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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위로 - 해야 하는 일 사이에 하고 싶은 일 슬쩍 끼워 넣기
김지용 외 지음 / 아몬드 / 2024년 7월
평점 :
주기적으로 이러한 마음 토닥임이 필요한 사람이다. 글자 도둑인 것 마냥 책에서 모든걸 배우고 익히는 사람으로 그게 편한 삶을 살다보니 위로의 과정 마저도 병원을 찾아가 주치의를 배정받고 상담을 하기보단 나와 닮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는 것으로 마음해소하는 걸 선호한다. 사람을 마주하는 걸 어려워하는게 아님에도 그게 편하다. 일단 내 이야기를 온전히 다 내어놓을 자신이 없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털어버려도 될지 모르기에. 그리고 상대가 그걸듣고 다음날부터 나를 바라볼 시선이 두려운 소문자i의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편한 방식으로 내 마음의 위안부터 받아야겠다.
📖입사한 해에 휴가 간 첫 신입_ 겨우 숨만 좀 돌린 것 같았는데 휴가가 끝나버렸다.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잘 해보겠다 다짐하며 마음을 재정비하길 바랐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도 나름 만족했다. '숨이라도 돌린 게 어디냐, 이렇게 쉬어본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용과 대담하는 방식. 김지용이 먼저 마음을 드러내어 주었고, 거기에 강다솜과 서미란, 김태술이 답했다. 그 중 나는 강다솜과 서미란의 이야기들에 많이 끄덕였다. 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직장인이라는 점에 집중했다. 잘하고픈 마음의 시작 입사 후 금방 소진되어버린 열정에 대한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다. 어렵게 입사한 것, 드디어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텐션 떨어짐 없이 쭈욱 이어지는 생활이면 좋으련만 격하게 기쁜 만큼 또 격하게 추락하는 에너지 소진의 과정. 그럴 땐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쉬는것, 쉬어주는 것이 답이라는 점에서 나와 일치함을 느꼈다. 무의식중에서도 작용하는게 숨쉬기라했건만 그게 버거워 질 때라면 의도적으로라도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강다솜 좀비 시절_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본인의 감정 상태는 잘 인식하지 못해요. 혹은 알아채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숨기는 데만 급급하죠.
사람들을 생각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너를 세세하게 보는 사람도 없을거다는 말에 '나도 알지!'라며 답하고 싶으나 알면서도 안되는 것에 짜증이 일어난다. 같은 공간에서 종일 생활하는 동료라고 하더라도 나를 하나하나 뜯어볼 듯한 사람처럼 느끼지만 생각보다 관심도 없고, 생각보다 애정도 없다. 그런데 내가 문제다. 내가 남들에게 어찌 보일지가 계속 마음이 쓰여서 그런다. 내가 어떤지보다 늬들이 어떤지가 궁금한 사람이 되어가고있었다. 학창시절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더 심해졌다. 괜히 귓속말이 신경쓰이고 내가 없을 때 나눌 이야기들이 마음에 쓰인다. 사회생활에서 밉보이기 싫고, 구설수에 오르기 싫은 마음이 나를 케이지 않으로 꾸깃꾸깃 욱여 넣는 걸 자처하는 듯 하다. 제 발로 작은 우리에 터덜터덜 들어가는 덩치 큰 코끼리가 되어가는 과정.
📖무용함이 우리를 구한다_ '이 무용함이 내겐 필요하다.' 무용함은 내 일상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한 수단이다.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날 지탱해주는 지지대이다. 그런 시간과 활동들이 반대로 유용한 일들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에, 이 무용함은 내 인생에 필수적이다.
쓸모 없는 것이 있긴 할까? 다 쓸모가 있으니까 만들어진 것이고, 판매를 하고 누군가는 그걸 구입하기에 이렇게 버젓이 나와있는거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무용함, 행위에 대한 무용함,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무용함까지로 형용사의 대상 범위를 확장해보았다.
사소한 것에서 주는 안정감,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깊은 애정. 소소하고 하찮다고 여기는 것에 따뜻한 눈길을 주며 내가 전해받는 에너지를 생각하며 제발 타인이 느끼는 그것과 비교하며 이 것마저 눈치보지 않았으면 한다. '왜 이런걸?'이라는 말에 상처 받는게 힘들다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롯이 내가 전해받는 에너지를 무용함과 나누며 평소엔 아닌척하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이구역 고인물로 사회생활 물 많이 먹은 우리들은 다들 '일반인 코스프레' 잘 하잖아? 우리 그렇게 여러가지의 부케 만들어내며 각자 나름의 무용함의 순간을 지켜나갔음 싶다.
📖장래희망이 '건강'인 아이_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 100퍼센트는 아닐지 모르지만 떠올릴 수 있는 굵직한 일들은 모두 내가 결정했다. 그 과정을 겪으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써야 했고, 때로 상처도 주고받았다. 선택의 결과가 모두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저자처럼 특정한 병명이 있었던건 아니다. 그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지금의 내 몸뚱아리(지금은 병명을 찾았지만 체격만큼은 어디 내어놓아도 지지 않을 건장함 보유중)를 떠올릴수도 없을 만큼 허약하고 자주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 잘 체하는 건 기본이고, 어디 스치기만 하면 멍이들고, 기력이 없었고, 자주 주저앉기도 했다. 그래서 집 근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내 절친이 되기도 했던 기억. 맞벌이 부모의 손을 잡고 가기 보다 제 발로 어그적거리며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으며 혼자 버텨냈던 시절이 있었다. 아픈 건 아픈거였고 하고싶은 건 하고싶은거였다. 그래서 좋아하는건 어떻게 해서든 했고, 하고싶은건 기를쓰고 나섰던 나의 몇 안되는 대문자 E시절이 떠올랐다. 명랑소녀가 있다면 그게 그시절 내가 아닐까를 떠올리게하는 제일 활발하고 생기넘치던 유년기.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신이나서 방방거리던 잔망미 넘치던 때를 떠올리면 하고 후회할래, 안 하고 후회할래를 놓고 나는 무조건 하고나서 후회하는 편으로 주저없이 나아갔기에 그래도 나이들어 '덜'후회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능력_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자신에게만 유독 어려워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허술함을 감추느라 애쓰며 이삼십 대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처럼.
그냥 미안해서였다. '나 때문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송구스러운 마음. 나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 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로서 시작되는 바뀐 사안들에 대해 눈치보기 싫어서 였을수도 있겠다. 괜찮다고 돌아오는 따뜻한 말 조차 그 너머에 감추고 있을 짜증과 번거로움이 반드시 있을거라는 마음에 그 숨겨진 무언가를 굳이 들춰내어 나를 후려치고 있음을 느꼈다. 안 해 도 될 걱정, 꼬아내지도 않아도 되는 해석인데 지금까지 쌓여진 데이터는 다른 이야길 하고있기에 이렇게 어렵게 사는건가보다.
📖"힘든 이야기, 죄송해요"_ "지나친 자기합리화는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적당하면 마음이 정박할 언덕이 되어준다. 자기비난과 자기합리화, 이 둘 사이에 적당한 균형과 긴장이 있어야 삶이 좀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진다."
살면서 이따금씩 마주하는 노잼의 시기 + 좌절의 순간 + 자책의 과정 + 포기와 단념 + 자존감 소멸 + 긍정적 사고 감소 + 육신의 활력 저하의 과정. 나만 겪는건가 싶지만 나도 겪는 과정이며, 한 번 왔으면 다시는 마주할 일 없을거라 영영 잊고 싶으나 초대하지 않는 손님인냥 잊혀질만 하면 스믈스믈 기어와 들러붙는 감정이 있다. 회차를 거듭하다보면 학습이 되었다 싶어하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처음 마주 할 때 처럼 회귀하는 당혹스러움은 매번 나를 살떨리게 한다. 그렇다. 이게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더 잘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내 몫의, 그러니까 내 밥값은 할 수 있다 싶을 정도의 깔끔한 끝맺음을 바라지만 내 머릿속의 의도와는 달리 몸이 반응하는 조급함은 더 잘 하고픈 마음과 합쳐져 아등바등의 형태로 드러나다보니 마음은 매번 울고 있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완벽히 극복 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입밖으로 떠벌리며 잘 지낸다고 하기엔 이 안온한 시간에 돌을 던지듯 찾아올 부정적인 감정을 몇번이고 맛보았기에 대답을 뭉뜽그리게 된다. 대단히 잘난 성과를 이룬 사람도 아닌 내가 몇번이고 주저앉아 긴 텀을 보냈던 나도 이렇게 지치던데, 꿈을 이뤄본 사람들의 씁쓸한 삶의 뒷편은 어떨지가 궁금했다. 타인의 슬럼프와 타인의 고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함이 아님을 일러두고싶다. 이렇게 잘 살아가는 사람도 겪으며 고뇌하는걸 들어보면 내 인생에서의 노잼과 삶의 빈틈은 당연한 인생의 사이클이었구나로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내 손에 쥐기까지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이름과 얼굴을 알린 이들이고, 더군다나 여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사람 중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PD도 있어서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었고, 더욱 집중하며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알려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로 읽힌다는 말, 책의 어느 한 대목에서든 자기 이야기가 포개져 보일 것 이라는 말에 완벽히 공감하며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