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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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해탈한 그녀들의 뒷모습이 표지에 담겨있다. 목욕탕 의자에 앉으면 어디서 쉽사리 내어놓지 못하는 말들이 술술 나오기 마련이지. 그리고 짦은 펌, 묶여있는 머리가 주먹만한 말림새, 그리고 이미 헤어팩을 하고 둘둘 말아둔듯한 싸멘머리까지 절대 젊은 아가씨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머리카락의 길이들까지. 이 탕 안에 발길을 들여 놓은지 족히 5년은 넘었을 듯한 달목욕 매니아의 포스가 풍겨온다. 여기서 나눴음직한 이야기라면 절대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과 함께 만나게되는 에세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저자는 범상한 필력을 지닌 숨은 고수였고, 그녀의 딸 김하나 역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 사람이 묵혀둔 이야기주머니는 얼마나 방대할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책 뒤에 적혀진 명언들이 예사롭지 않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

내 꿈은 고독사

너 아무도 안 쳐다봐!

...

엄마들이라면 절대 안 할 말들만 쏙쏙 골라서 일침을 놓고있으니 그녀의 말의 굵은 뼈들이 되어주었을 세월이 궁금해져서라도 펼치게 된다. 나의 글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이면 알거나. 나의 10대의 끝자락과 20대 초반 싸이월드 미니홈페 적어둔 장래희망. 괜찮은 어른, 선한 어른이 되고픈 사람으로서 이 책의 제목처럼 즐거운 어른도 애법 마음에 들고 있으니 또 하나의 장래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며 무심하게 넘겨볼까 싶다.





📖골든에이지를 지나며_ "까짓거 자지 말지, 뭐. 내가 뒷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대답해서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굶어죽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돈을 아껴 집을 사야할 일도 없는 사람. 꼴 뵈기 싫은 상사가 있어 꾸역꾸역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앉으나서나 자식 걱정을 하며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는 삶. 저자는 지금 딱 그 시기에 있다. 자식들이 되려 저자를 걱정할지도 모르겠으나 꼭 필요한 일 아니면 전화도 잘 안한다는 단호한 사람. 본인을 팔자가 늘어진 최고의 인생의 한 시절이라며 호쾌하게 말하고있다.

시간에 맞춰 꼭 자야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꾹꾹 눌러가며 눈을 질끈 감아 잠을 청할 필요도 없으며 목구멍에 약을 털어넣지 않아도 되는 삶. 통제하고 구속시키지 않으니 자신과 타협의 과정을 받아들여야하는 시기. 덜 바쁘고 덜 빠듯한 일과를 우울해 하기 보다 최고로 늘어지게 여유부려도 된다고 여기는 삶. 그 마음가짐이 부러울 뿐이다.

나로서는 뜻밖에 주어진 하루라는 휴무를 두고서 어떻게든 알차고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며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일말의 빈틈이나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도록 맞춰놔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렇다. 나는 바쁜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20대 초반부터 지금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성격은 쉬이 고쳐지지 않고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삶의 방향성인데 저자의 나이 즈음 되었을 때 유순한 골든에이지를 맞이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나.... 이런 성격 너무 부러워〒▽〒





📖유언에 대하여_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울컥하기도 하지만 담담한 마음. 그리고 자식된 입장으로서 감사하게 여기게되는 말들이다. 생의 끝은 언제나 아쉽고 슬프며 짠해진다. 영영 늙지 않고 싶지만 시간은 얄짤없이 흘러가고있고 그 속에서 누가 더 빨리 마침표를 찍느냐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당신의 마침표에 대해 속 시원히 알려주시고 훗날 그 날이 닥쳐왔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지않고 그 말을 떠올리며 절차를 진행 하는 과정. 몇번 겪어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결정하고 수순을 밟는 것에 큰 에너지를 쏟지 않게 해주는 마음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매일 슬퍼하거나 매일 그리워 하지 않고, 계절이 돌아 올 때마다 기분좋게 인사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마지막 말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내가 떠난 덕에 너희들이 한번 더 만나고 한번 더 생각 해주길 바라는 어른의 마음. 우는 것보다 읏으며 회상 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기대하는 어미의 애틋함이 밀려오는 단락이다.



📖엄마가 되면 비겁해진다_ 나는 내 아이들이 순한 삶을 살기를 바랐고, 특별히 잘난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냥 남들 사는 평균 정도의 수준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들의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랐기때문이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 잘 되면 자만에 빠질까봐 걱정, 못되면 또 안쓰럽고 짠하며 이 과정을 극복해 내지 못할까봐 걱정. 뭐 이건 사람구실 하도록 키워내는 데에 부업으로 걱정인형 꿰매고 앉아있는 것 보다 곱절로 드는 마음 쓰임이다. 순탄한 삶. 남들처럼 딱 그정도의 과정. 제 손으로 밥벌이도 할줄 알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험한 꼴도 안 보이는 튀지 않는 삶. 그러니 촌지든 어머니회 활동이든 학부모모임이든 빡빡한 삶에 쪼개고 쪼개어 그 틈에 끼려 했을 그시절의 엄마들의 마음이 고맙고 때로는 미안하다. 우리가 뭐라고.....

그런 덜 영근 놈들이 다 커서 제 밥그릇 챙기고 다녀도 엄마의 비겁함과 엄마의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는게 큰 문제이지 않을까. 딸놈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해지며 같이 늙어가고 있다며 우스개소리를 해도 절대 엄마를 이겨먹을 수 없는 반푼이 애 인게 분명하니 말이다.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_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우스개소리로 남편에게 하는 말이 여기에 담겨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생의 끝을 바라보는게 힘들다. 그리고 더군다나 당신이라면 나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배우자의 끝을 잘 마무리 해야하는데 나는 그럴 마음의 여력이 없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당신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먼저 생을 끝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당신이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하니 맛있는것도 많이 먹이고, 영양제든 운동이든 계속 해주면서 보필 할테니 부디 나보다 오래 살아줘. 순장은 안 바랄게ㅋㅋㅋㅋㅋ 그저 나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 라고......(

이 이기적인 이야기는 연애때부터 결혼 10년차가 될 지금까지도 일말의 고민없이 해오는 이야기다. 나는 진지하다. 궁서체로 적어두고싶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사고사가 아니고서야 함께 숨을 거두는 일도 극히 드물다. 저자는 배우자를 직접 배웅한 사람이니 일단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남겨진자의 슬픔은 어쩔 수 없으니. 그래서 그런가 검은머리 파뿌리처럼 희게 되더라도 그렇게 잘 살아와도 결국 끝은 눈물바람인건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얄궂어 정말.




📖심란하고 난감하고 왕짜증 났을 때_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니 애지간한 일은 다 겪어 낼 만큼의 시련이었고 난관이었더라. 라는 식의 해탈한 인생 스승의 말씀. 두 세기를 다 살아본 저자이며 핏덩이를 사람구실 하도록 키워낸 이. 몸에 사리 몇개는 충분히 만들어 내고도 남을 내공의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이런들 저런들 지랄맞고 난잡한 순간이 있더라도 지나보니 발에 채이는 자잘한 돌뿌리 같은 걸림돌이었음 담아두었다. 이 모든 문장은 너른 마음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생을 살아온 자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어릴 적 언니랑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워서 자며 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아빠의 팍팍했던 젊은 시절. 제 앞가림도 하기 빠듯했을 때에 오붓한 신혼 살림이 아니라 거기에 숟가락 들고 눌러 앉았던 시동생들과 살던 샛방살이에서 키워낸 두 딸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 다른 친적집에 맡겨지지 않고 튼튼한 벽이 있고, 물이 새지 않는 지붕이 있는 곳에 둘이서만 잘 수 있는 방이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거냐며 제법 어른스러운 말. 이제 막 어린이 티를 벗은 중학생이 해준 말이지만 초등학생인 내가 듣기에는 최고로 멋진 말 이었다.

그렇다. 이정도로 살아 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그 많은 천재지변과 의도치않게 빚어지는 사건사고들에도 이만큼 무탈히 지낼 수 있는 것도 모친과 부친의 애닳는 걱정과 노력으로 거저 얻어 살고있는 삶이라는걸 이제서야 느끼게된다.


슬픔도 지나갈 것이고,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 지기 마련이라는 점. 평생 주구장창 같은 감정으로 살 일도 없으니 오면 맞이해주고, 간다하면 배웅해주는 삶. 그걸 말해주고픈 엄마이자 인생 선배의 후일담 같은 것. 내 친 엄마랑 이야길 한다면 아마 오늘 약은 먹었느냐부터 시작해서 밥은 잘 챙겨먹고 있긴 한거냐. 오래된거 있음 미련없이 버려라. 전기세 조금 아낀다고 달라지는거 없다. 더위먹으면 병원비가 더 든다. 에어컨 맘껏 틀어라. 옷 한장 산다고 내 통장 바닥나는거 아니다. 이쁜 옷 입고 살자. 그러니 기쁘게 입어주라. ...... 안다. 내가 우리집 독설가이며 독불장군이다. 그래서 순순하게 엄마의 이야길 듣지 못하고 승질부터 부리는 개딸이다. 울 엄마도 이런 말을 종종 해주셨는데 그 시절의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 가여워서 두 귀 막아두고 안 들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진득하게 박히는 느낌이다. 나의 엄마뻘의 그녀이며 엇비슷한 삶을 살아왔음이 분명한 굴곡이 제법 있는 사람이니 아마 울 엄마도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고싶었던게 아닐까를 유추해보며 각각의 이야기를 들었다. 듣길 잘 했지. 읽기 잘 했지. 최선 하다면 네가 맘 고생이 컸다는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아라. 예민한 네가 하나의 일 갖고 애쓰면 또 몸 상한다. 그러니 다 지나갈테니 조금은 풀어두자. 혹여라도 유명해져서 네 이름 석자로 다른 사람이 알아보면 좋기야 하겠지. 헌데,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물고 늘어질 개떼같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다 마음이 닳는다 그러니 조금 덜 유명하고 덜 튀게 살아보자 하는 항시 전전긍긍하는 마음들이 있어 벅하고 울컥함이 가득했다. 때때로 엄마 목소리가 그립고 엄마 잔소리가 흐릿해지는게 느껴지면 이 책으로 긴급수혈 할 수 있도록 손이 가장 잘 닿는 책장에 넣어둘까 싶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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