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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저자의 이야기는 출간 될 때마다 찾아 읽게된다. 일상의 모습을 책에 옮겨담아두니 이질감 없이 내용에 빠져 들 수 있었다. 작년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그러했고, 그 이전 작품들도 나에겐 하나같이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나만 알고싶은 작가라 하지만, 다들 아는 소설가. 한창 SF소설에 빠져 있다가도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읽어가다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 주변의 소리들이 소설로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다들 다르게 여기고,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장소. 어떤 이에겐 한없이 늘어지고슾 쉼의 공간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가시방석과도 같은 만남의 장소, 그리움이 곳곳에 스민 흔적, 그림자처럼 지내며 생계의 수단이 되는 일터, 한 없이 비교하게되는 보이지 않는 부의 계층점이 되곤 한다. 이는 소설속의 인물들만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에 생각을 모아본다. 나 또한 그러한 상념을 해봤고, 내가 소설 속 인물 중 한명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세상에 등을 맞대고 살고 있음에 이번에도 사실주의적이며 현실반영이 그득한 소설이라 말하고싶다.
이놈의 방 한칸이 주는 다양한 감정과 각각의 이야기. 완독 후 내 방에 누워 멀쩡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온전한 내 몫이 아니라 은행과 공동지분으로 빌려쓰는 삶이지만 어떠한 굴곡 없이, 무수한 사연 없이 살 수 있길, 그저 무탈하고 평온한 방에 재미없다 한들 그리 잔잔하게 살고싶어지는 감정에 푹 절여든다.

📖홈파티_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누군가 무대에 등장해야 했다. 혹은 반대로 사라지거나.
호의보다는 과시가 더 컸던 모임. 성민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연은 그리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과 함께 그나물에 그밥과도 같은 맥락으로 모인 사람들. 하긴, 삶의 갭이 크지 않아야 공감도 할 수 있고 대화도 통하기 마련이니까.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군이 다르다 할 지라도 소득이나 소비의 형태가 비슷하면 이렇게 모여서 즐길 수 있음을 느낀다. 먹고 즐기는 것 하나부터, 입고 사는 것들까지. 그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워낙 두터워서 그들은 초대와 방문이라 했을 지라도 이연은 그 무리에서 침입이었고 도주로 끝난 상황이었다. 성민이 섞어보려 했으나 전혀 섞이거나 동화되지 않는 홈파티였고, 인간관계의 무리였다. 이연은 이들과 평생 이웃하거나 평생 홈파티 일원으로 마주 할 일은 없을거라 여기겠지. 내 장담컨데 그 파티가 끝난 후 이연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있는 와인안주마냥 주기적으로 씹히고 뜯길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다들 그러니까.

📖숲속 작은 집_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돈에만 목적을 두는 사람, 돈에 마음을 얹어보는 사람. 그리고 돈 자체의 의미만 전해지길 바라는 사람, 돈을 건네는 사람의 진짜 목적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 '별 차이'가 없길 바라지만 은주와 지호가 갖는 차이가 그렇게 다르다. 그 '차이'에 가려진 은주와 지호의 갈라진 틈. 그건 아마 평생가지 않을까. 지금은 같이 산다 한들 살아온 환경이 달랐고, 불리워지는 명칭이 다르며, 사회가 바라는 쓰임이 다른 둘이라 이 찰나의 차이에도 큰 갭이 숨어있었다. 숲속 작은 집에 있다 했지만 결코 작지 않고, 계속 달라지고 벌어질 차이가 될 것이다.

📖숲속 작은 집_ 그걸 보면 당장 알 수 있을 텐데 지호 앞에서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바지 주머니 속 '감사합니다'를, 구겨진 '감사합니다'를 손끝으로 마냥 만지작거렸다.
이 마음을 나만 느끼지 않았다는 것. 은주가 고심하며 적어둔 영어의 감사인사. 혹시 영어를 모를까봐 그 나라의 언어를 그리듯 적어두며 잘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팁을 모셔두는 마음. 적어도 당신의 수고스러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정중함이었다. 팁이 당연한게 아닐테지만 나의 사사로운 부스러기들을 치워주니 보고도 못본 척 해주고, 알아도 모른체 하며 이전의 상태로 돌려주는 사람에 대한 부탁이기도했다. 은주가 발견한 흔적은 내 눈에만 띄는 어긋남이지만 직접적으로 팁을 바란 적이 없었고,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 처리 대응에 살짝 빈정이 상하는 건 오로지 그녀가 예민해서라고 생각할게 뻔한 지호.
근데 이게 참,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게 단순한 보답과 보상에 대한 마음에서 시작된게 자신이 갖고있는 재력으로 의미가 넘어가고 자산의 상태와 그걸 대하는 마인드로 불이 붙듯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이다. 성향일 뿐이었을텐데 지호의 씀씀이와 벌이, 은주의 재정상태와 한시적으로 중단된 소득의 정지상황. 꼭 이게 이 쪽으로 넘어가서 마음이 삐뚤어지는게 흔한 부부싸움의 시작같아 괜시리 머쓱해지기도 한다.
돈을 주는 입장은 마음의 표시인데 이에 대한 상대의 적절한 보상이나 당연한 고마움을 바라는 표정이 그려진다. 친정엄마-은주, 은주-현지 호텔 도우미, 은주-지호의 관계까지. 돈이 얽히면 티를 내진 않지만 티나게 되어있는 마음의 단차가 생겨버리는 기분이다.

📖이물감_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뻔뻔하고 활달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간부나 임원들을 보며 배운 바가 있다. 기태는 바로 그런 접대 자리에서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을 통해 원하는 걸 얻는 이들을 자주 목격해왔다. 그리고 그럴 때 상대가 넌지시 남긴 힌트를 열심히 주워가며 의중을 살피고, 아쉬운 이야기를 해온 쪽은 늘 기태였다.
이물감. 식도를 타고 역주행하는 역하고 기분나쁜 울컥거림. 그건 기태의 몸속에서 반응하는 작용 뿐만 아니라 기태가 희주와 지수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흔적이 남는 마음과 미련이었다. 전 아내 희주가 잘 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파트너인 지수가 마냥 자신만은 바라진 않는 것. 내가 없이도 잘되고, 내가 아니어도 잘 사는 듯한 그들의 세상에 미련이 있어 질척거리는 찐득함처럼 보였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게 기태의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것으로 간주해본다. 보고 배운게 그런거라 적당히 밟고 올라가는 어투와 눈치껏 추켜세워주기도하는 기태의 말들. 그 말의 찌꺼기와 기태가 주변 여자들을 대하는 찐득한 미련으로 식도염은 평생 따라다닐거라 예견해본다.

📖빗방울처럼_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안부인사, 때로는 빈말, 또 한켠에서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뭉툭한 한마디 정도. 그게 '므슨 일 있었습니까?'로 시작되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왠지 모르게 상대방이 이러한 궁금증의 질문을 받길 바라는 듯한 어슬렁거림이 지수에게 뭍어났다.
다들 궁금해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오지 않는 남편의 부재였다. 그 부재는 부풀어오른 벽지처럼 곪아 터진다. 지수에겐 무슨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는데 말 할 곳이 없다. 물어 오는 사람도 없다. 둘이 행복해야 할 곳에 하나가 없다. 그러니 애꿎은 물혹이 그 자리를 눌러 흠을 만들었다. 그게 꼭 먼저 가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고, 자신을 탓하는 썩은 미련같기도했다. 전세사기도, 청약포기도, 빚을 떠앉고 대출금에 허덕이는 것 마저도 남편 준호에게 칼끝을 겨눈 듯한 것에 먹먹하기만하다.
빗방울 같은 누수의 흔적은 준호가 지수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라 봐야할까? 이제 그만 울고 편히 떠나라는 듯 도배하며 말끔히 흔적을 지웠지만 지수에게 들리는 툭툭 투두둑 거리는 빗방울의 소리. 결국 집이든 지수든 준호를 그리워하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닳음이었다.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들이었다. 적어도 남들 눈치 안 보고 오롯이 내가 안녕하길 바라는 입장들. 각자의 단편 속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게 작용하여 겉으로는 다들 괜찮은척 했고, 실상은 문드러져있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게 측은하고 꼭 나같고, 또 훗날의 내가 될 수 있을 듯 했다. 이러한 마음들은 절대 나를 비켜가는 적이 없던 상황처럼 보이기도했다. 각각의 단편들은 책 속에만 사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살면서 한번은 겪어볼만한 그리고 흔한 일들을 살아내는 사람들어있다. 그래서 이들의 안녕을 바라지만 다들 안녕하지 못할께 눈에 보였다.
가장 편히 쉬어야 할 그 공간이 가장 볼품없게 쪼그라들고 서럽운 눈물 짜내는 공간이 된 것 같아 측은과 동질감이 섞여들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