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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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24 브런치북 대상작으로 선정된 현직 기관사 작가가 풀어주는 썰들. 입담도 말맛도 소재들도 재미요소 가득하며 대학 때 통학하며 주구장창 탔던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의 이야기라 관심도 갔고 친근감도 가득해진다. 삽화 또한 예사롭지 않다. 흥미로우면서도 또 진지한 그림체에 피식 웃게된다. 진지하게 웃길 줄 아는 글과 그림이라는 예고장 같이 느껴진다. 그럼 주저할게 있나 후루룩 읽어가며 기관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관찰기에 스며들어본다.





📖비 오는 날의 지하철과 '쟈철에페'_ 하지만 그럼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는건, 내 손님들의 일이 중요한 일인 동시에 내가 하는 일 역시도 우리 도시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비오면 모두가 예민해진다. 장우산의 경우는 오므려서 묶어두지 않아서 누군가의 다리를 스쳐가며 닦아내는게 맘에 안들기도 하고, 3단우산은 밟히기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미끄럽고 축축하니 심기를 거슬리게 하기 딱 좋은 조건. 타는 사람이야 그뿐이겠다만 그 큰 지하철을 모는 사람은 습기로 인해 젖어든 노면과의 싸움. 그리고 생각도 못한 쟈철에페인의 공격을 어찌 방어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눈치싸움이 포함되어있었다. 가끔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한다. 비오는 날 배깔고 누워서 이불 덮고(여기에는 비오는데 공기는 또 선선해서 선풍기를 틀든 온도가 낮아야 이불 덮는 맛이 있다) 여기에 책이나 음료 한잔을 곁에 두고 한량짓 고 싶은 방구석 평화주의자가 되고싶으나 현생에 치여서 결국 꾸역꾸역 출근하고 학교가고 일상을 이어간다.

나나 저자나 결국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앞세워 어떠한 이유에서든 변함없는 삶의 고리를 엮어가야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엮어가는 일상에 저자의 몫도 있고 말이다. 꼭 필요한 일. 그래서 더욱 티가 안 나는 일. 그러니 더욱 꾸준하고 부지런해야만 하는 일. 있으면 티가 안나고 없으면 티가 더욱 크게 나는 그게 저자가 가진 몫의 일로 보인다.



📖수요 없는 공급, 차 놓치는 꿈_ 주변 사람들과 아웅다웅하지만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 별 볼일 없고 평탄한 것만 같았던 내 소소한 일상이 실은 기적의 연속임을 실감하게 된다.

잘 하려고 애쓰다보면 꼭 이렇게 망작의 길로 빠지는 꿈을 꾸게된다. 불안이 걱정을 키우고, 걱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그로인해 잘 하면서도 계속 헛다리 짚듯 버벅거리는 것. 눈 떴을 때 안도와 동시에 꿈이라 망정이지 현실이었으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수순이 앞에 그려진다.

나는 지인과의 안부에 꼭 이런말로 끝맺음을 하게 되곤 한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뭐 거창하고 대단하고 드라마틱하며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의 날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별일이 없이 유순하게 흘러가는 것. 되새겨보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뜻깊은 날이 아닐지 몰라도 걱정하며 미간 좁히는 일이 덜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나는 그냥 무탈히, 무던히 넘어가길 간곡히 바랄 뿐이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주인공_ 누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했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는가? 필연적인 존재는 누구였는가? 아마 아까보다 더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물음을 바꿔보겠다. 뭐가 없어도 됐는가? 누가 없어도 됐겠는가? 방금의 상황에서 누가 필요 없는 존재였는가? 그렇다. 필요 없는 존재란 없었고, 모두가 필수 불가결했다.

각각의 작품에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 비중의 차이도 있을 것이며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로 구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지의 여부에 따라 얼굴도장 많이 찍은놈은 주연이 되고, 배경이 되는 인물은 조연, 혹은 단역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상호 유기적이라서 조연이 없으면 주연이라 굳이 말할 필요 없는 1인극이 되고 말 것이고, 주연이 없으면 이야기의 중심이 없는 흐리멍텅한 문장과 장면들로 의미없는 시간늘리기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있어야 되니 존재하고 없어도 될 것이라면 진즉 사라지고 말 존재였을 것이다. 허투루 쓸 수 없는 인력은 조직내에 절대 그냥 두지 않더라는 직장인 고인물로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저 보여지는 것, 남들에게 비춰지는 것. 허울 좋고 말하기 좋은 것이 주연으로 삼아지는 조직사회였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굳은일과 수고로운 것들을 서슴치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별거 아닌양 휩쓸고 지나가는 각 분야의 달인들이 있기에 사건이라 할 만큼의 이야깃거리도 안되는 걸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활의 달인이 별거 있나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게 다들 생활의 달인들이지.





📖핵융합보다 제어하기 어려운 냉난방 조절_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부재하게 되었을 때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하철의 냉난방이나 시계의 건전지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건강이나 사랑, 가족, 친구, 내 영혼 같은 소중하지만 당연하다고 여기기 쉬운 것들의 건전지가 다 닳는다면. 단순히 불편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편을 넘어 불행의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삶의 조율. 뭐든 적당히가 어렵다. 모자라면 더 부지런을 떨며 채우면 되겠고, 넘치면 욕심 부리지 않고 그 선에서 멈추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그래서 늘 화를 품게 되고 짜증으로 덮여있는 성질머리가 된 듯 하다. 더우면 손부채질 몇번 더 하면 되고, 추우면 가방에서 얇은 옷 한겹 더 입으면 되는데 그게 싫은거지. 굳이 내가 왜? 로 시작되며, 내 말이 우선이 되어야 속시원한 자기중심적인 맞춤형 지하철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성질머리가 개떡같아서 1차로는 참지만 2차는 못 참는 주둥이를 갖고있다. 그렇게 더워서 안달복달이면 지가 차를 몰고 다니던가, 택시를 타던가. 추우면 지하철 타지말고 땡볕에서 뛰던가로 극단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암요암요. 기관사가 그랬다간 민원 폭탄으로 파묻힐수도 있겠다. 이렇게 할말 다 하고 살 수 없으니 본인은 동태가 되고, 여름엔 걱정인형을 자처하게 되나보다. 불편을 감수할 생각 없는 사람들로 변화된 세상. 불편을 삼키고 불만을 한번이라도 눌러서 깔고 앉을 생각 없는 엉덩이에 가시돋힌 사람. 과연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사랑하는 이가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다면 똑같은 말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 더 독을 쏟아내는건 아닌지를 생각해본다.

텔러들이 고객을 응대 할 적에 누군가의 가족이기도 하니 폭언과 고성을 금지해달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 처럼, 누굴 상대하든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지울 수 없는 오프닝 시그널이 존재하면 좋겠다.


📖분노의 화신과 13 기관사, 그리고 최후의 티타임_ 이 묵직한 말들에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따라붙는다. 그게 이 단어들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분명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세상 어디에나 양면성은 존재한다. 책임감은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2부의 지하철 어벤저스 열전의 이 대목과 연결되는 3부의 '철도 역사상 가장 억세게 운좋았던 행운의 기관사 이야기'를 함께 이어붙이고 싶다. 기관사가 되기의해 다수의 시험과 사람을 쪼글리게 만드는 면접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임감.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엮여있는 업을 갖고 살아야하는 직업이자 그 자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 사명감만 있어서는 안되며 빠른 대처능력과 판단력도 고루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멀티맨. 그러니 더 예민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고, 더욱 날카롭게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찾아 낼 수 밖에 없는 3번 면접관님의 간절함이었다. 나의 실수나 과오가 나로 인해 끝이 난다면 굳이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그게 아니기에 더욱 명확하고 확고함이 필요한 직업이라는걸 면접장과 대조되는 면담의 온도차로 13인의 기관사들은 더욱 진심을 얻어 간 듯 보였다.

같은 사람이라 한들 상황와 위치와 조건에 따라 사명감이 커지고 쪼그라들기 마련임을 느낀다. 나름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조금씩 다른 직군에서 일해본 바로 나같이 회사 지박령이 되기보다 본분만 하고 선긋기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있더라는 거지. 없던 의협심이 생기기도하며 개인주의적 인간이 공동체주의적인 공공의 뜻을 중시하려는 성향으로 바뀌기도 하는 걸 보면, 그 조직의 밀집도와 내실에 따라 사람도 바뀌고, 구성원의 탄탄함도 달라짐을 느낀다. 아마 3번 면접관님의 모습이 훗날 저자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기관사님 이 직업에 뼈를 묻으셔야 된다는 소립니다!!)



📖완벽주의자 기관사들의 루틴_ 뒤에 탄 승객 수백 명의 안전과 시간을 책임지고 있기에. 마찬가지로 당신이 삶을 살다가 어떤 개인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적당히 포기하지 말고 기관사적 관점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보길 바란다. 직장일을 대하듯 책임감을 가지고 내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내야 한다. 까짓 조금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맞다. 포기하면 편하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 그만큼 당장에 편하고, 습관이 되어버리면 엄청 불편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하루가 된다는 소리다. 뭐랄까, 숨쉬고 있으니 살아간다는 뉘앙스이며 출근을 해야하니 가서 일하는 거라는 식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마지못해 하는 삶. 당장 누가 쓴소리하며 호통치진 않는다. 다만, 그게 지속되면 매너리즘이 들러붙어 버리겠지.

헌데 이왕 사는 삶,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은 직장인데 그게 되겠냐는게 저자의 마인드. 그리고 동료들의 부지런한 행동들이다. 같이 섞여 있으니 서로 물들고 변화시키며 서로를 북돋으며 나 역시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주먹을 쥐게 된다.

완벽을 기대하는 책임감. 나로 인해 끝나기 보다 나로 인해 지속이 되며 더 나은 목표점으로 다다르길 기대하는 긍정에 긍정을 얹은 사람들. 이런 조직이면 누구든 완벽주의자를 지향하는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될거 같아 부러워진다.



📖늙은 열차의 시간_ 늙는다는 게 이런 거 아닐까? 미안할 일이 많아지는 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려주는 내게 미안하단 말을 셀 수 없이 하시던 이웃 할머니. 마음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서 몸의 시간을 따라갈 수 없었고, 그게 그들을 사과하게 만들었다. 아직 서른네 살에 불과해서 제대로 된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처럼 주변의 늙어가는 사람과 환경을 보며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저자는 20년 넘은 노쇠한 열차를 늙은 열차의 시간으로 보았고, 그걸 한 인간의 노화와 나이듦 속에서 세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교차하며 이야길 했다. 종종 수리가 필요한 열차. 때때로 고장이 나고 정비를 통해 복구가 필요한 시간을 알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잡고 어서 올라 타길 기다려주는 시간도 닮아있음을 느낀다. 늙는게 슬픈건 사실이다. 예전만 못하고 마음과는 다르게 느리며 때때로 잔고장이 일어난다. 최고의 순간을 기점으로 삼아 영원의 지속성을 바랄 수 없는건 인간인든 기계든 매한가지임을 보며 솔직히 아쉽긴하다. 은퇴한 열차들이 타국의 수출로 다른 회차의 삶도 있으니 마냥 씁쓸하게 보지만 말자. 짐작만 하는 거지 확정된 인생 회차는 아니잖아? 우린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미리 겪은건 아니다. 그러니 늙은 열차의 시간이 결코 서운하며 서러움투성이 일거라는 엔딩에 몰입하지 말자. 기관사적 관점 그거 있잖아. 그거에 이 시간을 대입해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면 또 다른 시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게 사람 일이랬으니 미리 새드엔딩을 만들어두지 말자는거다. 때때로 미안한 일이 있겠지만 그걸 앞세워 미안함을 당연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늙은 열차의 시간에 오늘 쓰고 남은 내 열정을 한덩이 툭 내어줘볼까 싶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더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는 인력 덕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아무런 걱정과 불편함 없이 보내고 있음에 감사해진다. 가끔 이 감사한 평온함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때도 있으며 이 배려가 익숙함으로 여겨지기도 해서 각성하듯 이들의 고충을 읽어가며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음에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이의 수고로움, 어떤 이의 배려와 희생이 있기에 편하고 익숙하게 일상을 겪어내고 있으니 얼마가 감사한 삶인거냐구. 나는 또 오늘을 빚지고 살고있음에 큰 보답은 못하더라도 눈맞춤하며 꾸벅 인사하게 된다.

그런거 있잖아. 남들 쉴때 나도 쉬고 싶은 직업이었으면 좋겠고, 9 to 6 에다 워라벨도 있고, 당연한 생리현상에 대한 걱정없는 일상을 겪어내고픈 것. 책임소재는 되도록이면 남이 해줬으면 싶고, 타인의 액션으로 인해 내가 겪게될 트라우마도 없었으면 싶은 것. 내 몫의 것만 하는 걸로 월급받아 영위하고픈 삶이지만 그게 안되는 직군의 이야기. 사명감을 넘어선 소명의식까지 있는 너른 마음보다 더 큰 사람의 이야기 덕에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한게 아님을 깨닫는다.

내 일이 힘들다고 마냥 징징거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쩔수 없이 힘든 업의 순간이 가득한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사랑하고 좀 더 꾸준히, 그리고 오래 하고픈 마음이 가득한 사람의 글임은 분명하다. 기관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하며 시험과 교육이 이렇게 많은지도 난생 처음 알게되었으며 직업병이 생길 정도로 지하의 쇳가루에 파뭍혀 사는 시간. 그렇게 미간 좁혀가며 집중하더라도 때때로 아기 손님들의 눈맞춤에 사르르 녹아버리고 무장해제되어 마구 손인사하게 만드는 영락없는 지하철 멋쟁이 기관사아저씨. 짬이나고, 사측에서 배려를 해주신다면 북토크를 통해 더 많은 썰들을 듣고싶게 만드는 썰부자 기관사님의 이야기. 부디 이 책이 인기를 등에 업고 지하세계의 은밀한 이야기 버전2가 나오길 기대해보는 1인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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