많은 소설을 두고 최신작부터 시작했다. 그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음울함에 빨려가듯 선택한게 이유였다. 저자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 출판사에서는 이러한 문장으로 소개한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까닭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날카로운 유머와 사회상을 두루 담고 있는 소설. 개개인에게 자괴감과 죄의식을 주입하는 시스템과 그럼에도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불가해한 의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며 한 손에 쥐어지는 이 책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할 수 있으리라 추측을 해본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것이 위안이 될지는 일단 완독 후 생각해 보기로 했다.

프롤로그에서 부터 시작되는 저주. 소름끼치게 당혹스러운 것은 아니나 어쩐지 입안이 깔깔해지게 만들고 괜시리 짜증이 나도록 하는 잔잔바리의 악담 교환이다. 휑한 두피를 보고 '저주받았느냐'고 묻는 일면식 없는 초등학생. 그 말에 발끈하기보단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한 저주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저주 할 수 있다며 너를 저주하면 부드러운 머리통에 보기 싫은 땜빵이 생길꺼라며 은근한 웃음과 날선 상냥함을 보인다. 그러한 저주는 진짜 있기라도 할까 싶으면서도 혹시 내 옆통수에 생겼던 스트레스성 탈모와 새치 뭉치또한 누군가의 저주는 아닐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우식은 현재를 살아가며 웃으며 돌려까기와 악담을 잘 하는 나같은 놈인게 분명했다.

📖소소한 저주를 받음으로써 어쩌면 커다란 저주를 피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 ... 남은 생에 더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이대로 '간신히'와 '겨우'라는 단어에 비비적대며 '근근함'을 벗 삼아 죽을 때까지 질척대며 살고 싶었다.

지극히도 평범한 바람들이 가득하다. 다들 이러한 삶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러하니 이게 보편적이라 해두자. 나 만큼이나 우식또한 그저그런 사람이다. 대단한걸 바라지 않음에도 불안은 언제든 존재한다. 우리도 겪어봤지 않던가. 코로나라는 세상의 단절. 그 고립의 시간동안 우식은 휴먼북을 구독하게되는데 이건 그 서비스를 받기 전의 상태이다. 막혀있는 세상을 살기전의 근근함과 세 번의 격리를 겪은 후 받아들이는 따로와 홀로의 시간을 비교하기 좋은 마음을 보여주고있다.


📖안나의 죽음이 슬프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불쌍해서 소년은 조금 더 울었다.

안나의 존재의 유무는 불안 속 버틸 무언가였을까, 곧 자유를 얻게 된다는 기대의 경계선 앞 이었을까. 조기준은 자신이 감금되듯 갖혀있는 이유가 감염도 전쟁도 아니라는걸 어느 순간부터 자각했던걸까. 엄마를 대신해 예쁜 여배우라 불리우는 안나랑 사는게 좋았으니까, 그녀의 관심과 구속이 때로는 애정이라 믿었기에 자진한 벽장 속의 성장과정인건 아닐지 어린 조기준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조기준의 어린시절이 무섭다. 아둔한 것 같아보여도 속엔 영악한 아이가 햇빛을 받지 못 하고 쑥쑥 자라고 있는 느낌을 받게만들었다.

안나의 죽음이 곁에 있는 존재의 상실이라기보단 본인이 여기 기거하는 구실의 상실로 받아들이는 의연한 자세가 이 아이 자체만의 상황인건지, 주변 상황과 여건이 만들어낸 쿰쿰한 인간의 덩어리인지 알 수 없어 조기준의 성장이 무서워진다.

📖저는 누가 밖에서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해보지도 않고. 저는 진짜 나가고 싶은지 저에게 다시 물었고, 간절함을 확인한 후 손잡이를 잡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며 돌렸어요. 문이 열리더군요. 아주 간단히.

처해진 시간이 다를 뿐 기준과 우식은 자발적인 고립을 택했다 봐야 한다. 팬더믹과 전쟁. 평온한 개인의 삶에 찾아든 인물이 아닌 상황 자체의 변화. 난생처음 겪어내는 현상에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어떠한 액션에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타인이 시키는 것들에만 반응하는 과정이 편하고 익숙했던 모습들이다. 타인에 대한 불안 요소는 있으나 두려움이 더 크고, 감염이든 전쟁이든 현상 자체를 놓기보단 눈 앞에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확정짓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불안은 불신을 낳았고, 불신은 자기 확신도 낮추었다.


📖용서를 구하려는 건 아니었으나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는 압니다. 이런 사과가 어떤 죄도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에게는 더 상처가 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불안과 불신을 갖고 각자의 세상을 사는 기준과 우식과는 다른 캐릭터로 비교되는 인물 태공. 우식과 디지털 세탁소를 운영하다 사과를 싣고 나눠주며 특정하지 않는 것들에 사과한다는 인사와 사과를 나눠주는 액션을 취한다. SNS상에서 주목받기 위한 별난 짓이 아니라 진심의 사과와 물질의 사과로 마음을 내비치고 표현하고 있는 대비되는 인물로 2대1의 인물 비교를 담당하고있다.

일련의 사건을 모르는 자들 속으로 피해다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증명하기위해 덮어두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타인의 입에 거론되지 않기의해 희뿌연 존재로 남아있는 기준과 우식에 반하는 또렷한 인물이다. 알음알음 알고 있는 것이지 모든 이가 알도록 수면위에 떠오른 사건이 아님에도 태공은 자신의 딸이 지은 잘못에 대한 사과와 용서를 빌고있다. 아마 디지털 세탁소를 운영함에 있어 가해자의 요청도 있었을 것이고, 피해자의 요청도 있었을 테니 그 둘의 상황과 감정을 모두 습득한 이의 중립적인 마음에서 좀 더 기운 마음의 표현으로 보였다.

태공은 이 진심의 사과 마저도 2차 가해라고 여길 피해자들에게 미안함을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 뉘우치고 있으며, 단순한 잠깐의 사죄로 끝내선 안된다는걸 보여주고있다. 태공은 제 마음이 편하자고 사과하는게 아니라, 저 스스로 잘못을 계속 인지하고 계속 가져야하는 송구한 마음으로 뚜렷하게 남기려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시간과 마음과 금전을 들이더라도 타인에게 남겨진 고통의 흔적은 쉽사리 지울 수 없음을 알리는 자세였다.



📖결국 자발적 실종과 격리를 선택한 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전쟁은 시간이 해결했을테고, 팬더믹은 해당 관련 신약처방으로 해결이 될 것이다. 자발적 실종과 격리는 그 마음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시간만 달리했지 우식이든 기준이든 본인이 가장 저주받았다 생각하고있고, 또 한편으론 가장 축복받아서 빠른 구제와 이전의 삶으로 분명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뭘 더 하려하지 않는 잔뜩 움츠려들어있는 존재였다. 벌떡 일어서기만 하더라도 나올 수 있지만 그마저도 안하는 타인 의존과 현상 탓을 돌리는 딱 그정도의 쪼그라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준과 우식만을 타박하기엔 과거의 팬더믹을 겪은 나도 그 꼴을 했었음에 결국 사람의 내면엔 우식같은 마음도 있고, 태공같은 마음도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기울고 어느 형태로 표출되느냐를 말하고 싶었겠지.

1983년을 살아보지 못한 독자이지만, 코로나시대를 겪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고립과 그 속에서 익숙해지는 고요함. 다시금 얻어지는 일상으로의 복귀 후 드는 낯섦까지. 소설이 현재의 우식과 과거의 기준을 번갈아가며 이야길 하고있고, 사과를 싣고 사과하며 사과를 나눠주는 태공 선배의 모습을 비추며 어느하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비죽비죽 내밀고있다.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길 바라지만 그 이면에는 진짜 이야기들이 아주 곱게 덮여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여겼지만 내가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그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다. 기준이 감염된 바이러스라던가 태공 선배는 진짜 딸 때문에 사과를 하고 다니는건지. 우식또한 더 빨래에서 진짜 모든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게 맞는지. 인물 하나하나 내가 아는게 완벽한 진실인지 진실인척 하는 가장된 또 다른 인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렇게 나도 진실이길 바라는 거짓과 거짓이었으면 좋겠다 빌고싶어지는 진실 사이에서 헷갈리며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며 읽어갔다. 자발적 실종과 격리를 선택한게 자신을 먼저 돌보기 위함도 있었고, 나로 인해 빚어질 무언가의 사건이 우려되어 선수친 자행을 보며 모든 존재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당당하고 이기적이지 못하고 매번 이렇게 움츠리고 숨기 바쁠까를 생각하게된다.


📖하니포터 11기로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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