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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 ㅣ 창비청소년문학 130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어른들이 잠들어 버린 세상에서 방황하고 성장하며 어떻게든 이겨내는 청소년의 성장 소설. 어른들의 시계는 멈췄고, 아이들만 남겨진 곳. 겪어보지 못한 상황으로 혼란은 계속되고 조금만 버티면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지쳐가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속에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고 숫자로서 분류되는 성인의 나이가 된다. 어른 없던 세상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세상. 바뀐건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만 먹은것이며 어제와 오늘은 별반 다르지 않은듯 한데 모두가 어른으로 바뀌었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다를 줄 알았는데 그걸 즐길 겨를 없이 세상은 여전히 혼란이고 어찌되든 버텨야하는 세상에 놓여져있다.
이야기는 강희가 남겨놓은 일기로 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애살있게 챙기지 않는 엄마. 기대와 주목은 쌍둥이 강석에게 넘겨진 시선. 어느순간 돌아오지 않는 아빠. 아빠가 보고싶고 그리운 강희. 사춘기 소녀. 아이가 보고있는 세상은 여느 여고생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아빠를 만나면'으로 지금보다 다른 세상을 기대하지만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창궐로 어른들이 모두 잠든다. 지쳐있던 어른들이 그렇게 도망치듯 꿈으로 잠적한 것. 어른들도 어른이 되고팠던게 아니었던 거지. 책임질게 많고 마음을 숨기며 살다보니 속 안이 곪은 듯 하다. 그렇게 우울 속으로 파고들어 꿈 속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있고픈 자기만의 굴로 들어간다. 그 자리, 그 상태로 잠든 어른들의 표정은 지금껏 보아왔던 모습과 달리 평온해 보이니 어떻게든 깨워야 할지 꿈 속에서라도 평안하길 바라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 미쳐 버린 건 세상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뭐가 됐든, 미친 세상에선 우리도 미쳐야 했다.
세상의 본보기가 되어주던 어른들이 잠들었으니 규율이 무의미해졌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권리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 잠든 부모의 생명을 유지시켜야했고, 자신도 살아나야 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언니의 울타리 속에 있던 여린 화초같은 아이들이 어른을 챙겼고, 약탈하는 존재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몰고, 자기보다 더 약자인 어린 아이를 챙겼다. 아파하면 잠을 줄여서라도 친구를 치료했고, 나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면 마음을 가다듬은 후 양보하기도 했다. 이기주의보단 같이 살려고, 같이 살아내어 이전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마치 아이들의 보호자가 자신들에 해주었던 배려와 양보를 빼다 박은 듯 그렇게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처럼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른들이 스스로를 가둬둔 꿈의 세상을 본 윤서. 루시드 드림을 겪으며 그 속에서 자신만이 누렸던 찰나의 행복 속에 갖혀있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꿈속에서라도 행복하는게 나을까, 꿈에서 깨어나 숨가쁘지만 그래도 살아봤던 진짜 삶의 문턱으로 넘어오도록 계속 부르는게 맞을까.
윤서가 잠을 깨우는 과정을 통해 아이가 되어도 봤고, 어른으로도 살고 있는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그리 많은 시간의 삶을 넘어 온 존재는 아니지만 사람에겐 촘촘한 감정의 겹으로 싸여 있음을 느낀다. 잔망스런 미운 다섯살 시절부터 시작해서, 흑염룡에 씌였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중2시절의 질풍노도를 거쳐, 신분증제시하며 당당하게 술 마실 수 있지만 아직 모르는게 많았던 스무살. 책임질게 늘어나더니 이젠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30대의 지금까지. 그러고보면 매번 요동치는 마음의 변화와 감정의 울렁임은 많이 벅차고 감당하지 못할 거라 지레 겁먹었음을 느낀다. 이제와 되돌아보면 제법 잘 버텨왔고 모나지 않게 흘러감을 느낀다. 힘들어도 뭐 내일은 괜찮겠지라며 무던하게 넘어가는 사람으로 바뀌다보니 단꿈이 주는 황홀함보단 현실에서 좀 더 사사로운 행복을 찾았음에 감사하게되는 단단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꿈에 빠져있는 어른들을 질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만의 서사가 있었고, 생의 굴곡은 다르니 나는 다행히 잠을 쫒을 재간이 있었다고 말해주고싶은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어렸다면 꾸고 싶은 꿈을 마구마구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난다거나 마법을 부린다거나, 내가 어떤 나라의 왕이나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되는 상상. 하지만 어떤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았다.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상황과 현실이 알려주는 삶의 방식. 꿈보단 절망을 더 깊게 겪었으니 이들은 꿈에 잠식되지 않겠노라는 마음이 크다. 어려움은 나에게만 오는 것도 아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틸 여력을 마련하면 도움 준 만큼 도움 받게되는 삶의 순리를 받아들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끝이 보일 때 과연 이 책은 '모든걸 극복했습니다!' 라는 급작스러운 화사한 엔딩으로 마무리 하지 않아 좋았다. 이야기를 급히 끝마치고,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에게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기뻐하시죠!' 라는 강요가 없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는 것이다. 세상은 유치원에서 보던 전래동화의 해피엔딩만 있는게 아니니 좀 더 현실적인 마무리를 해 준 듯 했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아이들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고, 많이 다쳐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 틈에서 자신보다 약자를 어떻게든 지키내려는 모습이 짠하고 기특하며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른들은 긴 겨울 잠을 끝내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중간에 길을 잃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잠들 수도 있음을 예견하며 다가올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으려 마음을 잡아두고 있었다. 모르고 맞딱들이는 당황스러운 현실보단 두렵지만 다가올 것을 알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 이제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고, 잘 버티고 있는 듯 해 마음을 한시름 놓아본다.
팍팍하지만 손만 뻗으면 내 사람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현실, 몽글거리며 행복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경계. 어른들은 그렇게 도피하는게 맞냐고 버럭 성질을 내고 싶으나 나의 어른들도 어른이 되에 두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처음부터 어른인 적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보다 더 막막하고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이 짠하고 가엾은 어른들의 찰나에 무던하게 등을 쓸어내려주고 싶어진다.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도, 앞으로 살아가며 어른이 될 아이들도 이 친구들처럼 서로가 무너질 것 같을 때 단단히 손깍지 껴주며 힘을 보태어주길 바라게된다.
📖 출판사를 통해 가제본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