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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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린 이런 상상을 하곤 하지. 사람이 가득하고 화려했던 놀이공원의 마감 이후 세상. 우리가 모르는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거라는 추측. 회전목마의 말들은 제자리만 맴돌지 않고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니기도하고, 소품가게 인형들이 쪼르르 내려와 아장아장 걸으며 퍼레이드장을 이리저리 활보하는 그런 만화같은 세상.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영화로 구현시켰다. 그러니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내가 아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마셀러스의 말들을 들어보면 이 친구가 무얼 얼마나 더 많이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넓은 바다에서 무얼 보았던 건지 묻고싶어진다.

작은 마을, 오래된 아쿠아리움. 모두가 퇴장한 늦은 시간 있는듯 없는듯 작고 여린 그림자를 가진 나이 많은 직원 토바는 이곳의 야간 청소부다. 그녀의 이야기와 여기 유리 수조 안에 살고있는 거대태평양 문어 마셀러스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준다. 마치 하소연 같기도하고, 또 때로는 듣는이도 없고, 들려줄 사람이 없어 허공을 향해 말하는 듯한 쓸쓸함도 베여있다.




📖 감금 1,319일째_ 바다가 깊숙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런 것들이다. 내가 다시는 탐험할 수 없는 것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스니커즈 밑창과 끈, 단추, 복제 열쇠를 모두 챙길 것이다. 전부 다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한다. 이 열쇠를 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문어. 그렇다보니 자신의 수조 앞에 놓여있는 설명을 보고 알았다. 일반적인 거대태평양문어의 수명이 4년이고, 자신이 여기로 온 날과 여기서 살아온날. 그러니까 이제는 죽을날을 디데이로 세어가며 지내고있다. 아쿠아리움에 온 날로부터 감금일이라며 세어가고있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이렇게 글자도 읽을 줄 아는 영리함이 마셀러스에겐 슬픈 재능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이 아쿠아리움으로 들어오기 전 바다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인지도 궁금해지고, 말만 하지 못할 뿐이지 더 많은 걸 알고있는거 같아 이것저것 묻고싶어지는 순간이다. 토바의 상실감도, 열쇠가 어떤 의미인지도 이미 알고있는 마셀러스이니 토바가 알고싶어하는 바다너머의 에릭의 이야기들도 어떻게든 전달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생긴다.



📖 망가졌지만 충성스러운_ 자신이 죽은 후에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런 뒤처리를 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상속인이 없는 경우엔 무자비하게 밀려드는 서류 작업도 없는 걸까?

토바는 오빠가 생전에 머물던 요양원을 정리하면서 받은 카달로그를 살펴보고 그곳에서 남은 생을 머물기로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나니 이르게 떠난 에릭도, 더 함께하지 못했던 윌도 다 보낸 후 남은자의 외로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곁에 있던 이들의 부재. 슬픔에 고여있기만 할 수 없던 서류작업들을 온전히 다 맡았던 토바. 한동안 왕래가 뜸하던 친오빠의 부재마저 수습을 하고나니 토바는 정작 자신이 세상과 안녕을 고했을 때엔 누가 이러한 정리를 해줄지를 생각해보며 공허함이 더 커진다. 그렇게 남겨진 자는 먼저 간 이들의 슬픔과 걱정까지 곱절로 안고 살아야함을 알려주는데 이건 나이가 적고 많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그러니 니트위츠 멤버들이 있다 한들, 혈혈단신인 토바는 차터빌리지가 마지막으로 머물 공간이라 결론지은 느낌이다. 이러한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오롯이 혼자임을 또 한번 일깨워주는 공허함.



📖 특별한 유대감_ 나는 너나 메리 앤, 바브와 달라. 나는 넘어지면 돌봐주러 올 자식이 없어.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러 집에 들르거나 약을 잘 챙겨 먹는지 물어봐줄 손주들도 없고. 그리고 친구들, 이웃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말은 했지만 쓸씀함도 묻어있는 토바의 말. 사랑하는 두 남자를 먼저 보낸 후 공허해진 그녀의 삶 자체를 대변하는 말. 어디까지나 친구와 이웃은 가족이 아니기에 사사로운 부탁을 매번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해준다. 다정한 이웃이기전에 이젠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이웃으로 변해갈 자신이 두려워서 차터빌리지를 택했을 것이다. 토바의 성정다운 결정이지 모. 훗날의 나도 토바같은 상황이 올텐데 나라도 비슷한 결정을 할 듯 하다.(그러니 남편양반 둘 중 먼저 가야된다는 선택지가 있으면 내가 먼저 갈게. 나는 남겨진 슬픔 감당 못해. 뜬금없이 먼저 간다 만다 결정하는 중)



📖 달라호스_ 이겨낼 수 없어. 완전히는.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지. 그래야만 해.

외로움을 아주 없앨 순 없다. 이미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의 간극은 붙일 수 없다. 다만 그 틈에 허우적거리기보단 많이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며 그 감정마저 사랑하며 살아온 토바이기에 캐머런도 그래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유가 어찌 된 들 캐머런은 아버지를 사진으로 만나며 보고싶다거나 왜 자신을 외롭게 했냐는 질문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캐머런보다 더 많은 감정의 억겹에 살아온 토바를 바라보며 그래도 살아야하는 이유는 확실하다는 걸 배워간다.


결국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만날 운명이라는 것. 평생을 보지 못하고 살아 왔다 하더라도 무언가 끌리는 듯한 감정은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 십수년간 잊으려고 애써도 애쓴만큼 잊고 살기 어려웠던 에릭에 대한 추억. 남겨진 이는 이렇게 함께 있던 그 순간을 꺼내고 곱씹어보고 모조리 복기하며 산다. 그렇게 남겨진 자만 애닳도록 그리워 꺼내어보면 추억마저 닳아질까 슬퍼했던 토바였다. 혼자만 기억하려했던 이전과 달리 같이 그리워 해줄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과 나의 기억을 공유할 존재가 생겼다는 것에 토바는 살아갈 이유를 다시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차터빌리지에 갈 이유도 없고, 평생을 살아오던 곳을 떠나 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듯 암울해 할 필요도 없어졌다.

에릭의 간절함이 닿아 마셀러스가 그걸 전해주었고, 자신이 어머니의 곁에 있지 못했던 순간을 보상하듯 캐머런을 선물해 준 것으로 느꼈다. 그리고 부모의 부재로 많이 쓸쓸했을 성장기를 보낸 캐머런에게도 토바라는 존재가 버텨줌으로써 아무도 지켜봐주지 않는 외로운 삶이라는 생각도 버린듯 했다. 다시 토바를 찾아오며 아쿠아리움을 그렇게 대책없이 관두려 했던 그 마음마저도 접어버린 것은 토바와 함께 청소하며 듣고 익혔던 사람됨됨이와 함께사는 삶에 대한 진실함을 얻었기에 나타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토바는 무엇이든 귀했고 고마운 대상들이었으며 홀대해선 안되는 존재로 여겨주었다. 야망을 위한 인위적인 베품이거나 목적이 있기에 해야만하는 행위가 아닌 살면서 숨쉬는 것 마냥 익숙한 선함과 악의없는 대응 덕에 캐머런을 만날 수도 있었다. 이 또한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라 말하고싶다.

거대태평양문어를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선함이 있었기에 에릭의 흔적을, 에릭을 닮은 캐머런을, 그리고 이 모든 우연을 가장한 인연의 중심의 토바를 만났다. 삶의 끝자락일 줄 알았을 토바의 외로움에서 다시 시작된 행운과 행복이 겹쳐오는 순간. 가족이라는 존재가 주는 희망과 행복에 토바는 다시금 살아야하는 이유를 연결시켜본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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