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홍준저자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읽게 된 시기는 고3 2학기 후반이었다. 대입 수시1차 합격 후 내신과 수능시험의 예외인간으로 분류되어 4분단 뒷문으로 밀려났을 시절, 그때 정말 많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리만 지키면 되는 나일론학생이다보니 그때가 독서 잡식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사에 대해 애정이 없던 인간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이 책에 나온 곳 하나쯤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 꾸러미들. 몇달만 있음 누가 뭐라 할 것 없는 성인이기에 혼자 배낭여행 삼아 전국기행도 갈 수 있을거라는 무식한 기대감으로 이야기들을 마구 먹어치웠던 문화유산답사의 꿈. 비록 시리즈에 나온 곳들 중 열 손가락을 채 꼽지도 못할 만큼만 다닌 방구석 기행자 이지만 기차만 타면 이 지역 어느 명소엔 이 문화유산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단박에 떠올리게 만든 저자의 글은 한국 곳곳을 다니면서 알은체 하기 좋은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두고 있다.

오늘은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니라, 저자의 인생을 답사 할 수 있는 유홍준만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챙겨서 기차를 타 보며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답사를 같이 시작해 볼 까 한다.



30년만에 내어 놓은 잡문집. 제목 그대로 작가의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집필의 순간,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 살아오며 닿아있던 인연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부록으로 채워진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을 쭉 따라가보면 대단한 잡문집이며, 다시금 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낼 생각 없이 이 한 권으로 모든걸 끝내겠노라 싶어하는 저자의 욕심이 가득 담긴 모음이었다.

그가 말하는 글쟁이, 미술사학자, 문화재청장, 교수로서의 유홍준 인생만사가 담겨있으니 한 인간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사이사이 현대사의 굵직 굵직한 사건을 온 몸으로 겪어낸 것을 들어보면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대단함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으며, 외면하지 않았기에 나는 방구석 쇼파에 앉아 느슨한 자세로 문화유산의 세세함을 알아 갈 수 있었고,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음에 감사하게된다.

큰 아버지 뻘 되는 저자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나고 지루할 틈이 없었으니 당신의 일대기를 말하는 순간엔 얼마나 더 재미날지. 이제 국보급 역마살 글쟁이씨의 애틋한 세상에 스며들어본다.




📖우리 어머니 이력서_ "내가 죽으면 네 친구들이 죄다 문상 오는 게 장관일 텐데 그걸 볼 수 없는 게 서운하구나."

이야기는 2014년 어머니의 미수연을 맞이하며 나누던 이야기와 함께 저자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과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아두었다. 어머니는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일찍 결혼을 서두르셨고, 아버지쪽에서는 집안일을 해주고 제사를 지내줄 며느리가 필요로 했기에 맺어진 급한 혼사. 그리고 6.25시절 피난을 다니던 순간과 저자의 대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함께 추억하는 순간을 담아두었다. 사랑방 내지 꿀방으로 일컫을 만큼 데모꾼의 아지트 였지만 어머니의 너른 마음 덕에 배 곯는 청춘 없이 연탄불 한번 더 떼어가며 아침 먹여 보내주시던 모두의 어머니 같은 분. 그런 복작복작거리는 곳이었으니 아버지 또한 임종 며칠 전 우스개 소리로 하셨던 말에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응원이 대단한것으로 보여졌다. 운동권에 있던 학업에 몰두하던 자식이 하는 것에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응원하고 힘을 보태는 것을 보니 이러한 환경속에서 자라는 사람은 무얼 해도 자신감이 넘칠 수 밖에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리라는 목표가 절로 생기는 거라고 느껴졌다. 그러니 잡문집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 1장 인생만사의 마지막에 자랑스럽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거라 보여졌다.




📖문화재청장의 관할 영역_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보,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억 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고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에 가 있는 노랑부리어저새가 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문화재청장 시절 청장 10여 명이 모여 식사를 하며 모처럼 담소를 나누면서 하는 저마다의 업무 고달픔의 토로하게된 순간을 담아두었다. 각자의 시각으로 보며 통계청, 산림청, 경찰청, 해양경찰청까지 저마다의 관할 면적과 관리 범위를 말하다 제일 영역이 협소해 보이는 저자에게 화살이 넘어갔을 때 말한 내용이다. 마지막은 기상청으로 넘어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되지 않다는 말에 인생도처 유상수임을 느끼고 다들 해탈의 웃음을 짓게된다.

문화재라 하면 학창시절에 책에 있던 장소, 각각의 지역마다 한복을 빌려입고 들어가 사진을 찍는 장소, 외국인이 몰려와서 관광하는 코스가 끝이라 생각이 되지만 너머의 시각으로 보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채 땅 속과 바다 속에 뭍혀있는 것들, 그리고 발굴중이지만 정확히 시대를 파악하지 못해 연구중인 것들을 떠올려 볼 때 문화재들이 가지고있는 각각의 스토리를 떠올려보면 그 깊이가 대단하리라 여겨진다. 작은 토기나 조형물 하나에도 그 시대상은 물론이며 만들어진 계기와 지금껏 보관되어온 역사를 가늠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무언가가 후대에 소중히 보전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빨리 생겨나고 빨리 소진되어가는 세상인데 과연 훗날의 그들은 우리가 쓰고 생활하는 것에서 시대를 가늠하며 사회상을 유추할 만한 존재성을 지닐지 책읽는 와중에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만들었다.



📖백남준: 나는 그분의 조문객이고 싶었다_ 백남준의 장례식다웠다. 어느 신문이 장례식을 보도하면서 "웃으면서 보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장례식이었고, 무슨 공연장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흘렀다. 더불어 고인의 위업을 기리며 그의 족적을 남김없이 회상하는 하나의 감동적인 퍼포먼스였다.

얼마전에 이적 콘서트 관람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작품을 만든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니 흥미로울 수 밖에. 이야기를 읽다가 고인의 명복을 한국에서 빌 수 없는 조건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분향소를 나라에서 주관하지 못하고 한국미술협회가 장소를 빌려서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융통성이 없는 조치라 봐야 할까 어느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곧은 관점으로서의 행정으로 봐야할까. 백남준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 예외마저 두지 않겠다는 것에서 저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인의 장례에 모국에서의 예우가 아쉬워 자신의 휴가를 써가며 뉴옥으로 떠나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과정을 담아두었다.

저자는 미리 백남준 선생과의 인연은 없었음을 먼저 일러두었다. 백남준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만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음을 실토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펼쳐질 즈음 한국의 가정에는 비디오는 커녕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이니 당연히 생소했겠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좀 더 빠르게 당겨온 인물에 대한 존경의 마음.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고인의 업적에 대한 감사함과 후대로서 그 뜻을 잊지 않겠다는 신념으로서 직접 가서 인사를 했던 저자. 누군가를 깊이 존경하고 진득하게 응원하는 마음이라면 아마 저자의 나흘간 행보가 충분히 이해되었으리라 보여졌다. 이 마음이면 진짜 뭔들 못 가겠어.



📖리영희: 나의 주례 선생님_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다는 차이 아니겠어."

리영희 선생과 만남에 대한 스토리. 저자의 결혼식 주례사이며 유신독재 정권 시절을 살며 겪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 내가 체크 해 둔 페이지에는 더 좋은 글들이 가득하다.선이 굴고 멀리 볼 수 있는 법을 일러두는 것 부터 시작하여, 의사 결정에 대한 다른 견해 속에서 결정적 순간 큰일에서 의견 차가 생긴다면 신랑은 반드시 신부의 의견을 따르라며 인생 선배로서 경험적으로 드리는 충고라며 말씀하딘 것을 떠올리며 저자는 대학교수 발령과 미술평론가로서의 갈림길의 순간을 떠올리며 주례사의 문장을 되새기기도 했다. 이토록 두고두고 곱씹으며 매번 순간마다 이마를 치게 만드는 사람의 깊은 이야기. 혼인서약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혀있는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 것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에 공한할 것을 맹서합니까?'에 나라가 아닌 사회라는 단어로 교정해두어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굳게 이어가길 바라는 먼저 산 인생 선배의 진짜 진심의 응원. 두 사람이 하나의 운명으로 사는 시작점에 진심을 다한 축복. 이토록 다채로운 삶의 순간마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최고의 복이라 느껴진다. 인간적 행복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러니 살아볼만한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 그게 최고의 주례인거지.

인생만사라는 말이 찰떡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신을 기르고 가르친 부모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 업을 이어가며 겪어낸 고충과 최측근이 아니면 알 지못하는 직업적 생리까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예술가와 함께 연을 맺고 예술의 동반자로 지낸 벗과 스승에 대한 이야기까지. 저자의 글을 닮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글쓰기 방법과 다양한 문장수업은 유홍준의 특강을 들으며 열심히 필기한 내용을 받아들고 복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글을 구구절절 다 담아두지만 질질끌고 좌르르 달려있는 핑계와 변명이 없어 좋다.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스토리에 배우는 맛이 있고, 눈앞에 그려지는 세세함이 있어 담백한데 때로는 감칠맛이 있는 글맛에 계속 읽게만들고 책들을 수집하듯 책장에 좌르르 놓아두며 뿌듯해하는 나를 만들어 두는 것이 예사 글쟁이가 아님을 매번 감탄하게 만든다.

30년만의 에세이가 마지막 잡문집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시간 이후 또 변화되고 농익어있을 저자의 글빨은 또 그 나이와 시선으로 나타내어질 만한 글맛이 있을 테니 이후의 삶에서 더해질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유홍준만의 한국 문화 역사기행과 더불어 에세이가 촘촘하게 출간되길 응원해본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