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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평점 :

지극한 현실성에 SF의 소재가 한 스푼 얹어진 이야기. 얼핏 만화같은 설정이라 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10대의 끄트머리에서 진로 탐색과 변화될 환경에 고민하며 불안감을 가지게 될 다양한 감각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연우로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 투명한 막에 갇히는 순간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누가, 왜 연우를 투명한 큐브에 채집했고 1년간 그 속에 묶어두었는지를 알리진 않았으나 연우의 감정 선을 따라가다보면 그 시절에 느꼈던 감각과 생각들로 조금씩 유추 해 볼만한 점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당황하게되고, 영영 돌아갈 수 없을까봐 불안하기도하며,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그 패턴에 순응하게 되면서 탈출의 의지가 줄어들고 무던해지는 감정으로 변해간다. 그 심경의 끝엔 스스로 탈출하겠노라는 마음까지도 사그러들어버린다. 어쩌면 크게 변화되지 않고 반복되는 하루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해버리면 그곳이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는 큐브가 되어버리는 것임을 터득한 것 같았다. 표지의 소년의 모습이 딱 그런 상황이다. 몸은 붕 떠 있지만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해 보이거든. 큐브는 스스로를 가둬두었고 스스로가 벗어나고픈 욕심마저 상실하는 뭉툭하고 무신경해진 상황을 표현 해 두었다. 아무리 부딪히고 튕기더라도 아무런 타격감 없는 말랑한 큐브에 적응해버린 삶.

📖바나나 우유 스물다섯 상자_ 아무것도 리셋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과거의 한순간 속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해고니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던 그때 그 순간 속에.
연우의 인물배경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 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이 있다. 일단 대한민국 고3이다. 그리고 공부는 제법 하는 편이지만 원하는 대학과 학과는 있지만 그게 진짜 자신이 하고싶은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는 어중간한 상태이다. 만약 그 선택을 하게된다면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모든걸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법적 성인인데 자신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몸만 큰 어린아이는 해야한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괴리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그려보게된다. 어릴 때 부터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곁에 있는데 그 아이와는 다른 진로가 눈에 보이며 같이 생활하는 이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영영 볼 수 없을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갖고있다. 남들이 좋다하고 남들이 다 그게 맞다며 등을 떠미는 것 같은 자신의 진로. 그에 반해 자신이 하고싶어하는 것이 명확했던 해곤, 특출난 건 없으나 가업을 이어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거기에 관련된 학과를 가며 부모가 다져 놓은 안전한 미래에 자신의 목표를 얹어보는 나루. 세상이 더 나은 조건이라 말하며 여러 조건을 따져 줄세워 놓은 더 괜찮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한 윤찬. 연우가 큐브에 갖혀있던 시간동안 친구들은 각자의 선택으로 변화할 삶에 적응하기도하고 때론 그 선택을 번복해보기도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행복한 삶이 되고 재미난 삶이 될지를 고민하게 된다.

📖문어일까, 나일까?_ 연우는 큐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미지근한 온실밖, 심장이 말이 안 되게 뛰고, 땀이 삐질삐질 솟고, 더운 숨결이 귓가에 감기던 그 순간, 불안하고도 외롭지만, 서로 닿으려고 몸부림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독감에 걸려 몽롱한 상태. 자신만 교실에 남아 엎드려 쉬고 있던 그 순간 변해버린 세상. 몸과 마음이 가장 나약해졌을 때를 노렸다. 독감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알 수 없는 바이러스라 여기고픈 심리의 공격이었다. 처음에는 큐브라하고, 빨간 불빛이라 하며 연우가 겪는 1년 남짓의 상황을 그려두었는데 1년 후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 아버지가 어렵게 말해준 이야기와 해곤의 어머니가 알려주셨다는 연우의 성장과정. 대략적으로 유추는 할 수 있었지만 이 시간을 겪어낸 어른들이 말해주는 연우의 상태로 독자가 연우의 심리까지 닿기에는 조금 아쉬운 복선들이었다. 배를 타고 나가는 아버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연우. 그렇게 시간이 연우를 자라게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벽을 쌓고 그 안에 스스로 갖히게된 연우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좀 더 촘촘한서사가 있었다면 우린 연우에게 더 깊게 이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을 읽게될 청소년들도 한 번 씩은 열병처럼 이 병치레를 하게 될 텐데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고민들을 연우와 비교해보며 서로 불행 배틀을 하라는게 아니라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었어'라는 식으로 서로의 아픈 순간을 각자의 온기로 토닥여 줄 수 있는 연대 형성을 하도록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를 의논해보고싶었다.
비 온 뒤 맑음처럼 우리는 여전히 꾸준하고 단단한 행복을 바라게된다. 설령 돌아가기도하고 남들이 뛸 시기에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레이스를 멈출 순 없고 멈추어선 안된다는걸 아니까 그래서 고뇌하고 자신을 다그치는 거겠지.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