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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요즘 출판시장의 핫한 문구가 있지.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이 하나로 모든게 정해지는 성해나 저자의 신간 혼모노가 궁금했다. 판매 순위도 높으며, 제법 재미난 추천사를 써준 박정민과 이기호 저자의 입김이 한 몫 한 듯 한데, 내가 성해나 저자의 글을 읽은 적이 없더라구.
대강의 줄거리는 익히 아는 바 이제 4개의 큰 단락으로 나눠 기하가 외동아들에서 형이 되던 그 때, 어린 재하가 8살 많은 형과 함께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니던 시절로부터 이야기는 교차된다. 이후 혼자의 세상을 꾸리며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엉성한 울타리를 벗어나게된 순간과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재하를 때리던 친부도, 새로 꾸린 가정에서 어떻게든 잘 살려고 애쓴 모친도 상실한 채 짙은 어둠만 더해진 어른의 재하는 타국에서 형의 흔적을 찾고 또 한번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뒤늦게 형이었던 존재에게 안부를 전하게된다.
부모의 재혼, 의도하지 않게 형제가 된 둘.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을 보면 교차되는 입장에서 어느 한 지점도 마주치지 않고 겹쳐지지 않으며 한 템포 늦거나 빠르게 스쳐 갈 뿐이다. 마주하는 과정이 없다. 똑똑히 마주보고 대하는 마음의 교류가 없다보니 이렇게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불편함 심기를 표출하고, 또 한 쪽은 반대로 티내지 않으려 억누르기도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라는게 기하와 재하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어떻게든 닿아보고 마주할 구실을 만드는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 각자의 선에서 무던히 애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4년에서 끝맺어진 성글었던 가족의 과거와 남겨진 각자의 자식들.
진심은 왜 그리 늦게 받아들여지고, 후회나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되새김질되어 미안함만 쉼없이 밀려오는지. 이제사 모든걸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마음들을 고이 모아두고 싶으나 그럴 수 없음에 씁쓸하게 그 흔적들에만 애틋한 시선만 주게된다.

📖아버지가 부르는 '네'가 내가 아니라는 배신감.
어제까지는 사진관집 외아들이었고, 이제는 8살어린 동생이 있는 형이되었다. 동시에 사망한 엄마의 자리에 새어머니라는 분이 오셨다. 기하에게 의중을 묻기도 전에 온 이방인이며 가족이었다. 모든게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에 자리를 뺏긴 상황.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 쇼윈도에 항상 기하의 사진이 있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아이. 아버지의 시선은 오로지 기하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나누어야 한다는 점.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는 것. 친 동생과는 또 다른 애정의 분배. 기하는 그 균형을 잃었고, 이 집에서 지탱하던 존재감도 잃었다는 것을 느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온전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

📖일종의 채무와 같다는 것을요. 혈육 사이라면 자연스러울 어떤 책임이나 보살핌이 저와 그들 사이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요.
나누는게 낯선 기하였다면, 재하는 받는 것이 낯선 입장이다. 폭력을 쓰는 친부. 그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살려 애썼던 어머니와 재하. 그러니 누군가의 호의와 선의가 낯설고 당혹스럽다. 받아 본 적 없는 손길이며 기대한 적 없는 마음이었기에 이걸 받았을 때 얼마나 더 큰 무언가로 되갚아야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크다. 새아버지는 어머니가 좋아서 가정을 합친거지, 병원비드는 자식놈을 원한건 아니었을테니 어머니의 짐짝이되고, 새아버지의 근심이 되어 가정의 파탄에 자신이 불씨가 될까 조마조마한 여린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저 또래의 아이들은 눈치로 큰다는 말을 실감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것 같아도 도르륵 굴러가는 눈망울이 온갖 걱정과 근심을 다 흡수해 버리더라. 그래서 어른의 따뜻한 애정을 채무로 받아들이고 갚아야한다는 고심가득한 눈빛에서 이건 쉽사리 바뀌지 않는 성향이겠구나를 느꼈다.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타인의 호의지만, 행복보다는 근심으로 마음에 쌓아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녀석 커서도 이러겠구나 싶은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현실로 보여졌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자신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이라도 같이 가준 형이 좋아하니까 그 감정을 깨기 싫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여느 형제와는 달랐던 것임을 확신하게된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표현이 어떤 이에겐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재하를 통해 배운다. 사사로운 것에도 고민을하고 주저하는 것을 보며 당연하지 않은 관계, 이른바 억지로 엮여진 관계에선 어느하나 쉬운 것이 없음에 재하가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 형성에 어려워하고 마음을 열 지 못하겠구나를 느낀다. 태어 날 때 부터 그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는데, 재하가 가진 삶의 반경이 대부분 이러한 조건에서 재하를 쥐고있었기에 만들어진 어른으로서 미안한 감정이 크게 다가왔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어쩔 수 없이 어린 기하와 어른의 기하가 남긴 상념보다 어린 재하와 어른의 재하가 꺼내어 둔 마음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표현이 과한 비하라 할 순 있겠다만 미워하는 감정을 표출하고, 싫은 마음을 내색했던 기하였다. 재하보다 8살 더 많은 형이 아니라, 그냥 어른이었다. 그럼에도 재하의 마음을 들여볼 여력이 없던 성글던 기하였으니 질타하는게 아니라 얄미워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진료실에 한번이라도 같이 들어가 줬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소스가 뭉텅이진 중국냉면의 땅콩소스를 잘 풀어주는 무심했던 표정과 애쓰는 손길에서 둘 다 어쩔 수 없이 서툰 마음었다는게 느껴졌기에 이러한 마음도 그냥 단지 제3자의 뾰족했던 마음쏠림이었음에 잔소리를 멈춰본다.
기하가 이전 직장의 명함 뒷편에 황급히 휘갈기며 현재 연락처를 적어 줬더라면, 지금은 거기 다니는데 조만간 관두려한다 흘리듯 말해줬더라면 재하는 어떤 마음으로 우편을 보냈을지 생각해본다. 그땐 아니었고, 지금은 달라진 마음쓰임이었다면. 결국 그때 기하형도 어렸구나, 어려서 그랬구나로 점칠되었을 텐데. 그래서 아쉽고 마음이 또 한번 정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게 된다.
내가 두고 왔던 마음의 계절. 멀찍이서 보면 단란했던 가족사진. 그 속에 재혼가정이었는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의 어색한 관계가 보이지않는 벽에 가로막혀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애쓰는 새어머니와 밀어내는 아이, 치료에 애쓰는 새아버지와 짐짝처럼 여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의 맞닿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인화된 사진에서 여느 가정에나 있을법한 두툼한 앨범에 끼워진 그 한장이 소중하고 그리워진다.
최선을 다했고, 되려 친자식보다 타인의 자식에게 시선이 걸려있던 순간인데 그 땐 몰랐다. 그리고 그 때의 부모 나이를 넘어선 기하와 재하는 뒤늦게 마음을 더듬어 본다. 자책을 못하지만 그때의 자신들과 그때의 부모에게 미안함 뒤늦게 들이민다. 이제서야 그리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바뀌진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그 시절을 꺼내먹는다면 두고 왔던 시절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오래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그대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