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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평점 :

이미 두 권의 책을 낸 에세이스트 태수님의 2년만의 신작이라 한다. 나는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가장 최근에 낸 이 책이 처음 접하는 글이라는 것. 행복은 불행해지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일러주는 글 모음. 요란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가는 튼튼하고 단단한 태도를 담아낸 글. 그리고 별다른 나쁜 일이 없는 하루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에서 이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알고있음을 느꼈다.
나는 종종 블로그 이웃들이나 커뮤니티에 끝맺음 문장을 무탈한하고 무난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전하곤 한다. 대단하고도 특별한 하루가 되길 기원하기보단 감정의 큰 기복 없이 무난하고 무던한 하루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거창하게 오늘의 하루를 표현하기보단 무어라 형용 할 순 없겠지만 잠들기 전 오늘을 떠올릴 때 미간찌푸리거나 근심으로 잠못드는 날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섬세한 사람일수록 번아웃이 자주 온다_ '이제부터라도 나만 생각해!'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잘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금처럼 살아라. 그렇게 살되 어떤 감정조차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힘든 날, 마음속이 온통 타인의 감정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날, 부러 나밖에 없는 공간으로 도망가자. 그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할 기회를 주자.
"나 안 괜찮아." 가끔은 남에게 줬던 섬세함을 나에게도 허락하자.
섬세한 사람까지는 아니지만 사사로운 것에도 신경이 쓰이고 계속 눈길이 가는 사람이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를 대문자 T형 인간이라 하지만 그건 사회화가 잘 이뤄져 상황에 따라 성향분리가 가능하기에 그리 느끼는게 아닐까를 생각해본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겨울 냄새, 봄 냄새와 같은 계절의 향을 잘 알아차리며 노을이 지는 순간 학종이처럼 옅게 퍼지는 다채로운 색의 빛깔을 애정하는 사람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가로수 나뭇잎의 반짝임 정도를 좋아하며 회색 겨울, 분홍빛 봄, 파란 여름, 노란 가을 사계절을 기다리다보니 감정의 안테나가 커도 너무 크다. 성향을 갈아 엎기에는 대쪽같이 고집한 세월이 너무 길다. 위에 언급했던 문장처럼 어차피 잘될 것 같지도 않거든. 그래서 그냥 이대로 살되 번아웃이 오더라도 계절의 향이나 눈 앞에 보여지는 다른 것들에 빨리 시선을 돌려 그러한 감정을 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또한 학습을 해야하고 실패를 반복하겠다만 이왕 갖고있는 성향이라면 빨리 전환하는 과정도 학습되길 바랄 뿐이다.

📖불행은 결딜 수 있지만 '너보다' 불행한 건 싫어_ 청년들이 얻어야 했던 건 무엇일까. 행복일까. 단언컨데 아니었다. 이들은 단순히 행복한 삶이 아니라 '너보다' '걔보다', 혹은 '그보다' 행복한 삶을 원했다. 우위가 없는 행복은 이들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그건 증명할 수 없으니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작품을 진짜 집중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다은쌤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다. 더 활기찬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았고, 그저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무던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게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가 되지 않더라도 가장 현실적인 엔딩이라는 생각에 더 밝아지거나 더 활기찬 큰 변화 없이 원래 다은쌤이 되어주길 바라게되더라.
마음을 돌볼 겨를이 없는 시대다. 나의 윗세대가 들으면 덜 힘들어서 그딴 생각을 하거나 복에 겨워서 투정을 부린다 할 지 모른다. 나도 그런 소릴 들어봤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세대와 내 세상이 다르고, 내 세상과 나보다 동생뻘인 청년들의 시간은 또 다르다. 그래서 그런가 체감하는 불행의 깊이도 다르며 실감하는 좌절의 넓이도 다르다. 그래서 섣부르게 가늠하지 않으려 한다. 견주어 보기만 하지 그걸 따져가며 밝혀내는 비교는 안 하려 애쓰게된다. SNS상의 그 반짝이는 삶에 현혹되어 나만 이따위로 사는가에 대한 수렁을 만들지 않으려한다. 그래봤자 내가 파 놓은 구덩이로 다이빙 하는 겪이고, 그들의 삶과 내 세상은 엄연히 다른 프레임이라는 걸 이제는 자각한 나이라서 그나마 다행임을 느낀다.

📖꾸준함이라는 이름의 재능_ 세상에는 메달이 없는 레이스가 더 많다. 누군가는 그딴 걸 왜 하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그래서 뭐가 남았냐고 따진다. 매 순간 효용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기에 우린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꾸준함을 미련함이라 비웃으며 묻는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남는 게 뭔데?" 정작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너인데.미련해서 꾸준한 게 아니라 흔들이지 않아서 꾸준할 수 있다.
저자의 아내 이야기로 시작되는 내용.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픈 사람, 그리고 35년 인생에 지각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남들은 잘만 한다는 흔한 핑계를 대지 않는 사람. 너무 대쪽같아서 때때로 얄밉기도 했다는 사람. 그러나 그 대쪽같음이 쉽게 할 수 없는 멋드러진 마음이라는 걸 잘 안다.
꾸준하고 진득한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이 항상 모자랐다. 아프면 쉬어야하고, 힘들면 잠깐 멈춰야했고, 마음이 아프면 눈물 차오르기 전에 흘려버리며 비워내어야 하는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단단함이 매번 고팠던 무른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곧은 사람이 부럽다. 매일 아침 회사 가기 싫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며 같은 회사를 10년 넘게 출근 하는 것도 꾸준함이라 하면 나도 해당이 될까? 발에 채일만한 자그마한 일들에도 뭐 하다보면 되겠지싶은 마음으로 무딘 감각인냥 해나가는 것들이 꾸준함이라 한다면 일정량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보련다. 이 꾸준함은 매번 채워도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뭐, 언젠가는 찰랑찰랑 채워지는 날이 오겠지. 이런 마음으로 살면 단단헤 지겠지. 끼워맞추기 나름인거 알지만 나도 그러한 재능이 있다고 믿어보고 싶어진다.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돼_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돼."다 알겠지만 우리 같은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결승점이 눈앞에 보여야 그나마 뛴다. 풀코스 마라톤은 애초에 뛰려야 뛸 수가 없다. 우리에게 도전이랑 다른 말로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끝을 알아야만 시작하게되는 굼뜬 육체. 나이가 들 수록, 사회에 동화되어 갈 수록 눈알 굴려가며 끝을 가늠하고 효용성을 따지고 발을 들여놓을지 더 멀찍히 물러설지를 생각한다. 늙어 갈 수록 재는게 많다.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이 두렵고, 그 시간이 아까워지는 생각의 노화. 애써가며 달렸다가 주저앉아버리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현상유지만이 손해 없는 삶이라 단정짓는 들러붙은 생각. 안 하면 기회도 주어지지 않지만 생각도 트이지 못하더라. 팔이 뻗어지는 딱 거기까지의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는 삶. 안전하되 재미없는 세상이 된다. 굼뜬 마음과 육체를 좀 일으켜 보기로 한다. 안전하다 여기던 사정거리를 넘는다고 세상이 뒤집힐 일은 없으니까 궁금해했던 너머의 삶에 눈요기부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로 살살 꿰어본다.

📖내 인생이 잘되길 바라는 건 의외로 나밖에 없다_ 도전이나 열정, 그딴 멋진 단어들 때문이 아니었다. 씨발, 내가 해낸다. S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세상에 덤볐다. 그 안에 청춘 드라마는 없었다.
맞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건 나를 낳아준 부모밖에 없겠다만 그거야 당신들 울타리 안에 살던 미성년자일 때나 가능한 관심이었다. 성인이되고 제 밥벌이 하는 놈으로 키워놓고나면 제 인생 지가 사는거지로 관여도가 줄어든다. 그 즈음부터 가족이라 엮여었던 사람들에게 기대와 관심, 응원을 바라지 않게된다. 나를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게 아니라 굴곡없이 저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하는 마음과 함께 고생길로 들어가거나 되돌아가는 꼴을 보는 것 마저도 자신들의 감정 소모라 훅 줄어든 마음의 참견이라 생각하면 여러모로 마음이 덜 아린다. 그러니 주변에서 하는 격려와 기대하는 눈빛보다 자신이 겪어낸 뿌듯한 결말에 집중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게 더 탄탄한 믿을 구석이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_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말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무탈하고도 무던한 하루를 바란다. 굴곡이 큰 행복과 허한 마음의 폭 보단 잔잔하지만 익숙한 일상에 마음이 덜 쓰인다. 그게 효율이 좋고 지치지 않고 장거리를 뛸 만한 페이스를 만들어준다. 삶의 끝이 어디서 마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는 더 살거 같은 장기전으로 보여지니 잔잔함을 택한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터득해버린 습관같은 것으로 여기고싶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생각이 과하고 안해도 될 걱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을 급하게 떠먹고 겁을 내며 주저하는 이 마음이 천성이라 생각하며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30년 넘게 산 놈이 뭘 더 바라겠나 싶은거지.
내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의 온화함 덕분에 나는 좀 더 단단하고 때론 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저자가 시간이 될 때 아내를 데리러 가는 이야기에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싶어 공감과 함께 나도 똑같이 그런 사람이 되고자 삶의 목적을 모아본다. 거리의 문제도 아니고, 시간적 여유를 떠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의 수고스러운 마음을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그를 데리러 가는 과정이 므슨 대수겠냐 하는 심리.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어떠한 이유를 만들지 않으며 으레 당연하게 향하는 마음. 이것저것 잴 필요 없는 관계에 대한 믿음이 예쁘고 나도 닮아가고싶어짐을 느낀다. 어른의 행복은 그런거다. 계속 의심하게 되며 확신이 서지 않는 삶 속에서 단단하고 묵직한 마음으로 살 이유를 챙겨보는 것. 몸이 고단하다 한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며 뿌듯함이 더 크게 부풀려지는 과정. 그런 마음들만 촘촘하게 채워진다면 이번 생도 제법 살만한 이유가 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