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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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단숨에 읽어진다. 그리고 소녀의 시선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찌른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무심한 부모와 자란 소녀. 서로 사랑 할 줄만 아는 부모와 사랑 받은 적이 없는 아이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남에 따라 부모가 된 이들은 소녀를 먼 친척집에 맡긴다. 이미 언니 둘과 남동생, 곧 태어날 아이까지 있으니 소녀는 돌봄이 필요했고, 그 가정은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살아가는 상황이다. 사랑 받아 본 적 없는 소녀는 처음 만난 어른들에게 배려와 관심을 받았고, 이러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 속에서 여름이 끝나면 돌아가야하지만 여름이 끝나질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비친다. 돌아가야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싶은 곳. 아빠가 있지만 아빠라고 불러도 따뜻한 대답이 없던 곳. 돌아가는게 맞지만 돌아가면 소녀는 행복 해 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 "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그간 아이가 있던 공간에서는 서로를 속이며 만든 비밀의 순간이 많았나보다. 아빠랑 있을 때엔 엄마에게 비밀로 해야만하는 것들, 엄마와 있을 땐 아빠에게 절대 말해선 안되는 일들. 언니들이랑 있으면 엄마아빠에게 들켜선 안되는 무언가들. 서로가 그렇게 엮여있는 곳이었지만 여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 확실히 다른 관계다. 바르게 대답하는 법을 알려주고, 타이르는 대신 차분히 알려주는 아주머니의 음성까지. 난생처음 어른이 해주는 낯선 훈계와 다정함에 울음이 울컥했으나 심호흡을하며 대답을 하는 소녀. 무얼 하나 하더라도 눈치를 봐야했던 날들과는 다른 일상이 시작된다.



📖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소녀의 엄마아빠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고, 관심이 없어서 말이 없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았을테니 소녀가 생각하는 반대가 진짜 부모의 익숙한 기운이었겠다. 어딘가 냉랭하고 건조한 공기. 하지만 이 사람들이 갖고있는 공기의 기운은 다르다. 가볍지만 포근한 기운. 이 기운을 만질 수 있다면 건조한 것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듯한 질감이겠지? 서로를 다 알고 살펴보며 각자의 평온함을 위해 숨죽여주는 그런 행복의 무관심. 각자 맡은바를 행동하며 서로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움직임에서 어린 소녀도 그간 보아온 어른들의 모습과는 다르단걸 알아간다.

소녀의 엄마아빠가 못되서가 아니라 아직 엄마아빠가 될 준비가 덜 되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 아직 엄마아빠 공부를 다 마치지 못 한 채 시작된 급한 부모의 시간이라면 바뀔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좋은 쪽으로 이해를 하려 하지만 결국은 타고난 본성처럼 시간이 흘러도 다섯째가 태어나도 그 아이가 아빠 키만큼 자라도 그대로일 거라는 결론을 미리 내어본다.


📖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켜켜이 쌓여있었나보다. 연거푸 마신 우물의 물은 그간 막혀있던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한 가정환경을 모조리 쓸려내려가게하는 요소이다. 소녀는 부모와 함께 손을 잡는다거나 같이 오솔길을 걷는다거나 우물물에 빠질까봐 뒷춤을 잡아주는 손길을 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소녀는 의식을 치르듯 깨끗하고 시원한 우물물을 가득 마시면 마음속에 막혀있던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모두 쓸려내려가고 그 자리에 킨셀라부부만 남아주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내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다던가 발걸음의 보폭을 따라가 준다던가, 지긋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준다던가. 그러한 기다림을 겪어보지 못한 소녀이다. 그러니 낯설을 수 밖에. 소녀가 아는 남자어른은 그러지 않았으니 아저씨의 행동이 좋지만 어렵다. 그래도 이러한 어른이라면 계속 붙어있으며 그의 행동을 닮고싶은 마음을 갖게한다. 그게 어른이 해주는 자연스러운 어른다움과 보살핌의 본보기라 다음 계절엔 소녀가 아저씨의 보폭을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렵다. 그걸 부모나 가족에게서 얻어야하는 감정인데, 소녀는 한 계절만 있다 헤어질 어른들에게서 많은 감정을 얻어낸다.



그 시절엔 다들 한번씩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집에도 돌이 갓 지난 갓난쟁이 둘을 키운 적이 있다. 먼 친척도 아니었다. 어린 사촌 동생이 우리집에서 살았다. 젖먹이이며 하루에도 여러번 기저귀를 갈아야하는 연년생 사내놈이 우리 엄마를 고단하게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가버렸다. 하도 사정이 딱해서 그랬다 하지만 자기 자식을 키워낸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들이 너무 미웠다. 우리엄마 힘들게 했던 기억은 너무 또랫해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는 말이 이럴때 쓰이구나 싶어 많이 미워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 부모가 미웠다.


아이에게 부모와 가족은 제일 처음 겪게되는 사회 공동체이며 나를 보듬어줄 사람이다.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그 사랑을 보담하듯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해주는 집단이지만 소녀의 가족은 그러하지 못하다. 부모 둘만 사랑할 줄 알지 그 결과 갖게된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은 없다. 생겼으니 낳은 자식들이고 그렇게 다섯째를 출산하기위해 아이를 친척에게 보낸다. 모두가 함께 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들을 자주 보게된다. 떨어져있어도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다시 만날거라는 약속을 하는 끈끈한 관계를 이들에게 바랄 순 없다. 이미 시작부터가 그러하지 못한 조합이다.

이 소녀에게 새로운 보호자가 생겨난다. 텃밭에서 파를 뽑아오는 심부름, 토스트 한쪽 면이 갈색이 되면 뒤집어야 한다는 시범을 본 후 따라하기, 한달음 달려가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가지고 온 후 받는 따뜻한 칭찬. 킨셀라부부는 그러한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에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고 천천히 글을 읽을 동안을 기다려줄줄 아는 어른. 낯선 곳으로 온 첫날 침대 시트에 실례를 했더라도 부부는 괜히 습기 가득한 곳에 매트리스를 놓아두었다며 아이를 나무라기보단 자신이 살피지 못했다는 듯 아이의 실수를 말끔하게 씻겨내려준다. 아이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날 밤 요강을 이용해서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낯선 곳에서의 잠이라 설쳤고, 실례를 범했지만 이전과 다른 어른들의 행동에 많은 혼란이 일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부모처럼 무신경하며 상냥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곳의 어른들은 너무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경계심으로 예민했던 하루가 가고 점점 킨셀라부부에게 스며든다. 우편물을 통해 다섯째의 출산소식을 접했고, 소녀는 다시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게된다. 가고싶지 않지만 가야한다. 원래 소녀가 있던 자리이니까. 다시 익숙한 곳으로 간다. 가기 싫어도 가야하는 곳. 소녀가 있던 곳. 집으로 돌아는 가지만 킨셀라부부와 영영 이별인가 싶어 소녀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저씨가 우편물을 가져오라 했을 때처럼 전력질주하여 부부가 탄 차로 달려갔고,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소녀를 안아준다. 마지막 소녀의 말은 소녀를 바라보고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쿡쿡 찔러댄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라는 이 마지막문장. 아이는 자신의 진짜 아빠가 곧 자신을 떼어놓으려 오고있음을 킨셀라 아저씨에게 경고하듯 말하고있다. 아빠가 보고싶고 아빠가 나를 위해 달려오는게 아니라 나를 앉고 있어 아저씨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아빠가 보여요. 그러니까 어서빨리 여기를 벗어나요. 나를 차에 태워서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달라는 듯 경고같은 울부짓음과 불안함이다.

그간 이야기를 보면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킨셀라부부에게 가고싶다고 강하게 어필하면 보내줄까? 아니면 제 가족이라서라기보단 농장의 일꾼이나 막내의 케어를 위한 집안 보모의 역할로 앉혀두려고 못가게 막을까?

최소한의 행복조차 없던 소녀의 삶에서 시작되 관심과 사랑인데 이게 끝나는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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