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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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뭔가 더 말을 할 듯 하다가 입을 다문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아뇨, 아무것도' 에서 끝이 났지만 진심은 '아닌게 아닌거 아는데 말하면 뭔 일 날거 같아서 말 못하겠어요' 라는 듯 입안에서 맴도는 이야기가 더 많을 듯하다. 채 말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15편의 단편으로 담아두었다.

짧은 소설이라 부담이 없지만, 어딘가 찜찜하고, 씁쓸하기도하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했다.

저자는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불투명한 틈새에서 이야기를 당겨왔음을 시사했다. 겉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그렇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기분은 아닌 감각들.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기시감이 드는건 기분탓으로 치부해야할까? 아닌거 알지만 들춰보면 어딘가 있을법한. 그래서 마냥 없던 이야기는 아닌듯 하며, 그래도 굳이 이런 일이 있겠냐는 듯한 애매한 감정을 쥐게 만든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기묘하다 할 수 있고, 석연치 않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흔적이 남는다. 뭐랄까 요즘처럼 덥고 습한날 마시다 놓아둔 컵 아래 남은 물자국 같은 잔상이라 하면 표현이 적절할까? 평범한 세상으로 보여지는데 후미진곳 어느 지점, 허투루 보았던 멀쩡하던 표면의 어딘가. 거기서부터 시작될 이야기가 딱 저자의 단편들이었다. 청탁 없이 마감 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쓰고싶어 쓴 글이라 했고, 순수한 창작의 욕구가 빚어낸 작품들. 오롯이 쓰고 싶어 쓰여진 글이니 훌렁훌렁 날개를 달고 제 맘대로 흘러가는게 더 기묘했던 듯 하다. 인물의 말 한마디, 이야기가 꾸려지는 상황에서 공포도 아닌것이, 스릴러도 아닌 것이 생활밀착형 스산한 씁쓸함이 있다. 허탈함에서 오는 것, 공허함에서 오는 것, 재미나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 딱 끊어버려 오는 것. 묘한 감각의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단편. 이 책이 여름 소설의 따끔한 맛이 된 듯 하다.

📖아뇨, 아무것도_ 제가 보는 장면이 아주 먼 미래는 아니거든요.

친하지 않은 동료와 회식 후 함께 탄 택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디자인팀 신입. 어떻게 반응하라는거지? 호기심을 갖고 케물으며 이야기의 물꼬를 틔워야하는건지 헷갈린다. 적막이 흐르는 택시안의 기운이 싫어 아무말이나 한 느낌은 아니다. 늘 보이는게 아닌, 가끔씩이라는 말이 더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신입과 제대로 말하는건 처음인데 주제가 이런거라고? 그런데 그게 맞다면? 진짜 본거였다면? 아주 먼 미래가 아니었다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해주면 안되는거였어? 라고 성질부리고 싶어지는 상황에 놓인다.

예상했던 상황과 달리 의외의 순간에 저 말을 하게된다. 그래서 폴이 그렇게 신분을 감추듯 외형을 숨기고 살았던 이유가 뭔지, 그걸 왜 보면 안되는건지에 대한건? 그래서 선미씨가 봤을지도 모르는 그 이후의 장면은 무엇일지 집요하게 묻고싶어진다. 먼 미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상황을 알려주며 조심하라던가 무지 행복할 것이라는 정도의 분위기 파악이라도 일러주었다면 선미씨의 예언같은 스포가 고마워질텐데, 원망만 커지게한다. 아무것도 아닌걸 보고 아무것도 아니라 말해야하는 찜찜함. 타인의 앞날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 본척 살아야하는 선미씨는 매번 이러한 감정으로 살텐데, 이 찜찜함을 갖고 매일을 어떻게 사나.

📖작가의 말_ '그냥' 읽고 있을 당신께도 반가운 마음을 건넨다.

이 배열을 하고도 무사히 원고를 넘길 수 있다는 대단한 능력. 어떠한 원고 청탁도 없이 내가 쓰고 싶어서 썼고, 내가 내고 싶어서 낸 책이라는게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본건 아니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기도했다. 작가의 말이 맨 앞이나 뒤가 되는게 대부분인 룰을 어기면서 꿍꿍이라도 있는듯 적었을 저자를 생각하면 하고픈게 많고, 말하고픈것 또한 많은 사람인게 느껴졌다.


📖초능력_ 전 실없는 사람이라고 타박하며 혀를 찰 테고. 그렇게 저는 초등력을 가진 남편과 함께 늙어갈 겁니다. 아주 지겨워 죽겠어요.

지겨워죽겠다 하지만 전혀 지겹지 않아서 일부러 싫은 티를 내는 일종의 어설픈 푸념. 사는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데, 이런거 너무 좋아하면 팔불출될까봐 하는 입에 발린 말.



📖친구의 연인의 친구들_ 처음부터 그게 솔직한 심경이었는데, 그 간사한 마음을 인정하기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더 화가 났던것 같고.

장미의 진심을, 정식씨의 본심을 서로에게 알리지 않은 채 상황이 종료되었고, 그 둘의 속내를 제 3자만 알고있어야할까. 일기를 통해 둘의 뭉그러진 관계를 대강 그려본다. 서로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했으니 한 사람은 펜으로 허상의 무엇을 적어두고, 또 한 사람은 뒤늦게 그 흔적으로 삼류소설로 살을 덧붙인다. 의중은 중요하지 않지. 오로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걸로만 믿어내는게 수월하다는 걸 장미와 정식을 통해 느낀다.

인정하기 힘든게 아니라 그렇게 인정해야 본인이 편하니 좋게좋게 포장하는 거겠지.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_ 당신이 테니스를 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아름다움도 이 세상에 꼭 존재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결국 이유가 있던 찰나였고, 꼭 필요로 했던 만남들 뿐이었음을 알려준다. 테니스를 칠 수 밖에 없던 과정, 그 라켓을 건네받는 것이 우연도 아니었다는 것. 이유를 모르고 그러려니 살아도 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살아온 모든 순간엔 특별함과 가미되었던 삶이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돌아가야하는 이유가 있고, 다시 쳐야만 하는 확고한 운명임을 인지하는 과정. 모든 사람들이 티미같은 삶을 산다고 봐야할까, 티미였기에 이러한 운명같은 우연이 있었던 걸까. 이유 없는 이유는 없다했다. 그러니 존재할 이유는 없다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말장난 같고, 놀려먹는 것 같아도, 그게 그럴 수 밖에 없고, 다 그런거라고 또 한번 말장난을 얹는 듯하다. 저자는 또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도 제일 확실한 답으로 쌀보리게임 하듯 독자와 문장놀이를 하고있었다.

명쾌함은 없다. 그렇다고 답이 없냐? 또 그건 아니거든. 그런데 머뭇거리고 긴가민가한 상황을 곳곳에 찔러두었다. 머뭇거림, 주저함, 놓침, 외면. 일상에서 심심찮게 마주했던 감정과 상황인데 거진 다 불편하고 불투명한 걸로 치부하다보니 기억에서 배제한 채 살고있음을 느꼈다. 저자는 이 틈의 감정을 긁어모아 이야기를 꾸렸다. 불편한걸 마주하는 순간 당신의 표정은? 당신이 그린 이후의 이야기는 뭘로 정리하면될지를 물어보지만 답을 기다리진 않은 듯 하다. 모호한 감정을 자극시키며 독자의 세상에 이러한 날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듯 꾹꾹 눌러두고 사라지는 듯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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