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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평점 :
고 습하고 찐득거리는 계절에 딱 어울리는 호러소설이다. 내가 공포영화도 잘 못 보는데 글은 괜찮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초딩시절 수련원에서 담력체험 한답시고 링과 주온을 틀어주며 야맹증인 놈을 뒷산에 손전등도 없이 다녀오라고 했던 날것의 교육. 90년대엔 이렇게 사람을 강인하게 키우려했으며 정작 당한 당사자는 두 무릎에 상처딱지를 남겼고, 뭐만 하면 놀라제끼는 인간으로 만들었지.
그런 쫄보가 읽어도 적당히 스산하고, 적당히 쫄아들고, 또 깊이 파고들면 짠해지는 글을 완독하게 만들었다. 결국 인간이 제일 무서운 거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게 만드는 소설. 돈, 죽음, 칼, 그리고 조예은의 문장들.
출판사에서 제공한 홍보문구와 영상은 그야말로 물개박수 치게 만들도록 잘 찍어냈더라.
이야기는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1940년대에 머물렀던 준영과 2020년대 윤주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이어진다. 준영은 윤주의 외증조모로 이곳 적산가옥에서 상주 간병인으로 살았던 이야기의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을 윤주가 읽어가며 같은 장소 다른 시간. 같은 장소 다른 사건을 겹쳐보여주게된다. 외증조모였던 준영이 왜 윤주에게 상속받도록 한 것인지. 그리고 준영이 조선인 간병인으로 들어와 있으며 맡게된 유타카는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며 이야기는 깊어진다. 윤주의 곁에서 착한 사람, 한없이 윤주를 아끼던 남편이 될 우형민은 무엇을 위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의 곁에 있는 건지를 알아가며 준영의 이야기의 끝과 왜 자신이었으며, 그 자신에게 알려주려한 건 무엇인지를 알게 될 즈음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사람의 욕망과 죽음은 잇닿아 있음에 씁쓸해진다.
📖그런 식이었다. 불행과 큰 재난을 비껴가는 그의 능력은 그저 행운이 아닌, 어린아이의 살을 베어내 얻은 결과였던 것이다.
조선인 간병인 준영. 이야기의 시작은 준영이 나이들어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 되는 적산가옥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 죽음으로 인해 이곳을 상속받게된 윤주의 시점으로 번져간다. 그 전에 이 적산가옥을 말하자면 준영이 오게된 시점부터가 순서겠지.
일제강점, 조선땅에서 유복하게 살던 일본인 상인 가네모토. 그에겐 외아들이 있는데 전혀 닮지 않은 외모(닮았다면 모친과 닮았다고 기록되어있음)와 함께 집밖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듯한 뉘앙스로 그 아일 봐줄 상주 간병인으로 고용되어 들어온다. 병약하고 예민하고 폭력적인 걸로 알려진 아들 유타카. 양자로서 아버지에게 육체적, 정신적 폭력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를 해할 때 얻어 낼 수 있는 예지력같은 녀석의 능력. 불행을 비켜가고 재난을 피하고, 사치스러운 부를 독식 할 수 있었던건 유약한 양자에게 폭력과 상처를 내면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미래 때문이다.
양자로 얻게되어 가족이 생긴 기쁨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의지는 개뿔. 이 녀석이 곁에 있어야만 돈이 들어오고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기에 집밖에 내어 두어서도 안되고, 집 안에서 혼자 죽게 내버려 둘 수 도 없는 가네모토의 황금오리이자 개인의 소유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악의 시작과 독의 정점은 사람이다. 지주와 농민에게 빼앗은 땅으로 곡식을 수출해 부를 축적했고, 사업에 모든 성공을 거머쥐고, 치고빠지기의 귀재처럼 그려지지만 그 중심엔 도련님으로 불리우는 아들이 있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유타카는 알면서도 아버지라는 인간의 곁을 떠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그럴 일은 없어. 나도 아버지도 곧 죽을 거거든." 자신의 죽음마저도 예견하고, 아버지의 죽음 또한 알고 있는 소년. 죽음을 거스르지도 않을 것이며, 이러한 인간 살상의 과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삶. 유카타는 도망가면 잡혀 올 것이 뻔하고, 벗어나려해도 결국 아버지의 손 안이라는 걸 알기에 그냥 다 내어두고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는 듯 했다. 족쇄를 채워넣지 않았지만 집 안에 상주하는 직원들의 눈과 귀가 사지를 묶어 놓은 듯한 상태라 죽을날만 기다리는 산송장의 기운을 담고 있어 측은함이 더 깊게 번지게 만든다.
📖이 또한 새로운 방식의 노략질을 위한 발판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해무에 가려진 낙원의 섬을 발견한 것만 같은 흥분까지. 첫째로 당황스럽고 둘째로 기뻤다. ... ... 설레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급변은 어쩄든 현 상태의 종말을 의미했으므로, 곧 다가올 붉은담장집의 결말을 기다려야 했다.
코앞에 다가온 광복. 어쩌면 나라가 얻게될 자유보다 자신의 걱정과 근심의 원흉이 사라진다는 기쁨이 더 크게 와닿을 것이다. 헌데 그것만 바라보기엔 내가 모시는 사람, 내가 보살펴야 하는 가족 이외의 또 다른 인물의 안위가 걱정되어 마냥 기쁠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의 종종거림. 이미 유카타에게 들은 단어들도 있었고, 그렇다면 이 작고 유약한 소년에게도 끝이 코앞에 다다른거라 봐도 무방한 것인데, 이녀석이 거짓말을 한게 아니라면 얼마 남지 않은 것인데 그러면 그 이후에 자신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잡고 있어야하는지를. 그렇다고 섣불리 서두를 수도 없어 바라만 봐야하는 입장. 준영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따스한 땅콩빵을 품에 안고 돌아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다라서 마음이 쓰인다.
가족이라는 고리에 엮인 이보다 더 마음을 써주는 사람. 돈을 위해 죽음이든 칼이든 서슴치 않는 상황을 알지만 그럼에도 무던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것. 그 무던함이 유카타를 좀 더 살게 만들었고, 윤주에게 정신차리고 버텨야 함을 미리 언질해주는 준영의 성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작가의 말_ 산 자가 죽은 자의 삶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타인의 눈으로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직 호러만이 죽은 자가 죽은 입으로 자신의 소리를 낸다. 그 장르 안에서 상식은 쓸모없다. 실체 없는 유령들에게 경계란 무의미하니까. 그들은 육체가 사라졌어도 집요하게 남아 말을 건다.
준영의 이야기 만큼이나 이곳으로 정착하려는 윤주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준영 못지 않게 윤주 또한 평범한 세상에 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예민하게 주변을 살피지만 정작 자신의 앞에 마주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충격을 받게 된다.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남편이 될 사람과 아내를 나란히 두고 믿음과 사랑이나 행복의 미래를 꿈꾸기 보단 이 사람을 밟고 올라가 더 많은 부와 상대를 배제하여도 상관없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 그 끝으로 가는 방식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들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상대의 고통이나 감정의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나마 유타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었고, 가장 좋아하는 땅콩빵을 사다주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던 유일한 사람.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어찌 할 순 없겠으나 준영의 생에 앞을, 그리고 준영의 자손이 겪게될 큰 시련을 미리 알려주고팠던 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 받은 이가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었다. 준영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간병인 간호사 이기 이전에 유일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말벗이며 걱정을 해주는 존재였기에 서늘한 적산가옥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어떠한 실체없는 유령이라 한들 결국 사람의 독한 심성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악함이 결국 다시 업보로 너울처럼 넘어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걸 확신하게 되는 글이다.
귀신이든 나발이든 사람, 늬들이 제일 무서워.(나는 꼭 사람이 아닌 것 처럼 말하지만 나도 뭐 결국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