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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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서간문을 발견했다. 에세이라 해야할지, 서간문이라 해야할지 모호하지만 한없이 적극적이고 스스럼없는 대문자E의 글방지기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만 글을 적고,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며 쪼잘쪼잘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문장들이다.

저자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철학과 그간의 경험, 많은 에세이들을 읽고 느꼈던 문장 다스리기를 담아두었다. 편지 같아도 그 사이사이 끼워진 팁과 영감을 돋우는 키워드를 찾는 방식들은 참고서의 형태로 베여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따라 읽으며 독자가 글을 쓰게 만드는 애틋함이 담긴 편지글이다. 그래서 달콤한 구슬림과 때때로 둠뿍 담아둔 귀여운 문장 독촉들은 내가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처럼 만들어둔다. 이미 오랜시간동안 일상을 글로 옮기고, 사진으로 남기며 블로그에 기록해두는 습관을 갖고있다. 처음엔 내 기억력을 믿지 못했던 것이고, 또 한편으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찾고 흔적을 남겨놓기 위함이기도했다. 하루를 살아내고 그 틈에서 잔잔한 행복을 한 줌씩 만들어두다보면 줌치에 넣어도 헐겁던 일상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말 저자처럼 나는 어쩌면,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잘 쓰고픈 마음과 더 멋지게 표현해두고픈 마음을 얹어 제대로된 에세이로 써보고싶게 만들어낸다.


쓰기는 언어에서 가장 단단하고 구조적인 영역이라 했다.구성과 구조, 앞뒤 문장의 연결성, 이야기의 방향성, 맥락과 논리적 구조의 관계. 의심하지 않는 문장의 단단함. 대단한 교훈이 아니더라도 잘 맺어진 아귀가 들어맞는 밀도. 그걸 바라며 쓰게된다. 저자가 말해주는 쓰기의 뼈대는 이러한데 내가 잘 하고 있는게 맞는지, 이러한 단단한 심지에 적절한 살을 덧붙이는 과정이 허술하지 않는지. 그래서 쓰고, 보고, 고치기를 반복하게된다.

잘 하려고 몸에 힘을 주고 글을 쓰고 있는걸 어찌그리도 잘 아는지 빈 문서는 우리의 친구이지만 저자는 빈문서에서도 코박고 가라앉을 수 있음에 주의하라했다. 일상의 말투로 문장을 시작하고, 편하게 문장을 흘리라했다. 나는 매번 손에 힘을 주고 글을 썼고, 어깨를 한껏 웅크려 적는게 당연했던 사람인데 힘빼기의 기술부터 연마하며 새로 걸음마를 하듯, 새로 글을 배우듯, 그렇게 새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가장 구체적인 삶의 증거_ 나만 보는 일기도 좋지만, 누군가 훗날 읽게 되더라도 그날을 그려볼 수 있도록 써보세요. 같은 하루를 살았더라도 지금 그것에 주목한 사람은 나뿐일 테니까요.

어린시절의 일기만 봐도 그렇다. 쓰고 지우고, 또 때로는 뜯어내며 진심이 담긴 유일한 공간이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허술한 자물쇠로 잠겨진 비밀 일기장을 들춰보는 아찔한 상상. 그만큼 내 이야기가 궁금했을 타인들의 관심. 어린녀석이 글빨이 좋아 훔쳐보는 맛이 있다는 듯 흥미진진해보이는 눈짓. 결국 내가 겪는 세계를 증언 할 수 있는 유일한 화자이며 역사를 기록할 독점 기회라는 것. 그래서 생생하게 남기고픈 욕망이 글을 적게 한다. 원동력이란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의 손가락 들썩거림에 신이 나게 만든다.



📖이토록 훌륭한 조력자_ 분명 중요한 얘기가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쓰고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얘기고요. 별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꺼내본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얘기입니다. 어쨋든 과거의 나는 정말 수고했어요.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이번에는 그 글을 넘겨받은 지금의 내가 일해야 할 차례입니다.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쓰는 것.

너무 잘 쓰려 하기보다 쓰는 이가 신나길 바란다는 저자. 이야기의 길을 꺾고 싶으면 꺾어보라는 방목형 글선생. 현생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과감히 시도하고, 솔직해져 보기도 하라며 글 속에서라도 자유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초고니까! 초고는 얼마든지 주워 담았다가 다시 쏟아 볼 수 있으니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문장적 허용. 그러게, 초고인데, 일단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서 시작인데 뭐가 무섭고 쪼글리나 몰라. 이런들 저런들 우린 초고 위에 수많은 퇴고를 반복할 각오로 시작한건데 겁먹었던 내가 아까워지그래.



📖삶의 표식_ 남들 신경쓰지 말고, 훗날 나를 위해 남기는 시절의 표석을 세워보세요. 너무나 진짜인 내용을 쓰고, 문장을 다듬으며 멀어져봅시다. 문장들 위에 오래 머무를수록 어쩐지 더이상 내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글쓰기의 순간부터 남들을 의식해왔다. 지금 학생들은 어찌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9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일기는 나의 일과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과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였다. 평범한 순간속에서도 재미난 무언가를 발견해야했고, 두루뭉술한 하루에서도 반짝이는 무언가를 굳이 드러내며 내 일기가 재밌음을 알려야만 했다. 그래야 선생님의 색깔 볼펜이 긴 코멘트를 남기게 만들었고, 잘했다는 도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꾸며진 문장으로 내 삶을 허왕되게 부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은 지루한 날도 있고, 고요한 순간도 있으며, 번뜩이는 찰나도 있고, 다시금 잔잔한 시간의 흐름도 있을텐데 그시절의 나는 왜 그리도 시트콤 같은 세상이 되길 바란건지 생각해본다. 잘 보이고 싶고, 잘 쓴다 칭찬 받고 싶고, 그렇게 또래들 속에서도 표본이 되어 박수받는 글쟁이고픈 마음이 나를 부풀렸나보다. 이제는 글 속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기보단 데칼코마니처럼 나를 닮은 또 다른 나로 꾹꾹 눌러보게된다. 타인들의 관심은 한때이며, 주구장창 읽고, 또 살펴볼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치장 없는 글을 써야겠다는 걸로 마음의 방향을 틀어둔다.

설령 이게 흥행도 덜하고, 시선을 덜 받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글이라도, 일단 나는 그러고 싶어진다. 저자도 그러라했으니까 내 길이 맞겠지!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헌데 이 방향이 맞는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궁금했다. 제대로 된 쓰기의 능력이.

그렇다고 내가 에세이를 낼 것도 아니고, 고작 일상을 기록하는 일상블로거인데 수업을 듣고, 피드백을 받는게 타산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이 컸다. 물론 배운다고 그게 공중분해 되는건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기록하는데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컸던게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저자의 연서와도 같은 문장은 무얼 해라 마라 하는게 아니라 이게 괜찮은데? 한번 해볼래? 라며 에둘러 이야길 한다.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길 하다가도 '오늘 해야하는 쓰기 비법은 이거야! 이거 딱 하나만 기억해!' 라는 듯 마지막해 해야할 것들을 툭 하고 흘리고 사라진다. 다그침은 없고, 일단 해보라며 했고, 할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은 듣지 않고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강요없는 조언에 순순히 따르게됨을 느낀다. 언제까지 해오라, 어디까지 해봐라 라는 식의 제한선을 두지 않지만 한번은 해보고싶게 만드는 묘한 능력. 그래서 삶을 단어와 문장에 녹혀보고, 그 일상속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기록하고, 순간과 순간을 덧붙여 시절의 나를 옮겨심어두게 만든다. 이리저리 써보고, 또 만지작거려보면 이게 맞다고. 이런게 진짜 글이라고 호들갑떨며 잘했다 해줄 저자의 들뜬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내가 뭐라도 된냥 으쓱해지게 한다.

그래서 쓰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고 싶어지고, 마음을 덧붙이는 단어를 더 신중히써보고싶은 마음을 쥐게된다. 쓰는 것이 두려운 사람, 쓰는 것이 일이 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 그리고, 쓰는 것을 내 삶과 나란히 두어 긴 호흡으로 이어가픈 사람, 강의실 일대일 수업을 주저하는 그냥 나같은 사람에게 부담없이 읽고 시작하자는 말로 툭 내밀고 싶게 만든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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