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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만났던 작품이 너무 좋았다면, 그 기억을 곱게 넣어두었다가 몇번이고 곱씹어보기도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해당 저자의 행보를 따라가게된다. 손원평 저자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래서 단독 작품은 물론이고, 앤솔러지 출간작도 챙겨보면서 저자가 앞서 바라보는 생각들에 나도 생각을 보태어 머리를 굴려본다. 나에게 답변을 바라는 이는 없겠지만 작품을 완독 한 후 내 생각을 정리하게 만드는 소설. 그래서 손원평 저자의 작품은 독후감을 제출해야 속이 후련할 듯한 긴 후일담을 남겨두게된다.
역시나 이번 작품도 읽고 난 후 촘촘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먼 미래도 아닐 듯 하고, 나만 비켜 갈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같은 제목의 청소년판이 따로 출간되었던데, 이 또한 생소하지만 그럴듯한 이유가 된다. 글자 폰트와 크기만 다를 뿐 청소년판과 성인판이 구분되어있는 점이 매력있다. 그래서 말인데 청소년들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어진다. 젊음에 다다르기 전 어리다 할 만한 축에 속하는 존재들이 보는 책 속의 나라는 어떻게 느껴질지가 궁금하다. 나이들고 늙게되는 과정은 여전히 당연한 시간의 흐름인데 청소년들이 보는 젊음의 무리와 노년의 무리속 각각의 목소리는 어떻게 와닿게 될까.
나는 젊음의 끄트머리라 봐야 할 나이이다. 유나라의 나이는 이미 지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유나라의 입장도 각각의 유닛 등급에 따른 인물들의 성향도 모두 이해되는 사람이다. 엘리야가 느끼는 혐오의 감정도 알만하고, 유나라의 부모가 걱정스러워했던 아이의 인물 의존도에 대한 우려까지.
젊음의 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젊음은 영원 할 수 없고, 나 또한 그 순리가 예외로 적용될 수 없음을 알기에 한 때는 젊었고, 이제는 늙음이 당연하게 쥐어질 삶의 인간이라 민아 이모처럼 생의 끝을 내가 정할 수 있을지. 그마저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사람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유닛을 보면 결국 부에 대한 등급표였음도 알 수 있다. 이건 각자의 젊은 시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되기도하지만, 열심히 살아낸 것과 상관없이 원하지 않는 세상의 간섭도 적용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한부의 삶이라 선고를 받았지만 오진이었던 상황. 최상위 유닛에서 짧고 굵은 화려한 생의 끝을 생각했으나 오진으로 인해 생각보다 더 길게 봐야했던 자신의 노후. 그렇게 하위 유닛으로 내려가며 삶의 반경이 달라지고 날이 선 상태로 주변을 대해야했던 최근을 떠올리면 내가 원하는데로 흘러가는 삶은 없음을 느낀다.
학교가 요양 보호 시설로 바뀌고, 세금의 대부분이 노인 복지의 자금으로 채워지는 과정. 먼 미래 같았지만 지금의 세상 또한 그렇게 흘러가고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인구 소멸에 대한 걱정과 함께 노령화에 대한 불안감. 저출생과 출산을 하지않는 젊은층에 대한 쓴소리. 인력에 대한 비용보다 AI를 통해 획일화되고 간결화된 일상들까지. 이주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최근 다양한 서적을 통해 나역시도 한참을 고민했던 존엄사에 대한 결정권 또한 심심찮게 야기되어가는 세상이다.
가까운 미래? 책 속에만 가둬두기엔 너무 현실감 넘치는 요소들이 가득해서 이 소설은 SF소설이라 분류 할 수도 없고, 마냥 허상의 판타지 소설이라 나누어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렵다. 나를 키워낸 세상과 내가 기대할 세상이 섞여있는데 어느지점까지 허상의 것이라 믿고, 어느 단락까지 예견된 미래라 봐야할까. 시카모어 섬까진 가지 않더라도, 지금을 영위하고있는 내 경제상태와 이 시점을 기준으로 10년후, 20년후의 나를 그려보게된다. 유닛 등급에 따른 내 노후까지 점칠해보며 각각의 집단에서 과연 내 몫의 행복을 얻어내며 남은 생을 살아 갈 수 있을지 계산하게 만들었다.
나는 한때는 젊었고, 젊음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늙음만 남았다. 늙음이 기대되기보단 어찌 살아야 할지 머리를 싸메고 젊은 시절보다 더 견고하게 생을 짜맞춰야하는 일이 주어졌음을 느낀다.
나의 청춘은 지금 어느 지점에 머물고 있을까. 청년이라하기엔 너무 나이든? 중년이라 하기엔 또 조금 이른듯한? 그 애매한 지점에서 노년의 그들을 바라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과거의 노년이 누린 시대와 내가 곧 다다르게될 노년의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야하는 삶의 퀘스트들. 저자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모든 갈래가 나를 거치고 있다. 부양해야하는 부모가 있고, 결혼은 했으나 출산을 하지 않고, 외로움을 의지해야하는 반려동물은 없지만 평생 없이 살거라는 보장은 못한다. 사회활동을 하며 매해 연초마다 오르는 복지 관련 세금은 내가 당장 누리는 것이 없음에도 기꺼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하는 체계. 소멸되는 인구만큼이나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로 내 몫으로 감당할 지분이 커지는 세상. 나는 노부모를 부양하지만, 나와 남편은? 자식 없는 둘은 각자 서로를 살펴야하고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하는 몫의 무언가를 마련해야한다. 지금 내가 누리는 젊음으로서의 젊음의 나라는 바쁘고 빠듯하다. 현실 아닌 척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 손원평이 꾸려놓은 세상. 그래서 내가 감당해야 할 지점은 어느어느 항목인지 한번 더 인지하며 내 젊음을 어찌 써먹어야될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머리를 굴려봐야겠다. 아.... 오랫만에 마른세수 하게 만드는 소재를 만나 포스트잇 플래그가 가득 붙어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꿈에 주름이 져 있어도 되는 거야? 그렇게 계속 접고 접으면 꿈이 너무 작아지잖아. 그러다가 못 찾으면, 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면 어떡해?
어린 유나라가 민아 이모와 나눴던 이야기의 일부이다. 꿈만 꿔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이 있어서 살아갈 이유가 되었고, 꿈 덕에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분명 존재했다. 민아 이모도 그러했지만 지금의 그녀는 꿈을 고이 접고 또 접어 꾹꾹 눌러 쉽사리 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을 해 둔듯한 뉘앙스로 말을 해준다. '이렇게 꿈이 몰래 숨어 있다가 언젠가 활짝 피는 꽃처럼 팡! 터질지 몰라.' 이건 어린 유나라에게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민아 이모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 이었다. 안될 걸 알지만 그래도 될거라는 일말의 기대.

📖그녀의 자식으로 산 고양이와 개들은 행복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열세 명, 혹은 열세 마리의 동물들이 할머니의 삶에 외로움의 방패막이로 차례로 소비되고 갔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에게 다들 이러한 뉘앙스로 이야길 해왔다. 지금이야 남편도 있고, 맞벌이고 사회활동을 계속 하지만 나이들어서는 그계 게속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적적할텐데 지금이라도 반려 동물을 키워서 애정도 주고 살아보라고 훈수를 뒀다. 애 없으니 애 키우는 보람 대신 동물 기르는데에 쏟아보라는건데, 나는 내 한몸 건사하는건 물론이고 내 사회활동으로 인해 하루 대부분을 혼자 집을 지켜야 할 반려 동물의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단순히 내 단기적 외로움에 투입하고 싶지는 않다. 반려 동물의 생은 인간보다 짧다. 그래서 그것들의 끝을 다 지켜봐야한다. 생사고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소비하는 감정의 폭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 자신 없다면 시작도 안하는게 맞는 답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노력하고 더 애쓴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혜택이, 노력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가정을 이루지 않고, 그저 사회보장제도를 계속 누릴 수 있도록 수 쓴 것밖에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 주어졌다니.
어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회가 마련해주는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 인력을 사용한 활동으로 소득이 일정부분 늘어나게되면 국가가 지원해주는 비용을 얻지 못하게되어 그럴바엔 아예 사회활동을 중단한다는 무리. 이른바 숨만 쉬어도 세상이 돈을 주는데 뭐하러 고생하냐는 식의 허점을 노린 거저 사는 삶. 애쓰고 살아내려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약은 인간들. 그래서 때때로 이러한 제도에 환멸감이 느껴지기도하며, 이러한 인간을 고발하여 저자에게 쓰여지는 세금을 모조리 환수하고 싶어지는 날카로운 성질머리를 드러내게된다.

📖강한 법규 아래에서 인간이 얼마나 고분고분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하위 유닛으로 갈 수록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가진사람만이 가능한 발언권이었다. 튀는게 두려운 사람들.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무리였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름이 거론되고, 관리자들의 시선에 거슬리면 혹여라도 밉보여 이 무리에서 강제 이탈하게 될 까봐 한껏 몸을 움츠리게되는 무리. 책 속에서는 유닛F가 그러했고, 현실에서는 최저생계지원비를 제공받거나 그마저도 지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실감하게하는 유나라가 겪고있던 근무조건이며 유닛체계였다.

📖나는 재희에게 죽음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의 형태가 그 사람의 계급을 드러낸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최근 존엄사 관련 책도 몇권 읽었고, 가족, 지인들의 부고도 많이 접했던 근래의 기억. 죽음의 고인이 된 당사자의 재력의 일부이기도 했고, 남겨진 가족이 일시금으로 처리 할 수 있는 부의 부피이기도했다. 죽어서도 돈이 필요했고, 죽음만큼이나 몫돈이 필요한 적이 또 있었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과 마침표를 찍듯 세상에서 무(無)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 모두 공평함은 없었다. 지켜보니 그러했다. 그것은 일종의 생전의 능력치 정산내역서와도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을 채운 게 논리도 합리도 아닌 혐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을 때,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노인이라는 존재를 그저 '늙어 있는 상태의 사람'으로 인지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차츰 알게 되었어요. 그들도 한때의 나였다는 사실을요.
시간이 흘러 나도 그들의 수순을 밟을 것이고, 내 한시절 처럼 반짝이고 탐스러운 청년의 시선엔 고루하며 꽉 막혀 보일 한낯 노인으로 분류 될 것임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수술하고 관리하고 세월에 맞선다 한들 결국 늙고 나이듦은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이치를 받아들이고있다. 다만 내가 노인이 된다 하더라도 이렇게는 되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은 있다. 유닛의 분류가 삶의 성적표가 될 수 없다고 했던 유나라.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내 맘대로 흘러가는 세월은 아닐 것이니 결과가 유닛A라도 본받아선 안되는 인성의 존재가 있었고, 유닛F인게 의아하게 여겨지는 반듯한 어르신의 기품도 있었으니 제력에서 줄세우기하는 유닛 분류가 아닌 인성과 인격 자체를 아우르는 늙어있지만 단정한 어르신으로 불리워지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