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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벽돌책이 아님에도 생각이 많아지고 문장들이 주는 힘이 세게 느껴져서 한참을 생각하게만들었는데 그러한 말의 힘을 지닌 저자의 최근작도 읽었고 고민했으며 또 전하고자하는 이야기의 깊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생각이 많아져 한참 후에 글을 적게 되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나름 평온하다 여기는 가정의 가장. 그리고 자신이 꾸리고 있는 단란한 가족. 비록 펄롱은 흔히 생각하는 친부모의 밑에서 자라진 못했으나 좋은 어른을 둔 덕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자신으로 부터 뻗어진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들을 더 단단하게 지키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내, 딸들, 그리고 그들을 배 곯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직장.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살고 있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있으며, 빠듯하더라도 산타를 대신해 아이들이 바라는 선물을 살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살아간다. 펄롱 자신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딸들에게는 그러한 풍파가 다가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자신이 막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 오늘이 무사했으니 내일도 그러하기를. 받을 돈이 얼마인지, 또 내일 얼마를 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사람이다.
아내 아일린은 펄롱의 성향을 때때로 구박하기도 하는데 남들에 다 퍼주듯 나누고 돕는 성정에 핀잔을 주지만 그렇기에 그를 남편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살아가는데에 주변을 살피고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니 그에 대한 걱정은 그가 받을 상처와 세상으로 인해 또 한번 배신당하거나 외면당할까를 앞서 걱정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가족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그런 말이 있다. 때때로 흐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알지만 모른척 해야 하고, 이게 잘못된 거라는걸 판단이 섯으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자신의 위치나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튀는 행동이 될 수도 있으며 보이지않는 계급이나 이해관계로 인해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으니 그 모든 짐을 떠 앉는 위험수당을 부러 겪으려 하지 말자는 것.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 먼저 나서지 말자는 아내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목소리였다. 아내는 자신이 품고 있는 가족, 어린 딸들을 지키고픈 마음이 커 보였다. 부모가 있고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니 자신의 따들은 펄롱이 보고 고민을 하던 수녀원의 아이들과는 부류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단호한 입장이다. 거기에도 아이들을 보살피는 수녀들이 있으니 우리보다 더 세심하게 볼 것이라며 펄롱의 의문을 덮어버리고픈 마음.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말하던 단호한 입장.
하지만 펄롱의 시선은 다르다. 자신도 누군가의 걱정스러운 시선과 손길로 자라왔으니 수녀원의 아이들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살폈던 미시즈 윌슨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 남편이 없는 것 처럼, 펄롱 자신도 수녀원의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픈 마음이었다. 댓가를 바라지 않았던 미시즈 윌슨의 행동을 이제 갚을 차례가 된 거라 믿는 단호함이다.
자신이 자라온 여건과 자신을 만들어온 히스토리가 있기에 펄롱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었던 것. 여기서부터 나는 계속 나를 향해 질문을 하며 책을 읽게된다. 나는 펄롱과 같은 성장 히스토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변에도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지인이 없는 조건이다. 매체에서만 봐 왔고, 내가 경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때때로 여유가 생길 때 조금씩 기부를 하는 걸로 후천적 선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인간이다. 나란 놈이 수녀원의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석탄만 옮기고 내 일은 여기서 끝이니 간섭이든 관여든 아무것도 하지 말자로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인가. 아이들의 행색을 살피고 불안한 시선들에 예의주시하며 그 집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긁어낼 것인가. 나는 펄롱같은 인간인가, 아니면 아일린같은 생각이 더 지배적인가. 이 물음에 단박에 대답을 하지도, 똑 부러지는 답변을 내어놓지도 못한 채 문장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여기서 펄롱이 말하던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한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지를 되뇌인다. 나는 여기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어떠한 종교의 믿음과 신념이 있기에 꼭 해야 하는 성품이라고 단정짓고 싶지 않다. 종교에 대한 인식이 썩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종교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인간으로서 이 문장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는 게 맞다고 보는 입장이다.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었기에 도와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그 사람의 폭이 넓고 선한 시선과 주저하지 않았던 행동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라 말하고 싶다. 세상엔 정말 많은 부류가 있다. 펄롱처럼 유년기를 겪었으나 펄롱과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인물도 수두룩하고, 다 가진 자로서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대되는 계층의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지 입에 들어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리고 자기만 잘 사는게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자신의 수고로움이 어떻게 상황을 변화 시킬지. 모두가 흐린 눈으로 보는 것에 반기를 들고 책의 제목과도 같은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쓴다는 것. 분명 에너지가 쓰이고 평온하기만 할 자신의 삶에 작은 물결이 칠 경우가 있을 것이고, 때론 큰 너울로 다가 오게 될 것이다. 그걸 감내하는 것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이의 여건이 달라진다면 흔쾌히 맞바꾸려하는 마음. 책은 그걸 사소한 마음이라 했고, 우린 그걸 대단한 마음이라 하게된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펄롱은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 말했고, 코 앞에 닥처온 고생길이 보인다고 했다. 헌데 나는 최악은 이미 넘어 선 듯 보였다. 펄롱이 나서지 않았다면, 사소하다고 여겼던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펄롱의 삶은 평온했을지라도 그 아이가 겪을 상황은 최악의 정점을 찍고 끝을 모르는 일들만 지속될수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나눠가졌기에 덜어진 고통으로 정리하고싶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손을 내밀어 끄집어 내어주었기에 최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 한다면 펄롱의 다정하고 친절하며 희생과 대가를 바라지 않던 마음이 무의미 해지기에 우리는 이걸 진하고 깊은 마음이라 두고두고 회자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무언가를 강요하는 어조를 띄우지 않았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각자의 몫으로 두었다. 이야기 초반에 노인이 펄롱에게 했던 말 처럼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를 떠올려보면 이 모든 선택과 결정은 각자의 자유에 두겠으나 한 사람의 선택과 한 사람의 시선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름을 바꿀지는 알 수 없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펄롱이 잘했고, 아일린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티를 내지 않을뿐이지 나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일린처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하고, 나를 둘러싼 내 바운더리만큼 중요한게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마음이 무조건 나쁜것이 아니지만 우린 펄롱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를 알아가자는거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다 같은 마음을 쥐고 책을 마주 할 것이다. 일단 마음은 굳게 가져본다. 행동으로 옮기는 영향력이나 실행력에 차이는 있겠으나 일단 우리는 펄롱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은 이미 가져 본 셈이다. 나도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고, 주저하긴 하겠다만 손을 내밀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우리 여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사소한 것이라 여기고 부담없이 마음을 두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