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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 - 불안장애를 겪은 심리치료사의 상담 일지
조슈아 플레처 지음, 정지인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장애라고 하면 뭔가 온전치 못한거 같아 입 밖으로 뱉는게 어려워지는 단어다. 거기다 불안장애? 과거에 비해 이러한 심리 상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있다 한들 심리치료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센터를 방문한다 하면 걱정 반 우려 반으로 측은한 시선을 받게된다. 그래서 숨긴다. 숨기는게 일종의 자기방어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상태를 확실히 알고 치료를 받는건 옳은 것인데도 말이지. 누군가에게 말 하기 주저하게되고, 그렇다고 당당하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도 망설여진다면 일단 이러한 업을 삼고 있는 자의 상담일지 책으로 나를 다싀려보고, 책 속의 상담 세션에 나를 숨겨 청강하듯 들어본 후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도 좋은 갈래라 본다.
한 때 불안장애를 겪고, 이제는 저명한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된 조슈아 플레처의 심리 에세이. 겪어 봤으니 더 잘 아는 사람의 진짜 조언. 논문이니 전문 서적이니 하는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겪어 봤다는 것 만으로도, 앓아 봤다는 것 만으로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 사람의 내담자 상담세션. 벽돌 책 같아도 그 속에 들어가면 진짜 짧게만 느껴지는 상담 시간들이다.
심리치료사 한 명과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13가지 내면의 목소리들이 너무도 나 같아서, 나랑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의 다양한 마음들이 한데 뭉쳐있는거 같아 어려움 없이 읽어가게된다. 걱정 좀 덜고, 경계도 좀 덜고, 가면 좀 벗고, 편안하게 시작해본다. 그는 내 이야길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불안의 기원들_ 성취에 대한 걱정, 자신이 부족하다는 염려,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 자신이 사회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상태인지 확인하는 일 등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이 갖고있는 각각의 감정들. 그 중 불안은 그러한 요소 중 일부인데 우리는 이 분야에 취약했다. 불안이 커지면 다른 감각들도 예민해지게되고, 모든 과정의 결과에 불안 탓을 돌린다. 잘 된 것 보다 잘못된 것에 이 감정의 핑계를 대며 과한 질타를 얹는다. 공황이나 강박, 내면불안과 사회불안, 극단적인 예측의 시발점은 불안이었다. 인과관계 속 전후 상황에 호 보다 불호의 상황엔 늘 이 녀석이 들러붙어 썩은 미소를 짓는달까? 갈래도 다양하고, 주기도 짧아 반복성이 짙다. 그러니 불안은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땡겨왔다. 이 위협의 메커니즘에 대한 대비와 자기방어가 자존감을 무너뜨리다보니 얘를 어찌 살피고 구슬려야 할 지를 계속 질문에 질문을 얻어가며 네 명의 심리치료과정에서 나와 닮은 구석, 또 내가 외면했다가 새삼 알게되는 면면을 얹어보며 이야기 너머의 나도 같이 상담을 요청하게된다.

📖리바이1_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얼굴에서 흘러내리게 두었고,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에겐 이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았고, 나는 그에게 그 공간을 내어주었다.
타인에게 눈물을 보이는 순간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어렵다. 괜스레 내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 가장 큰 문제라 여기게된다. 그의 다양한 감정 중 다정이나, 구원이는 눈 속에 있는건지 눈빛으로 이 마음을 드러내어준다. '맺힌게 많은가보다, 안쓰럽다, 뭐가 그리 괴로운지 알아내서 해결 해줄게.' 라는 상담자의 시선. 내담자의 어려운 걸음이 헛되지 않게 시작하는 상담자의 자세.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들어줄 마음과 기다려줄 여력을 마련하는 것이 어찌보면 상담자가 하는 일이고, 벌이의 수단이겠다만 이 과정을 살뜰히 준비하여 마주하는 것에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본다.

📖노아2_ 여기 와서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신발에 스프링이 달려 있으면, 흙탕물을 헤치고 갈 때 좀 더 쉽게 지나갈 수 있죠.
생각보다 불안이 뻗어낸 갈래는 다양하고 또 복잡하다. 얽히고 얽힌 관계들 속을 비집고 다양한 방법으로 거슬리고 거북하게 만든다. 특히나 사회적 불안은 상호작용을 이루고 살아야하는 관계 속에서 더욱 날이 선 채로 다가온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혼자 성과를 이뤄야하는 방식이 아닌 생(인생)이다보니 내가 나를 평가하는 시선보다 남들이 나를 대하는 눈빛에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연기하는 삶을 이어간다. 비판의 입장을 얻어서도 안되고, 거부반응을 일으킬 액션을 취해서도 안되며, 호감으로 대중의 인식을 사야만 옳은 삶이라 여기니 이 얼마나 피곤하고 긴장되는 과정인가를 생각해본다. 자신이 안전하고자 거부에 대한 공포를 지우기 위해 겹겹이 선한 사람으로 감아두는게 편한데 그게 자신을 얼마나 옥죄는지도 알아주었음 싶다.
혼자 였을 때 마음이 편한가? 또 그렇지도 않다. 무리속에 섞여있지 못하다는 불안감, 소속되어있을 때엔 이 무리에서 튀지 않고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한다는 강박감. 압박과 강박. 그리고 이 온전치 못한 감정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게 맞는건지에 대한 의심. 이 물음에 대한 끝맺음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답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내담자. 알지만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이 얽힌 고리.
사춘기에 가장 많이 겪었던 마음의 소리였다. 나 또한 겪었고, 아마 모든 이들이 한 번 쯤은 겪어낸 마음의 소리였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옅어지느냐 더 진득해지느냐의 차이겠지. 사회적 불안과 사회적 갈등은 계속 쥐고 살아야하는 요소인데 얘를 어떻게 데리고 사느냐의 문제겠지.
불안, 공황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갖고있는요소인 우울. 우울감의 또 다른 이름은 고립감이 아닐까. 갖혀있다가 와르르 쏟아질거 같은 감정. 무감정의 고요가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울컥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
상담을 하면서도 그가 가진 내면의 목소리는 다양한 말들로 자기만의 위로 방식을 찾는다. 공허한 말로 안심시키려 하지 말라고도 하며, 힘들어 하고 있는데 어찌 그러냐고 반박을 하는 구원이의 소리. 좀 더 크게 보며 이후에 일어 날 수도 있는 상황을 미리 인짛하고있는 탐정의 생각. 그리고 상담자 본인이 갖고있는 불안이의 마음 역시 무서워 한다는 점. 상담자도 불안이를 지니고 있으며, 걱정에 걱정을 얹어 마음을 쓰고 있음을 비춰낸다. 결국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불안을 지니고 있음을 한번 더 상기시킨다. 없지 않아, 그저 얘를 어떻게 다스릴지 아는 것 뿐임을 상담자는 한번 더 인지하고 내담자를 어떠한 방향으로 당겨올지, 당겨오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같이 걸음을 맞춰줄지를 고민해준다.

📖불안에게 보내는 편지_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 네가 없다면 난 롤러코스터와 공포영화의 스릴을 결코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야.
불안에게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과정을 거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망설임이 있었을지를 생각해본다. 소리내어 말하는 걸 듣지 못할 감정이니 편지를 쓰면서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꾹꾹 눌러 감정을 표현한다. 이 진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여기는 마음에서 어떻게든 불안에게 마음이 닿길 바라는 심정을 가늠해본다.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이 감정을 용서해주길 바란다니! 어떻게든 구슬리고 달래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길 원하는 상담자.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조시는 상담자이며 장기적인 내담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음을 느낀다.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안위를 살펴야만 자신에게 방문한 내담자를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알기때문. 감정의 트랙을 한바퀴 다 돌게 될 즈음 결승점, 곧 끝이라 여기는 것은 없다는걸 알기때문에 지칠 타이밍 마다 이렇게 부탁하고 노력해주길 간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중히 부탁한다며 전후 과정을 상세히 일러준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 점을 유념해달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불안에게 '너'라고 지칭하며 너로서 해야 하는 일임을 알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는 걸 해달라는 어조는 이겨먹을 생각이 없다는걸 어필한다. 그러니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며 더 좋아지길 바란다며 항시 고마운 것을 상기시킨다.
다들 한번씩 해봤을 어린시절 인형놀이가 떠올랐다. 각각의 개성이 도드라진 허상의 무엇에게 다같이 재밌게 놀자며 다가가던 상냥한 말들이 허공에 피어오른다. 조시는 그렇게 해할 의도가 없음을 강력히 어필하며 소외될법한 마음을 살폈다.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스리고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흘하지 않기에 이 모든것들이 가능했음을 짐작한다.
심리치료사에겐 내담자의 이야기들로도 머릿속이 가득 찰 것이다. 이 어지러운 문장들 속에서 답을 찾고, 그 답을 찾는 것에 예시가 되어줄 자신의 이력까지도 돌봐야만 우리가 말하는 좋은 상담과 올바른 치료가 이뤄지겠지. 멈추지 않아야했고, 머물지 않아야 했음 알렸다.
상담, 심리치료, 치유, 마음돌봄을 이야기 할 때엔 마음이 무겁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보여야만 가능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자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지만 좁은 바늘 구멍에 대고 외치는 힘겨운 외침같기 때문이다.(와르르 쏟아낸들 상담하는 사람은 환자로 온 흔한 케이스 중 하니일테니 크게 와 닿지 않겠지 싶은 우려가득한 마음) 우리는 이들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만 들어왔을 뿐 상담자이며 치료사라는 자의 의중은 매번 배제되었다. 다만 이 책은 이러한 치료사도 결국 사람라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가 다양한 사람인 것을 다시금 느낀다. 특히나 심리치료사이지만 13가지의 내면의 목소리가 짤막하게 뱉어내는 문장에는 익숙한 투덜거림도 있었고, 때론 과한 걱정, 또 한편으로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의 물음도 있었다. 이걸 표정이나 목소리로 드러내어 내담자가 알아채도록 할 것이냐, 억겹의 필터링을 통해 최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 할 것이냐로 갈래가 나뉨을 느꼈다. 내담자들은 느낄 것이다. 속앓이 하는 것 보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어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 만으로도 치료가 되고, 내가 머무는 세계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의 갈래에서 어디를 더 유념히 들여다 봐야하는지 방향성만 툭툭 놓아 주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알아서 제 갈길을 찾아간다. 구조적인 흐름을 펼쳐보며 올바른 위치만 조정해주는 몫. 그 몫에 대한 이야기가 의중을 묻고 궁금해하는 조시의 상담 방식임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은 어떻냐고? 말하면 들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