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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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두 아이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상황과 그럴 수 밖에 없던 그간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역시나 떠오르는 순간들을 긁어보면 불행이 더 크게 존재한다. 벽돌집에서의 기억에 행복과 기쁨은 없다. 비, 물, 숲, 산 어느 하나 순조로울 것 없는 자연은 벽돌집을 나서면 아이들을 막아줄 것 없는 세상에 내몰린 것 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해수와 유림이 이야기해주는 벽돌집에서의 생활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그들만의 왕국을 보여준다. 벽돌집은 나라가 지정한 법이든 규율이든 보호받을 권리든 모든게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기서 군림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며 아이들을 굽어살피는 척 하는 어른들. 꼴을 보면 각이 나온다. 날로 먹는 어른들의 더러운 짓거리. 해수와 유림의 일련의 과거들은 모두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되며 여린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내비친다. 죄책감은 없다. 먹이고 재우는데 뭘 더 해줘야겠냐는 듯 되려 큰소리를 내새울듯한 잘못된 방식의 포용이다. 보호받는 듯 보이지만, 방관보다 더한 착취의 과정 속에서 이 아이들이 '파사주'가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굳이 얻급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알 것이다. 스스로 개척해가는 생의 여로는 불행을 극복하기 이전에 살고자하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안간힘일지 모른다. 자신의 곁에 있던 모든 아이가 주어진 틀과 한계를 깨부수며 나올 수 없음을 알기에 유림의 손에 쥐어진 R을 통해 사후의 흔적이라도 그 벽돌집을 나와 유유히 흘러가도록 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사람이 제일 무섭고 사람이 제일 추악하다는 그 말을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알았고 어른들도 알았다. 누군가는 알지만 모른척 했다.

밤중의 야구. 그것도 실내에서 이뤄지며 게임이 아니라 가학의 경기. 어느 하나 말리는 이도 없고, 안되는 것이라며 소리치는 이도 없다. 그들의 행동을 막을 시 다음 타자는 본인이 될 테니까. 침묵이 당연했고, 외면이 어쩌면 더 큰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 여겼을 터. 왜 말리지 않았냐고 악을 써댈 사람은 없었다. 내가 죽을듯 맞든, 니가 죽을듯 맞든 크게 변하는건 없을 테니. 그러니 알아도 모르는척, 모르면 더 외면하는 척을 하며 흐린눈을 했을 그 방 아이들이 측은하고, 그 건물 어른들이 야속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거늘 이러한 상황이라면 사람 자체가 미워지는 걸 겪을 수 있다. 쉽사리 고쳐 쓸 수 없을 인간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빠져나온 건 무덤이 아니라 벽돌집이었으니까. 죽지 않고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죽을 각오를 하고 나와야하는 벽돌집. 평생 죽은 듯 살 것인가, 나오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몇번이고 다시 찾아와 벽돌집으로 박아둘 상황을 항시 고려해며 숨어 살 것인가의 선택지. 무덤은 죽어 마음이라도 편히 쉴 수 있을지라도 벽돌집은 죽어서도 두고두고 원망하고 명치를 사정없이 쳐 댈 만큼 원통한 상황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문장 앞에 나열된 사건들만 봐도 이러한데, 후반까지 다 읽고나서는 어떻게든 빠져나오려했던 아이들의 행동에 이해가 갔고, 비슷한 여건의 영화들도 떠올랐다. 그것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영화였는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실화라고 언급을 하진 않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구석지고 사람의 시선이 덜 가는 곳에서 심심찮게 이뤄질 만한 인간의 잔상이라 문장들을 쉽게쉽게 넘길 수 없었다.


📖식당에 놓고 온 우산처럼 잊어버리고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다. 벽돌집 아이들은 자신을 버린 엄마아빠가 없는 고아로 여기며 자랐다. 하나의말씀에 따르자면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가인이었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야 아벨이 될 수 있었다.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찾아봤다. 대학을 기독재단에서 졸업했고 채플 수업으로 들어봤으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던지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기에 정확한 의미를 알고 책을 봐야 이해 할 것 같았다. 르포 채널이나 꼬꼬무를 통해 봐왔던 사이비 교주와 그들을 떠받드는 신실한 사람들. 그리고 신의 믿음 아래 소외받은 자들을 보살핀다며 아이들을 보육하는데 이는 내가 아는 보육의 의미가 아니었다. 마치 농경 사회에 자식을 많이 낳아 일손을 추가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던 시절처럼 아이 한명은 곧 집단의 수족을 하나 더 늘리는 구실로밖에 여기지 않음을 드러냈다. 뭣모르는 어릴 때 데리고 와야 포섭이 잘 되고, 순종적인 행실을 보여 줄 것이 확보된 작업과도 같았다. 너를 낳아준 이들도 버렸고, 세상이 너를 외면했으나 신께서는 너를 부르시고 품었다는데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원장과 주지는 각자의 파트너와 앞으로 나가 연인처럼 블루스를 추고, 친구처럼 어깨동무한 채 노래를 부르고, 대여섯 살 먹은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그들은 술을 우유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안주를 과자처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할렐루야 아미타불 만세! 이 땅에 크게 외쳐라.

다들 이렇게 말하겠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진 않다고. 그리고, 모든 종교인들이 이러한 행실을 보여주진 않는다고. 하지만 이러한 자극적인 사건에 연류되며 거론 될 때마다 믿음에 대한 의문이 추가될 뿐이다. 일반인으로서의 행각보다 종교인으로서 얻어지는 혜택을 짊어지고 쉽게 가려는 사람들의 검고 찐득한 속내. 이와중에 아이들은 그들의 술시중을 들기도하고, 테이블로 음식과 술을 날으는 일을 해야 했으며, 이 모든 과정들을 알면서도 못본척 해야했다. 이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목숨줄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인 룰 처럼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이며 읽게 만든다. '이게 맞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벽돌집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도, 정말 죽어나가도 잔잔하기만한 벽돌집.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각자의 파트를 쳐내기 바쁜 사람들마냥 좌우를 살필 여력 없이 내 앞에 닥쳐온 일들만 보고 내 몫의 일에만 집중하려는 듯한 아이들의 멍한 눈빛. 누군가 반박을 하거나 찾아 헤메거나 이건 아니라고 한다해도 변하는건 없다. 뉴스 한 줄도 실종 신고 수사도 없도록 쳐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임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었다. 보고 들은게 그런 것이라 아버지라는 분이,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하는 걸 아이들끼리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왔다. 폭력과 갈취는 삐딱한 방향으로 내리사랑처럼 흘렀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때렸고, 울음으로 거짓의 회개를 토해내는 과정. 유림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니라 했던 말을 통해 삶의 의욕을 놓기 딱 좋은 상태로 내몰고 있음을 보였다.


📖해수가 짓밟히는 동안 아버지 선생님은 신도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의말씀을 안 믿으면 여기가 지옥이야.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돼. 너희가 안 믿어서 걔들이 죽는 거야. 그게 바로 지옥이야.

힘을 잃을까 두려워 아버지 선생이 울부짖고, 믿음을 잃을까 두려워 신도들은 눈을 감았다고했다. 뭐랄까, 다음 대사와 다음 표정을 복기하는 듯한 배우들의 열연 과정. 최선을 다해 NG없이 원테이크로 가려는 한 컷의 완벽한 조합처럼 현실이라 하기엔 너무 잘 짜여진 씬을 본 듯 했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믿음을 져 버렸기에 행해지는 죽음은 또 어떠한 영적인 기능을 발휘했길래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는걸까. 인간, 가인, 아벨. 각자가 맡은 배역에 심취해 사람 하나 죽이는게 이렇게 쉬운 걸 보며 해수가 처음은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해수 이전에 또 다른 아이들도 같은 방식으로 내몰았을 거짓의 눈물이 더럽게만 느껴진다.



'카지노 베이비'도 그러했지만, 이번 '파사주'역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그리고 당연하다는듯 이뤄지는 더러운 인간의 온상이다. 픽션이길 바라지만 세상을 그리 선한 사람들만 존재하는게 아님을 매번 깨우친다. 지켜주고 챙겨줄 든든한 어른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들은 어쩌면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어줬을 검은 손이며, 아닌걸 알면서도 잡을 수 밖에 없는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을 낳고 길러낸 생물학적 부모마저 외면한 아이들이니 제 목숨 하나 건사하려면 붙들어야하는 몇 안되는 어른이었겠지. 그래서 더 안쓰럽다. 노동의 착취는 물론이고, 정신적 세뇌와 때때로 이어지는 성적 유해는 어디든 도움을 요청 할 길이 없고, 도망 칠 수 없는 감옥이었을게 눈에 그려져 책 표지 색처럼 아이들의 세상은 늘 회색빛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몰랐고, 이게 나쁜 것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던 세상이라 아이들의 무지가 이상한게 아니라, 그쪽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을 어른들이 이상한 것임을 이 이야기로 씁쓸하게 또 한번 배워내는 중이다.

📖하니포터 10기로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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