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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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게 없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교차하는 동네. 모든 것들이 있어서 여기 뤼미에르 빌딩의 거주자들 또한 어느하나 겹치는 캐릭터 없이 모든 존재들이 촘촘히 들어앉아있다. 그래서 더욱이 핍진하지만 이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환상은 아닐지를 가늠하게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살고 있지만 다각화의 시선이 때로는 착각과 오만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하니 있지만 없을 수도 있고, 없는데 있을거라 생각을 하게되는 존재들이 하필이면 800번대 호수에 기거하는거라 여기며 보게된다.

그렇거 있잖아. '하필이면...' 시리즈 같은 것. 이렇게 모아 놓기도 어려울 조합. 그런데 내가 모를 뿐이지 내 주변에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의혹과 생각들. 저자는 그 생각에 이야기를 입혀두었다. 어느 하나 짠하지 않은 존재들이 없다. 하필이라는 말에 또 하나의 자극적인 양념인 '어떻게 하다가...' 로 이어지는 우려섞인 걱정의 마음. 그래서인지 전부 짠내가 풍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 입주민을 지칭하는 평범한 단어들이 없다. 이 조합에 낀다면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어 한 자리 꿰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로 각자의 짠함과 고단함이 묻어있겠지만 유독 이들에게는 퀘퀘한 어둠의 냄새가 유독 짙다.

슬픔을 먹고 사는 박쥐인간. 타인의 슬픔을 관망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영위하는 것. 가출 소년에서 흡연 임산부로 이어지고 다시 거울장난하는 장애인으로 옮겨가는 슬픔의 시선. 모든 것이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약한 존재와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로 위안을 삼는 것을 보면서 우리 또한 박쥐인간의 유전자를 품고 있으나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임을 느낀다. 801호부터 강하게 느껴지는 익숙함. 티나지 않는 나의 다면성과 숨기고픈 성질머리들이 하나씩 까발려지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청에서도 비둘기 밥을 준다는거 그거 진짜야? 여기 책에서만 그러는게 아니고?(허구의 이야기 일 것이라 단정 짓지만 어느샌가 진짜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저자의 사실감 넘치는 문장 덕분에 난 또 홀랑 속는 기분이야) 일단 이야기를 이끄는 존재들은 세상이 만들어 둔 평범함의 기준과 사뭇 다른 특혜 받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청각장애인이며 다른 감각으로 소통을 하는 남자, 왜소증이며 이 남자를 사랑은 하지만 이게 맞는지 계속 의심을 하는 여자.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분류로 인해 채용된 조직에서 이 둘의 만남과 친분마저 시선을 받게 될까 우려하는 여자의 앞선 걱정도 한몫한다. 특히나 공기업이 더욱 그러한 갈래를 반영하여 채용하지만 말이 채용이지 별개의 존재로 선긋기하는 꼴을 심심찮게 봐왔다. 그러니 왜소증 여자 또한 이 시선을 의식 하는 것일테고, 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청각장애인 남자가 의아할 뿐이고, 이 조합을 가십거리인냥 짝짝 씹어댈 멀끔해보이지만 입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간들의 온상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다들 아는 그 꼴이라 예상이 가능했다.

805호는 신박한 내용 전달 구조였다. 두 단으로 나뉜 이야기. 학창시절 암기할 때 쓰던 2단 기록인데 그걸 책에서 보니 생소한데 또 뤼미에르 피플들의 이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문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순환 구도의 이야기. 빚 - 매품 - 돈으로 때리는 게임 - 사고사 무언가 허술한데 그게 또 다들 그렇게 살듯 완벽함 없는 생의 허점 같아 이 순환 구도가 결국 돈과 돈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비단 여기 뤼미에르 피플들에게만 적용 될까? 이 이야기가 10년도 더 된 원작이 있는 개정판인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한 10년 후에나 똑같은 화두가 될 듯한 소재. 자신들의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키우고, 병이 들었다고 외관상 보기 싫다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인간과 버려지는 존재가 마주하는 세상. 온전히 생과 사를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키우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티에게 이입하기보다 마티를 버린 주인에게 화가 나고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 또한 현실과 동일한 결과 처럼 보여 짜증을 유발한다 .(내용이 싫은게 아니라 너무 현실성 짙어서 그러함) 버려지는 것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겪어내는 세상은 동물이 아니라 자립청소년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딛거나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남을 해하고 기득권을 취하는 것과 같은 씁쓸한 결말을 염두해두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보호자에게 버려진 존재는 온전한 세상에 도킹 못 하는 요소를 모두 습득하여 삶을 이어가는 마티가 마냥 고양이로만 보이지 않는다는게 씁쓸한 이유가 된다.


밤섬이 어떤 곳이었더라? 노래로 섬을 재건하는 무당이라 봐야하나 종교인이라 봐야하나?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 앞서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미래따위 없고 현실이 버겁고 하루하루 허덕이는 이야기들이었다. 읽는 과정에서 지치고 암울해진이 우려되었는지 8층 존재들 중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울 마지막을 남겨 둔 듯 했다. 틀림없는 사실은 빛은 다시 돌아오고 희망이 있다면 절망은 저물기 마련이라는 느낌에서 마지막을 '되살아 나는 섬'으로 미리 못박아둔게 아닐까를 생각하게했다.



연민의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 본 다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의 감정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시작은 연민이고 결말은 안타까움으로 마무리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뤼미에르 8층의 기운이 유달리 스산하고 기묘한게 아니라 그냥 이 도시 전체가 그러한데 8층의 입주민들이 조금 더 도드라질 뿐이고, 저자의 눈에 띄였을 뿐이겠지.

우리도 가끔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희안하게 불행 배틀하며 자신의 고단한 생의 역사를 읊을 때가 있다. 결국 그거였다. 그러한 고단함 속에서도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살아오고 있지 않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대단해! 그러니 나 좀 기특하게 여겨줘!' 라는 의중이 숨겨져있다.

그러니 이들에게도 각자의 숨구멍을 찾고 있는 중일테니 마냥 짠하게만 보지 말고, 잘 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중엔 괜찮아 질 거라며 허망한 희망의 말이라도 더 얹어주고 싶어진다.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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