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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평점 :

한국형 뉴 판타지 시리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출판사의 카드 뉴스 답게 판타지 임에도 구전으로 전해왔을 법한 전래동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OTT를 통해 단편 3부작 시리즈로(총 8장의 단락이 구분되어 있으나 3부작으로 나눠도 될 듯 했다) 나와도 제법 인기 있을법한 환상소설. 시대극을 보는 듯한 정확한 시대와 지역명, 그리고 그 시절 다들 그리했을 듯한 주인공들의 삶의 억척스러움. 바닷가 마을에 으레 있었을 법한 일인냥 오래된 서책에 잠자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기 1902년, 강원도 통천의 어느 외딴 섬. 어부 박덕무와 아내 임씨, 그리고 그들의 아이 영실과 영득의 이야기다. 일본 상인들의 강치 대학살에 대한 사건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거기서 나온 공영감의 존재. 덕무와 공영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다. 그리고, 공영감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으로 또 한번 갈래를 뻗게된다. 어찌 손 써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내 임씨, 그리고 아내를 빼다 박은 영실은 병세 마저 닮아 숨 쉬기가 어렵다. 손 써보기도 어려운 영실의 병세에 근심이 많던 덕무에게 공영감이 찾아온다. 영실의 병세를 잠깐이나마 호전시키게 했던 그 것으로 인해 덕무를 인어 사냥에 앞장서도록 만든다. 사람의 행색을 한 물고기. 그걸 잡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 영생을 기대 할 수 있다하지만 만물을 꿰뚫고 있던 서씨 할머니는 반대로 사람답게 살려면 먹지 마라고 단호하게 이야길 한다. 딸아이가 이걸 먹어야 숨도 편히 쉬고 아프지 않을 텐데, 영실 또한 동무같은 어린 인어들을 절대로 먹지 않고 놓아주려 한다. 인어를 잡아 먹어야만 천 년을 더 살 수 있을거라며 눈이 뒤집힌 공영감. 영실영득같은 어린 남매 인어 앞에서 이게 잘 하는 일인지, 누군가의 귀한 생명을 해하고 제 새끼를 위하는 것이 진짜 부정(父情)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뇌는 영실과 영득의 행동을 통해 마음을 굳힌다.

📖운명이 바뀌었을까? 그들은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공생하게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극의 표정은 각각 다를지언정 모두 '욕망'이라는 한 얼굴에서 나왔으니까. 적당한 온도에선 물이 끓지 않듯, 적당하다면 그건 욕망이 아니니까.
과거 공랑이 발견했던 인어의 존재. 시작은 우연이었고 만남에서 있어서는 동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서씨 할머니를 통해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후에는 바라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는 숨길 수 없다. 어차피 같은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얻어지는 이득을 생각하면 연을 이어가는 것 보다 끊어낸 후 이득을 취하는게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이 그렇다. 발치에 채이는 가난과 다급함은 자비로울 수 없다. 그래서 적당 할 수도 없고, 상냥 할 수도 없다. 그게 사람을 더 극한에 모는 느낌이다. 어린 공랑이든 딸이 아픈 덕무든 다 그런 이유였다.

📖각자 짊어지고 있는 짐들이 있었고 그 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소망이 선을 넘으면 욕망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소망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하지만 욕망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욕망의 얼굴은 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으로 변할지 알지 못했다.
소망이 욕망으로 넘어가는 과정. 다들 처음엔 그럴 마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이래도 되는거구나'라는 마음을 먹고, '나만 그러한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얹으면서 점점 죄책감이 사라지는 눈빛을을 글로 느낄 수 있었다. 단독적인 행동이 아니다보니 되려 죄의식도 나눠 가질 수 있을거라는 막연함이 보였다. 인어기름이 정말 만병을 고치고 장수를 약속한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너도나도 콩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손을 보태고 훈수를 두는 모습.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욕망에 눈이 먼 행동들이었다. 몸에 좋다하면 양잿물도 마시려하는 사람들의 속내. 각자가 쥐고 있던 삶의 고단함들을 숨기기에 바빴던 이들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절망 배틀이라고 하는 듯 누가 더 고단한 삶이고, 누가 더 절실한 이유가 되는지를 풀어놓는데 나 역시 이 마을의 사람이라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 같기도 하다. 결국 나도 그저그런 평범하고 똑같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금방 헤어질 것에 정을 주면 안 되고, 금방 죽일 것에 이름을 지어 불러 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면 사람처럼 대하게 되고, 사람처럼 대하면 잡아먹을 수 없기에 그냥 인어 새끼들, 혹은 물고기들이라고 부르라고 강권했어야 했다.
아이들은 외딴 섬에서 동무 하나 없이 서로만 의지하며 지냈던 남매다. 그래서 물고기들이랑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나무랑도 이야기 하던 아이들이니 또래같기도했고, 같은 처지의 남매로 보이는 인어들이 얼마나 반갑고 친근했을까를 떠올리면 측은해지기도 한다. 덕무가 아이들에게 강권한들 맑은 아이들은 절대 그러하지 못했을 터.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여도 남매들은 분명 인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을거라 보여졌다. 이 마을에 몇 안되는 순수한 아이들. 그 마음이 후반부의 이야기를 끌고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악행을 하던 이들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도록 만드는 비교의 대상이기도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다 볼 수 없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살고 싶어도 먹으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이건 영실의 말이기도 했지만, 공영감이 인어기름을 먹기 전 공랑의 시절 일 때 서씨 할머니가 해준 말들도 섞여있었다. 생명에 대한 도의를 져 버리지 말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과 욕심과 욕망으로 눈이 멀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하라는 단호한 문장이기도 했다.
바다에 사는 한낱 미물이라는 점. 그리고 사람의 행색을 하였다 한들 온전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너는 이걸 먹어야 산다는 걸로 선택지가 없음을 말하는 아비의 눈에서 살기를 느낀 듯 했다. 일단 제 집구석부터 챙겨야 했던 덕무. 똑같은 일을 번복하기 싫은 아비의 마음이었다. 제대로 손 써보지 못한 아내 임씨에 대한 미안함과 똑같은 병에 걸려 얼마 못 살듯한 영실을 두고보지 못하는 애끓는 부정. 덕무의 마음은 제 간이라도 빼어주고 받아와도 모자란 인어기름이니 영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당연해보였다.
각자가 쥐고있는 애환을 모르는게 아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씁쓸한 것. 제 품안의 아이가 사그러드는게 보이니 사리분별을 할 겨를이 없어보이는 다급함까지. 부추기는 공영감이 미운 것 보다 어쩔 수없는 여건과 부녀간의 애틋하면서도 애절한 관계 형성 이유에 마음이 아려왔다.
늘어질라치면 과거 회상을 통해 장면의 반전을 주어 열심히 독자를 끌고간다. 환상소설이며 한국형판타지로 분류되어지는 이야기는 한국형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권선징악으로 끝이 난다. 이래야 한국적지 않겠냐는 뉘앙스라 어찌보면 뻔하다 싶겠지만 그래도 이 뻔함과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됨에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느껴지기도 한다.
공랑이기도 했고, 천 여년 후 공영감은 인어기름을 먹은 자였다. 욕망에 먹힌 인물로 과거와 현재에서 악역을 자처하며 그 시대마다 주변인들을 현혹하게 만드는 인물로 나온다. 서씨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면 순수했던 소년 공랑에서 끝이 났었을 테지만, 욕심이 얹어진 인어기름을 마신 후 양심과 영생을 맞바꾸게 된다. 몇 번이고 생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주변인들은 죽고 혼자가 되고, 다시 생은 이어지고 또 다시 자신을 대신하여 인어를 찾을 인물을 물색하며 삶이 끊어지기 전에 또 다시 영생을 바라는 삶. 그로한 불로장생의 삶이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으나 사람의 행색을 하고 있기에 마음이가고, 똑같은 조건의 상을 하고 있어 더 측은해지는 것. 그래서 쉽게 죽일 수 없었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단 한낱 미물에도 마음을 쓰며 인간의 탐욕만을 위해 자신 이외의 것들에 해를 가하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 없이 당연스러운 삶은 없다는 걸 더 알려주고 싶은 내용으로 보였다. 이야기의 초반엔 강치가 울었고, 중반부터는 인어어 뿐만 아니라, 영실과 영득이 울었다. 후반부의 공영감이 울 수 밖에 없던 그 장면과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욕심의 끝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을 겨누고 있음을 시사하는 걸로 이해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