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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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많이 읽어왔더라. 올해 30주년이니까 하나씩만 읽어도 책장을 빼곡히 채우는 기간이다. 하니포터로 1년간 활동하며 알아간 저자도 있겠지만 이전부터 내가 궁금해서 찾아보고 구입했던 책이 훨씬 더 많았다. 소재의 신선함, 술술 읽혀지는 이야기에 내 목소리를 덧붙여가던 서평도 제법되더라. 일단 읽다 중도 포기했던 글들이 없었던걸로 보아 확실히 재미나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에겐 한겨레문학상이 고민없이 볼만한 것들이거든. 나도 이렇게 잘 챙겨보는데 다른 독자들은 오죽할까.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장편소설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고, 30주년이라는 기념할만한 해가 되기도했으니 이 기회를 삼아 역대 수상 작가들이 본인 당선작을 모티프로 앤솔로지를 출간했겠지. 당선작의 프롤로그라 할 수도 있고, 특정 등장인물의 서사를 다 풀어놓지 못해 아쉬웠다면 이 기회를 통해 시선을 틀어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 주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아 읽으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잘 살고 있긴 한건지. 혹시 내가 오해하고있는건 아닌지. 그냥 흘려보내도 될텐데 이야기 속의 인물이 자책하고있는 건 아닌지. 전작에서 잘 살고 있다면 모를까 다들 하나같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라도 듣고픈 마음이 컸다.

그 많은 도서전 인파를 뚫고 책 한권을 손에 쥐고 와서 빗속을 헤쳐 카페에서 읽어가던 이야기들. 당신들이 참 많이 궁금했어!

목차에 따라 읽어도 될테고, 이미 눈에 익은 저자명을 따라서 골라 읽어가는 것도 괜찮았다. 잘 지내고 있는건지 혹시나 먼저 떠난 인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지 않은건지 싶은 인물이 떠올라 그것부터 읽었고, 그렇게 이야기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읽었다.



📖옥이_ 네 어드레 이 험한 델 와 있네? 내래 옥이 살기 좋은 세상 만들자고 투쟁하였더니만.

가장 궁금했던 인물이었고, 가장 반기며 먼저 찾아본 파트였다. 작년 이맘때 읽었던 체공녀 강주룡의 등장인물. 주룡의 희생이 있었으니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애썼던 주룡을 생각해서 잘 살아주면 되는데, 어찌 그게 말처럼 잘 될까. 생각보다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이었고, 그러니 차라리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나랑 같이 세상 꾸역꾸역 살아내어보았음 낫지 않았을까 하며 옥이의 마음에 같은 애닳음을 보태게 되더라.



📖빵과 우유_ 어떻게 자살할 사람이 아이들 빵과 우유를 챙기느냐고. 그런데 어떻게 안 챙기겠어요? 지긋지긋하지만 챙길 건 챙겨야죠.

삶의 의욕을 놓고 싶어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지옥구덩이인지 지뢰밭인지 모호하다 싶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들이 있다. 때마다 챙겨야하는 것들, 매번 하던 행동, 오랫동안 해오던 습관. 삼시세끼 밥달라고하는 내 배꼽시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변의 자극들. 이게 나를 둘러싼 세상인가 싶으면서도 변화된 환경이 매번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모든걸 놓고 싶어도 기어이 해내는 능력. 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겠다만 외면하고 지나치기엔 내가 나를 용서치 않기에 해내는 꼴. 단전에서 올라오는 여럿의 자아가 나에게 화내고 나를 탓하고 다시금 나를 타이는 과정이 처연해지기도 한다. 그게 모성이든 아니든 말이다.



📖서강대교를 걷다_ 뭐야, 당신... 인간이야? 지금 죽으려고 저 다리위에서 뛰어내린 거야? 인어가 묻는다.

뭐야, 당신 인어야? 지금 죽으려고 수면 위로 올라 가려는 거야? 그녀가 묻는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서로 몸을 바꾸는 건 어떨까? 인간으로서의 당신은 죽고, 은빛 인어로서의 당신이 새로 태어나는 거지. 인어가 제안한다.

은빛 인어로서의 당신은 죽고, 인간으로서의 당신은 새로 태어나고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둘 다 자살에 성공하는 셈이네.

다들 죽고 싶어 했던 적... 한 번은 있겠지? 나만 많은건 아니지? 그때의 나도 이러한 인어를 만났다면 모종의 거래를 이뤘을까를 생각해봤다.

자살에 실패한 사람. 구해주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 사람. 자살 한 곳에서 또 자살할 일은 없을테니 적어도 여기에 있을 순간만은 걱정 말라고 가족에게 말해놓는 사람의 무거운 마음. 사는게 매번 행복하지 않다는게 수시로 느껴질 때에 드는 생각이었는데 이게 문장으로 표현되어 마주하니 기분이 묘해지네.



📖너를 응원해_ 꽃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그가 무슨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아이의 세상엔 뭐가 들어있나 싶고 걱정이 많아질테지만 우리도 그 나이를 겪어왔듯 아이들을 나름의 세계를 키워가고있었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는게 뿌듯해졌다. 같은 상황을 두고 부모가 느끼는 반응과 아이가 하는 행동에서 세상이 변화되었고, 아이라고 움츠려있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세상이 달라지는 만큼 부모의 어린 시절 보다 더 멋진 청소년기를 겪어가고있는 중임에 기특하고 대견해졌다. 어른은 걱정이 많고, 아이는 그 걱정의 영역을 넘어 더 먼 세상을 보고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걱정은 기우임을 알려줬다.



모든 이야기의 시간은 주인공을 기점으로 돌아가지만 때때로 가장자리에 머무는 존재에게 마음이 가기도한다. 외전처럼 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싶고, 그 인물 나름의 고민을 들어주고싶은 생각도 든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라기보단 나란 놈이 그런 가장자리에 지정되어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피규어같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관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꾸리면 또 다른 장르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각자만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 속에 주인공으로 배치되기때문에 흐름을 꺾어 둘 수도 있고, 장르마저 바꿔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책 속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바란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반추하는 과정에서 처음 원작을 읽은 후 기록한 서평을 다시 훑어보며 그때의 내가 가진 생각과 지금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져있기에 과거의 처음 완독, 지금의 서른 번의 힌트로 복기, 새삼 시간이 지난 후 처음 읽었던 원작 복습의 과정을 따라가니 내가 지나치던 장면까지 시선이 감을 느꼈다.

결국 같은 글이지만 내가 어떤 마음과 어떠한 상황에서 읽어내느냐에 따라 선명도와 깊이, 문장의 흡입력 또한 달라짐을 느꼈다. 그래서 묵혀두고 또 한번 읽어내어도 재밌겠단 생각을 하며 이 재미난 복기의 과정을 내년 한겨레문학상 작품에서도 할 수 있는 독서 활동이길 바라게된다. 그러려면 또 30년 후에 나오려나? 다음번엔 이 텀이 조금 짧아지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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