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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 ㅣ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사람이 나무로 변하는 순간.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는 흐름. 당장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몸이 굳어지고 피부가 나무껍질이 되어 아등바등 할 수록 더 빠르게 바뀌는 상태. 이 현상을 눈으로 봐 왔고, 멈출 수 없을거라는 확신이 드는 세상을 산다면 사람의 꼴을 하도 안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무들을 대하면서도 이걸 인간으로 봐야 할지. 또 다른 변이체라 생각하여 시료를 채취한다는 명목으로 신체와도 같은 나뭇잎을 뜯고 가지를 부러뜨리는게 인권 침해라 보아야 할까,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식물로 대하는게 옳을까.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변한 것에는 감정을 싣지 않으면서, 가족이라 할 만큼 의지하고 지냈던 사람들이 변한 상태에서는 인간이지만 모습만 다를 뿐이라고 의미부여를 다르게 주어야 할까. 나에게 맞딱드려지지 않을 상황이지만 나는 왜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게될까. 내가 나무로 변한 무리라면 여운에게 호소를 하게될까. 처지를 비관하지만 수긍하여 나무로 변했으니 인간이기를 포기해야할까.
이 바이러스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무로 변해버리는 재난을 일으켰다. 서울은 봉쇄되었고, 그렇세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를 끌고가는 여운은 그 때 엄마를 서울에 두고 탈출한 인물. 살아남은 자다. 국립재난대응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광역 방역 기기 '우산'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한 비밀 임무를 받게되어 당연하다고 여겼던 삶이 뒤집어진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미 가족을 잃은 인물이자 이모와 함께 피난을 왔으나 이모 역시 안전하지 못한 상태. 오염된 구간을 벗어난다 한들 영원히 살아남은 자로 살 수 없음을 이모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생의 끝엔 모두가 나무가 되거나 자신의 손으로 방역의 문제를 해결해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가 이야기의 큰 가닥으로 보였다.
재난을 벗어난 자에서 재난을 마주하는 자가 여운이라면 정인은 재난의 현장에서 버티는 자로 분류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어 나무가 되지 않아 이른바 슈퍼 항체라 할 수 있는 존재. 봉쇄된 서울에서 나무가 되어가는 가족을 돌보는 인물. 위험을 마주하였으나 그 상황속에서 지키고자 하는 바가 큰 인물이다. 외부에서 온 수상한 사람들이 산불을 일으키는 것. 무엇을 채취해가는 것. 나무가 아닌 사람으로서 보이는 존재가 자신 말고도 또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위기를 피한것인지 파고들게된다.

📖 "웃는 이유요?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예요. 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로 몰랐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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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웃지 않잖아요? 그러면 다들 이유를 캐물어요. 서울에서 엄마만 두고 도망쳐 나온 아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때부턴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며 가까이 오지 않거나 너무 가까이 오거든요. 그러다 점점 멀어져 가죠. 반대로 웃고 있으면 씩씩하다고, 기특하다고 칭찬하고는 곧장 제자리로 돌아가요. 그 정도 거리가 딱 좋아요. 그래서 나는 웃는 게 좋아요."
온통 나무인 공간에서 자신의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운은 웃는다.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입꼬리는 올라간다. 그건 재난 현장을 취재하라 간 카메라 앞의 아이들과 닮아있다. 현장 보도와 실태 보고를 위해 간 이들은 이 상황을 여운의 말처럼 똑같이 전달한다. 슬프지만 꿋꿋하게 버텨내는 아이들이라 하거나, 재난이나 내란, 전쟁 등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고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어야 한다며 후원의 콜을 종용하는 내레이션까지. 리퀘스트 교양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봐온 포멧이다. 그래서 여운의 모습이 더욱 안쓰럽고 짠해진다. 이 모든 것이 학습된 행복이고 겉으로 두껍게 덧 씌워진 자기방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 오늘 당신의 역할은 관객이자 수용자입니다. 발아래 두고 휘두르던 당신의 인간들처럼, 지켜보고 수긍하고 따르는 역할에만 충실하세요. 그게 이곳에서 당신들의 존재 가치입니다. 5억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결정권이 없는 부류. 그리고 사람의 목숨이 인질로 잡힌 상황. 의도된 신형 변종 바이러스를 이용한 2차 팬데믹 조장. 의도한 전 지구적 인구 감소&감염의 계획. 당하는 쪽에서는 인질이라 울부짖고, 행하는 쪽에서는 인류에 봉사를 한다는 목적이 있다며 남은 소수의 인물이 존재가치가 더 높아지고 희소성을 띄게 된다는 달콤한 유혹을 한다. 다수와 소수의 대립, 의견이 분리된 상황에서 하나를 무조건 결정하게 될 텐데, 그게 '남의 이야기'라면 쉽게 결정이 되고,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면 날 선 반응을 하며 둘 중 하나의 선택도 못하는 꼴을 보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
어떻게는 외형적이든 내형적이든 수긍할 만한 조건만 아니면 더 득이되는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달콤한 이야기들까지. 당장은 티가 안 날지도 모르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결정에 대한 반응은 분노-무감각-수긍의 과정으로 그저그런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렇게 어떤 미친놈처럼 같이 물들고 같이 썩어가는게 사람이라는 생각에 외형은 인간이라 한들 내실은 비인간이나 마찬가지임을 느끼며 정인과 미호가 하는 당연한 결정에 믿고 이야길 파고들게 된다.

📖 그래요. 현상 유지와 감염 확대의 선택. 구 년이 흘렀으니 당신이 아홉 번째입니다. 다수결이야. 당신 선택은 앞선 여덟명의 의견에 덧붙여지는 한 표일 뿐이니 마음 편히 선택해 봐요. 증명해 봐요. 이 세계가 이대로 남을 가치가 있는지. 공교롭게도 지금까지의 스코어는 4 대 4입니다만.
도시에 방벽이 세워지고, 감염 변이체를 일소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들이 연구되기 시작한 첫 걸음. 우리도 그 기대감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시작을 맛본 경험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이들은 애썼고, 구조와 치료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격리와 방치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특정 집단에게는 우선적 도움도 있었음에 선택적 구제가 인간들끼리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참 많이 닮아있는 세상의 변화였다. 잃은 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얻은자는 있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득을 보는 자들. 운이 좋다고 하기엔 그 대립된 상황과 공평하지 못한 조건이 씁쓸할 뿐이다. 역시나 대중적이라 할 만큼, 흔하다고 할 만큼 보편적인 이들은 그 가치가 흔하다고 여기는 일반적 오류로 인해 묵살당하게 된다. 그게 서울에서 머물다 뜻하지 않게 나무가 된 이들이라 하겠다. 소수라 생각한 사람들이 특정계층이 되기도하고, 보편적인 것들이 그럴싸한 합리화를 통해 가장 만만한 집단이 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공감하고자 한다면 보편적인 다수에서 바라보는게 익숙할 것이다. 우린 결국 다 그런 사람들이고 다 같이 애틋하며 평범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출판사 서평단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