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에 불을 지르고 - 제4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전강산 지음 / &(앤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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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띠지 문구 때문에 홀린듯 선택했다. "꼭 성장해야 돼요?" 그러니까요. 이상과 현실에 방황하는 '우리'에게 해주고픈 이야기. 육체적인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이며 이성적인,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레벨업하길 바라는 성장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나이에도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지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해야 이런 소릴 안 들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약간의 반발심을 갖고 시작했다.


이야기는 어느 젊은 창작자의 초상을 그린 장편이다. 주인공은 유수의 영화제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그럴듯한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이 한번의 성공은 꿈을 이를 수 있는기회로도, 그렇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 삶과 예술처럼 대립적이고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애쓰는 영화감독의 정직한 고뇌를 손에 잡힐 듯 투명하게 그리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미 평단에서 검증을 받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니 굳이 뭘 더 성장해야 하나 싶지만, 먼저 비슷한 경로를 통해 수상을 했으나 그 길로 가지 않고, 꿈이 아닌 현실에 머문 선배를 보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이래야 하나'라는 라는 갈등. 그리고, 현실에 머문 사람이 이상을 맛보기라도 한듯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말에 반발심이 속에서 우글거린다. 결국 나란놈도 당신이 말한듯 나름의 성장을 했고, 그래서 또 이렇게 살아가구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창작의 힘은 영감이 아니라 가난이란 걸 체화한 내가 아니던가.

창작의 힘은 영감이라는 것 보다 당장 내야하는 공과금과 금새 다가올 카드값, 숨 몇번 몰아쉬면 다시 계약해야하는 월세인상 계약 정도가 되겠다. 이건 창작자만이 느끼는 재촉어린 원고 청탁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 칭하는 모든 성인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게 만드는 채찍과도 같다. 그래서 내적 고민과는 상반되도록 몸은 출근을 하고있고, 자동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게 만든다. 역시 꿈을 찾기보단 당장의 가난에서 발을 빼는게 더 중요한 생이다.




📖 하지만 일단은 내가 부족한 게 맞을 테니까...... 내 쓸모를 증명하려면 그의 말처럼 일단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야 했다.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자금의 해소, 그리고 같은 길을 걸어온 선배의 추천, 꿈이 실현된 듯 바로 시작된 현장의 맞춤형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값을 해야하는 자리. 결국 누군가의 입김이 닿아 내가 그 자리에 꽂힌거라면 마땅한 구실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쓸모있는 놈을 데려왔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 유대, 라는 걸 해 볼까? 짧은 순간에 수많은 망설임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났을 때 느껴지는 건, 가까워진 듯하면서도 완전히 멀어져 버린 거 같은 양가적인 불쾌함뿐이니까, 그런 건 가까움이 아니라 오히려 옥죄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냥 이 정도의 거리인 사이로 남는 게 편할 테니까.

비슷한 처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동질감. 그래서 친한척이라도 해보며 유대를 쌓아 이 생활을 함에 있어 작은 유희를 느껴보고 싶지만 시작이 어렵지 이게 깊어지면 안하느니만 못한 제 속 까발리기의 과정으로 이어질까 주저하다 망설이는게 일반적인 사회생활 속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공감을 얻어 낼 거 같고, 팍팍한 작업 시간이 좀 더 윤택해질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사담이 길어지면 나의 사사로운 이야기도 꺼내야 할 거 같으니 그냥 입을 꾹 닫게 된다. 그게 사회생활에 잡음 없이 무난히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서비스직도 그러했고, 여자가 많은 직종도 그러했으며, 남자가 대부분인 직종에서도 그건 예외없는 동일 조건이었다. 보는 눈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입은 어딜가나 똑같았다.



📖 내 주관을 없애고 적당히 대표 비위 맞춰 주면서 살았어. 의외로 금방 익숙해지더라. 다시 영화로 안 돌아가도 난 적당히 먹고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 드는 거야. 꿈에 대한 애정이 겨우 이 정도였으면 진작 그만두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꿈보다 현실을 찾게되고, 사수의 눈치를 보게되며, 내가 데리고 온 후배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도 신경쓰게되는 것. 꿈은 잘때만 꾸는게 제일 이상적인 꿈이라 여기게된다. 때로는 파고들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 될 수도 있겠다만 열에 하나, 백에 하나 정도의 특출난 인물이며 비범한 무언가를 지닌 존재어야만 가능하니 지극히 평범한 나는 그 축에 못 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내가 보였다.남들이 보면 빨리 포기했다고 생각 할 수도 있고, 오죽 급했으면 다른 길로 빨리 돌아섰을까로 그들의 안줏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선배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너무나 닮았으니까. 과거의 내가 너무 잘 보였으니까.



📖 굴욕감이 급여에 포함되어 있는 거구나. 굴욕감 없이 급여 생활을 하려고 기대했던 내가 미친 거였구나. 우리 원장님이 알려 줬어. 나...... 그렇게 성장하는 거래. 다...... 그런 거래. 너도 한 달 동안 그랬지...... 그치?

밥벌이 하는 놈이 한달 간 노고에 대한 댓가에는 많은 것들이 겹쳐있다. 능력치는 기본일거고, 때로는 욕받이 비용, 굴욕감에 대한 보상, 고객의 화풀이 수단, 그로인한 자괴감을 덮을 만한 덮개가 아마 급여로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다. 선배가 빨리 꿈을 포기했고, 진수가 더 고민하지 않고 털고 강사로 옮겨갔을 때엔 다 그만한 댓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라 이해보단 공감을 하게된다. 그딴 굴욕과 싫은소리보다 당장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이 더 애틋한 삶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퇴근 후 목구멍에 털어넣는 알콜이 쓰더라도 순간순간 잊어버릴 요량으로 취하는걸 자처하게된다.


시작은 그럴듯하고 될성부른 싹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유수의 영화제 수상자이며 최초의 여성 수상자. 몹시 거창하고 화려하다. 하지만 이 한번의 성공이 꿈을 실현할 탄탄대로는 될 수 없고, 부와 명성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되진 못한다. 괜히 번지르르한 떡잎에서 황급히 시들어 버릴 것 같고, 주변의 기대감과 주목에 비해 결실이 더뎌 차가운 시선과 외면받으며 점점 그늘로 기어들어가는 꼴이 되는거 같아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게된다. 이 즈음이 아마 대학 졸업 시즌에 무수한 면접과 인턴, 사회봉사, 공모전 수상과 낙방을 번복하는 시기에 대한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담아낸 듯 보였다. 2007년과 2008년의 내가 계속 겹쳐지는 걸로 보아 이상화 현실에서 헛도는 청춘을 아주 잘 표현해냈음을 알려주고싶었다.

많은 경험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준다지만 때로는 현실을 더 확실히 알게 만드는 효과빠르고 몹시 쓴 가루약처럼 느껴진다. 알약은 꿀떡 삼키면 그만이지만 가루약은 입에 털어 넣을 적 부터 기침이 나고, 물을 왈칵 삼켜도 입 안에 남는 쓴맛은 한참동안 머물러있음을 느낀다. 그게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상황에선 몹시 쓰다. 그게 딱 지금의 주인공 상황이라 보였다. 꿈은 더 커졌고, 현실은 더 따갑다. 같은 꿈을 꾸던 연인도 현실에 못이겨 곁을 떠났고, 우러러보게되던 선배도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같은 작업을 하며 한달동안 숙식을 같이 하던 동료들은 제 갈길을 갔으며, 다들 그렇게 살아내고 성장하며 더 괜찮은 구역으로 스스로를 옮겨심기 한다는데 매번 이렇게 갈아타기하면 진짜 완연한 성장의 끝이 있긴 할까 헷갈리기도 한다. 성장만 하다가 성장에서 끝이 날 거 같아서. 수확의 기쁨과 결실의 짜릿함은 모르겠고, 몸집만 키우다 자존감은 더 쭈그러드는 아주 대비되는 효과.

94번 돼지, 나연, 그리고, '나'. 돼지와 우리 중 더 큰 세상에서 신나게 유영하며 성장할 놈은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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