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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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저자의 글맛과 박정민 대표의 실행력의 조합인데 이걸 듣는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만큼 오디오북으로 먼저 접해야 할지, 늘상 읽는 방식인 지류책으로 마주해야할지. 이미 소개글을 통해 오디오북에 캐스팅된 리스트를 보니 대충 그들의 목소리가 알아서 구현 될 테니 나는 당연하게 문자들을 통해 눈앞에 영상을 구현하고, 음성을 덧입혀보기로 했다.

책 표지 때문에 이게 청소년소설인가 싶기도했다. 뭔가 18세 소녀의 덜 익은 여름의 찰나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 로맨스학원물인가 싶게 만들기도하는데, 표지가 잘못했다 싶을 정도로 어른의 뜨겁고도 강렬했던 여름 한 가운데를 넘어가는 시절 이야기였다. 책 박스라고 표현하는게 맞나? 책 커버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디오 대여점을 연상시키는 고전 테이프 곽의 형태를 띄어서 어린 열매와 할아버지의 추억 연결고리인 영화 마스크가 가진 상징성을 책 겉면에 옮겨둔 느낌도 들었다.


책이 가진 무드는 딱 이거라며 단정지을 순 없겠으나 각각의 단락에서 풍기는 늬앙스가 영화 리틀포레스트, 넷플릭스 너의 시간 속으로, JTBC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스틸컷을 옮겨온 느낌을 받게했다. 이것들이 전부 내가 애정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뭔가 깔끔하게 끝맺어지는 엔딩도 이른바 권선징악의 착한사람들은 모두모두 행복하게 되었습니다를 향한 마침표도 없으나 자신의 삶에서 유난히도 덥고 길었던 여름을 무난히 버텨냈고, 완주라 할 수 있는 만큼의 시절을 겪어낸 열매의 한 계절을 담아 둔 듯 하다. 오로지 열매의 입장에서는 낯선 도서 완주에서 뒤늦은 성장통과 같은 또 한번의 사춘기를 겪어낸 것 만으로도 잘 살아왔음을 이야기 하고싶은거겠지. 그러니 완주라는 곳에서 첫 여름을 보낸 의미가 제목에 가장 뚜렷하게 자리잡고있고, 처음 겪고있는 마음들 속에서 외면하거나 방치 하지 않고 잘 살아온 것으로 완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게된다.


인생을 사계절로 놓고 봐도 열매의 시절은 완연한 여름이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서 있는 시간도 있을테고 어저귀 근처 숲들처럼 나무들이 가려주는 그늘덕에 한템포 쉬어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양미를 보기도하고, 가장 단순한 먹고사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수미 엄마를 통해 뱃속의 든든한 안정감을 찾기도한다. 애라를 만나는 순간에는 열매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며 더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현실을 비춰주며 이야기의 중 후반부에서는 열매의 여름이 다 끝날 즈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구나를 예상하게 만들었다. 사는것,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 질 즈음 열매는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을 끄집어낸다. 이른바 사람이 살면서 아무런 걱정 없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현재의 고난을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것이기도했다. 그러면 이 순간이 덜 고달프니까. 그러니 열매에게는 할아버지가 비빌언덕이고 빡빡한 세상의 도피처이기도했다.

수미가 밉지만 마냥 미워하긴 열매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함께했던 시절이 불쌍해진다. 그래서 일단 생존이나 해 있으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어차피 내 손을 떠난 돈. 당장 갚으라해도 현실적으로 안되니 주구장창 미안해하며 야금야금 갚아나가길 바라는 해탈의 마음이 기록되어있다. 자신이 하는 성우일이 마음만큼 되지 않고 그게 몸으로 퍼져 마음의 병이 육체의 상흔처럼 나타난거 같아 치료를 받는 과정도 초반에 나온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단한 일은 한번에 와르르 쏟아진다. 그게 얄미운 어른의 삶이기도했다. 수미 엄마는 다 큰 어른으로 나오는 열매가 여전히 챙김받고싶은 아이인걸 들키게 만드는 인물이기도하다. 애틋한 관계였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남보다 못한 부모와 형제에게서는 사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수시로 고팠고, 틈틈이 곯아있었다. 그걸 무심하지만 툭툭 내어주는 수미엄마의 밥과 말에 잠시 눌러앉아도 될 안전한 공간임을 인식한다.

어제귀(강동경)은 영영 모르고 지냈을 시절의 일부를 채워주는 인물인데 진짜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허상은 아닌거 같은데 그렇게 존재하다 또 그렇게 상실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다 커서 하는 풋사랑같기도 했고, 열매가 가지지 못한 시야와 품어두지 못하는 성정을 갖고있는 허상의 키다리아저씨 같은 느낌. 키다리 청년이라 해야하나? 후반부 존재의 상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마냥 눈물짓진 않게되며 알아서 잘 살겠지, 또 알아서 다른 세상에서 어저귀로 살겠지라며 그의 평안한 순간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현재를 자각하게 만들고 열매의 일부가 투영된 듯 비슷한 상황을 하고있는 애라는 거울 같으면서도 데칼코마니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다. 군데군데 비슷한 처지와 직군, 그리고 현재의 상황. 콘트리트와 높은 벽, CCTV로 자신을 가두고 살 것인지, 전남친이 슬쩍 흘려둔 오디션 1차합격을 빌미로 그 틈을 벌려 나올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인물이다. 아무리 거울을 본들 나를 정확하게 볼 순 없지. 그러니 차라리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마주앉혀두고 깨닿는게 확실함을 보여줬다. 이제는 나갈 시기가 된것임을 암시하는 애라와의 만남.

수미를 보면 순간순간 얄미움이 그득해지겠지만, 되도록 오래오래 꾸준하고 천천히 돈 갚으며 열매의 주변에 멀쩡히 살아주길 바라게 될 것이고, 살면서 숨차는 시기가 오면 잠잠히 생각에 잠겨 할아버지와 함께하던 어린날의 어떤날을 데려다 앉혀 둘 것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던 여름은 잘 난거 같지만, 어찌 평생 여름이 안 올거라 예견하겠는가. 시간이 흐르는 것 처럼 계절은 돌고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다음 회차의 여름이 오면 열매는 지금보단 덜 고생하며 무던히 나고 있을거라는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게된다.

자극적이지 않아 슴슴하니 시원하게 훌렁 목구멍으로 쏟아내는 여름의 냉국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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