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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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는 페이지와 등장인물들의 방대한 사색들. 완독하기 위해서라도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말 많은 인물들이라니. 말이 많다기보다 상대를 두고 상념이 지나치게 큰 인물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등장인물이라해봐야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인데 페이지는 벽돌 수준이다. 술에 대해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며, 음악에 대해서는 발톱만큼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준연과 해원, 그리고 하진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저절로 위스키가 궁금해지는 내용이다.

누가봐도 어른이며 어느정도 삶에 익숙해져있을 40대의 남녀들. 친구이지만 친구는 될 수 없었고, 오래 곁에 두고 싶었지만 결국 어느 하나 이어지지 못한 파산된 조합이다.


말 그대로 광인의 이야기다. 사랑때문에 미쳤다기보단 자신의 욕망에 지배당해 미칠 수 밖에 없었고, 후반부에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부친과 모친의 배경을 설명하며 죄를 감싸기 급급하다. 한 여자를 갖고 싶었던게 맞는지, 한 여자를 통해 자신의 더 큰 욕망을 갖고싶었던게 아닌지, 그리고 진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눈이 뒤집힌 이 인간은 어디까지 미친짓을 할 수 있을지를 따라가며 악이 악을 덮을 끝을 따라가본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면 좋겠고, 내가 선택한 사람 또한 나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이며 또 이야기 후반부에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계기로 보였다. 시작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후반엔 싫은 사람. 그리고 미운 사람. 강사와 제자, 취미가 같은 위스키 애호가로 시작했지만 그 관계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좋아하지만 눈치게임을 하며 고백 장전 후 틀어진 관계를 보면 결국엔 좋은 사람이었냐 싫은 사람이었냐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거라 느꼈다. 책을 읽게된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른으로서 사회생활을 좀 해본 40대로서 느끼는 나에게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구별법이라 생각했지만 완독 후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다시 살펴보니 결국 이러한 사람의 분류 방식은 내 입맛에 맞게 해주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대한 설명을 멋있는척, 현자인척 하는 허세 넘치는 소리라는 것이다.


해원은 당장에 필요한 돈이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큰 어려움 없는 여유 자금이었고, 준연은 그 금액이 어머니를 낫게 해드릴수 있겠다는 기대감고 맞바꿀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해원이 건넨 돈은 가진자의 여유이며 상대에게 자신이 그만큼 당신을 믿고 있음을 증명하는 믿음의 크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은연중에 비춰지는 해원의 행실을 보면 당신의 삶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관용의 범위로 보여졌다. 이 돈이라면 당장의 병원비를 마련 할 수 있고, 준연의 근심도 덜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해원은 준연에게 가서 렛슨과 함께 붕 떠있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담소의 판이 마련 될 수 있을테니 결국 해원 좋으려고 하는 시간의 비용이었다.



📖그게 조건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쉽지 않다는 걸, 사랑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웃고, 나를 안아 줬다는 걸, 더 좋은 걸 타고났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그걸 해내는 사람 두루 다 겪어 본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 환함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깨끗함이 찬란하고 소중한 능력이라는 걸. 한줌처럼 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사랑하는 강력하고 드넓은 능력, 그건 나이를 먹고 실망과 낙담, 체념 들이 퇴적하면서, 흔히 말하듯 세상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기 마련인 것이었다.

준연을 알지 못했다면 하진또한 해원의 삶에는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빛을 갖고있다 생각할 만큼 해원은 하진의 반짝거림에 매료된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배경과는 다른 성장 과정.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란 뿌리가 단단해보이는 사람. 해원과 다른 삶의 결을 갖고 있어 더욱 탐나는 사람. 동경의 존재를 너머 빼앗고 싶은 사람의 성향. 가질 수 있는 걸 다 가진 해원이니 이 또한 욕망의 촉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의 그 자기 편향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달라지는 건 생각일 뿐이었다. 경험이 쌓이고 분별이 늘면 자기 편향을 따라야 할 때와 생각을 따라야 할 때에 대한 분별도 생기니까. 하지만 그 경험과 분별 역시 대부분은 자기 편향의 범위 안에서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음이 자기 편향이라는 걸 알지 못할수록 더욱.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쌓을 수 있는 경험만 쌓으면서 분별 역시 그만큼의 경험과 의견들 속에서만 자라난다. 온실 속의 화초들이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듯이. 그래서 인간이란 저마다 고만고만한 크기로 편협하고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자기 마음을 따라서, 그 마음의 크기 안에서 안주하기 마련이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내가 사람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같아서였다.

해원 또한 자기편향이 아주 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간의 성향 전제조건 설명서 처럼 여겨졌다. 자기 편향의 범위, 자기가 보고 자란 환경, 자기가 겪어왔던 삶의 방식, 싫어도 습득 할 수 밖에 없던 세월의 경험치. 결국 만나고 봐왔던 사람에게서 얻은 고만고만한 마음의 전달. 싫어도 외면하고 싶어도 해원이 아버지를 닮은 것 처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부자간의 고만고만한 삶의 방식의 연장선을 알려주는 인간편향에 대한 설명서였다.


📖회사에서는 꼭 결과를 내야 하지만 집이란 건 어떻게 보면 그게 이미 결과 아닌가 싶어요. 별별 일이 다 있어 왔고 앞으로 더 그럴 테지만 우리가 부부고 부모자식 간이라는, 그게 달라지진 않을 거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엔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든 계속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음, 그래도 그때처럼 괴롭진 않은 거 같아요.

사랑도 가정도 인간 자체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같이 으쌰으쌰 해야만 더 잘 살수 있다는 걸 알려준 반데사르. 편하고 여유롭기위해 얼마나 치열했을지 가늠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서로 지치지 않고 자분자분 걸어온게 분명해보이는 인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기편향속에 갖혀있던 해원에게 잠시나마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도 잠깐 비춰지는 반데사르의 의견들을 보면서 이기적이라 할 지라도 해원에게 좀 더 센 자극을 줬더라면 이 이야기의 끝이 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이렇게 반데사르가 말한들 달라질 해원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게 만드는 반듯함이었다.



📖인간이란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입으로 먹고 남의 귀로 듣는다. 아닌 척하지만 결국 그래. 서로 남 눈치나 보며, 그 눈에 얽매여 착한 척 예쁜 척 잘난 척 아는 척하면서 남들이 뭐가 좋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비싸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최신이고 뭐가 유행이라고 하는지 개처럼 축축한 코나 벌름, 벌름, 벌름, 오죽하면, 개 팔자를 부러워하는 유일한 동물이, 개도 닭도 금붕어도 아니고 인간이겠느냐?

아버지는 이렇게 돈벌이 수단을 기가막히게 아는 장사치의 시선으로 인간을 이야기했다. 제 모습을 빗대어 말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러니 그러한 면면을 다 아는 아비가 하는 이야기는 다 맞다는 듯 자신감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앞서 보았던 자기편향의 모습과 함께 그 자기편향의 대물림을 받은 해원 또한 아닌척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거푸집마냥 닮아있었다. 이걸 보고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해야하나? 자신이랑 똑 닮은 사람으로 키웠으니 그 점에서는 성공한 사람이겠군.


📖사랑이 진실을 만드는 진실이고 의미를 만드는 의미라는 건, 사랑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사랑으로 뭐든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야말로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다.

사랑때문이라는 핑계를 가지고 해원은 할 수 있는 짓거리를 다 했다. 광인 답게 미친 짓을 자행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 한 후에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더 한 짓도 하며 사랑인척 살았다.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걸 제 뜻대로 했고, 제 손으로 다 말아먹었다. 왜 모든 후회와 자책는 싸그리 다 말아먹고 회귀 할 수 없을 때 하게 되는 것일까. 학습된 시련이 아니기에 다 겪어봐야 체감할 수 있는 것일까?

벽돌 책이지만 벽돌의 두께를 체감할 수 없도록 전자책으로 읽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두께가 주는 압박으로 휴대하며 읽긴 어려웠으리라 보여진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기보단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이었다. 그럴수 있지. 입밖으로 내 뱉기보단 생각하며 곱씹다가 실수 없이 말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겠지 싶었으나 중후반부로 가다보니 이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토록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여놓았구나 싶었다. 어떤것도 정당방위가 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특히 해원은 더 그랬다. 부모를 닮고 싶지 않아 했으나 부모의 그런 면면들만 빼다 박은 더한 인물이 되어버렸더라. 안 그러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두고 싶었고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변명은 이사람이 더 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예감하게 만들었다. 꼭 자기 것으로 만들어놔야 속이 시원한 사람. 손에 쥔게 많지만 더 많이 쥐고 픈 욕망이 넘치는 사람. 어떻게든 가져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 결론보다는 그걸 얻기 위한 과정의 쾌락에 미쳐있는 사람. 그게 해원이었다. 준연을 감싸고 해원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양면성들 중 가장 더러운 꼴 까지 보인 해원을 통해 우리 또한 숨겨둔 악인이 그 짓까지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을 넘어선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해줬다.

사람이..... 미쳐 날뛰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악인이었다.

불을 지르고 난 후 결혼과 공장을 세우고 마지막 위스키를 입안에 털어 넣을 때 가지 그간의 속도에 비해 지루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 자식이 얼마나 끝까지 갈런가 싶어하며 완독하게 만든 책. 역시나 저자의 이번 책도 나는 완독 해 버렸다. 다음 작품이 또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도 이렇게 각 잡고 열심히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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