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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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의 스물한 번째 수상작이며 작가의 데뷔작. 그리고 낯설지 않은 단어의 책 제목과 함께 내가 몸 담고 있고, 밥벌어 먹고있는 분야의 이야기라 2023년의 첫 책은 만사 다 제쳐두고 이게 먼저겠구나 싶었다. 출간 당시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으로 회사란 무엇이며 조직의 실체와 모순에 대해 그려두었다고 했다.


1부의 이야기들. 선주에게 인도되기 전 배가 누웠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에 대한 질문보다 배가 누운 그 자체에 집중한다. 사측의 잘못은 없다. 재난재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건의 결말을 이미 적어 둔 후 풀어가려한다. 결과는 나와있으니 모든 과정은 결과에 맞춰 짜여진다. 자연이 만들어둔 결과이니 이는 사측은 보험사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는 과정을 그린다. 문대리가 보게될 이 조선업의 꼴이 어떻게 될지도 눈에 그려지지만 잡지사에서 일하다 도망치듯 중국 조선소로 입사한 그 였지만 업이 달라진다 한들 조직이라는 큰 틀은 어딜가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오너는 조선업을 앞세워 자금줄을 끌어당겨 필리핀 휴양시설에 몰아넣고 산업의 불황으로 안그래도 어려운 조선소는 제대로 찬서리를 맞는다. 어느 선주가 배가 누워있는 조선소에 일을 맡기겠냐는거지. 회사의 중대 사안에 대한 책임은 머리 굵은 자들의 사임으로 이어진다. 모든 책임을 떠앉고 사임하는게 답은 아닌데 어느 곳이든 그런 액션을 취하면 한동안은 잠잠해진다.

2부는 1부와 다른 이야기로 탄성을 주어 이야기를 끌어당긴다. 1부가 암울했고 이래도 되나 싶으며 당장이라도 진흙탕에서 빨리 발을 빼는게 상책이라고 보여지는 곳에서 빈자리의 사장석이 황사장으로 바뀌면서 빠르게 내달린다. 시스템이 바뀌고 조직이 개편되고 곪아있던걸 긁어냄으로서 진짜 제대로된 회사가 되나 싶은 방향으로 돌아선다. 그때 오너는 2년 정도 누워만 있던 그 배를 일으켜 세우라고 지시한다. 모든 시스템을 뭉개고 오직 이유없이 누워있는 배를 일으키는 것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된다. 이제 좀 돌아가나 싶은 회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썩어버린 그 배를 일으키고 황사장은 썩은 일부인냥 또 다시 내려놓고 조선소를 떠난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을 정면으로 맞딱들이며 흘러갔고 맞춰갔던 문대리 역시 조선소를 떠나게된다.


📖 14_ 이 모든 참 같은 거짓, 거짓 같은 참이 모조리 참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고 곧 진짜 보상금이 회사 계좌에 찍힐 터였다.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우리 부서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백방 입으로 씨름해봐야 득이 될 건 없다. 우리는 서류싸움이다. 기록이 남아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난다. 근거 자료가 있어야만 대응을 할 수 있다. 모든건 기록해두어야한다. 믿어줄 사람은 없다. 말보다 종이 한장의 힘이 얼마나 센지 느낄 것이다.

기록이라는 것이 모든게 진실 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자료가된다. 내 의견에 뒷받침 할 만한 요소가 되는 그것이 문서였다. 사건이 일어 날 때엔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예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글어버린 틈을 메꾸는 것이 문서이고 흔적이었다.

📖 16_ 이길 사람은 바위와 돌멩이처럼 이미 정해져 있었다. 늘 말들 하듯, 직급이 깡패였다.

꼬우면 니가 사장 하던가를 책 속에서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한 만큼 속이 다 허해진다. 현실이나 책속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서글퍼진다. 그렇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겪과 별반 다를게 없는 굴레다.

📖 20_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관리자와 책임자이지만 부서 대표로 들어가는 회의에서는 서로가 적이다. 싸움닭이 될 뿐이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 명시를 해야만 잘못을 덜 수 있기에 확정짓는 듯한 뉘앙스의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확인해보겠다는 말이 태반이다. 알지만 모르는 사안이다. 알고있지만 이 판에서는 뱉지 않는 팩트들은 다 뒷전에 숨겨두고있다. 그래야만 제 모가지를 건사할 수 있고 언제 반격해 올지 모르는 이들을 역습할 이른바 원기옥을 키우는 거지.

부서장이나 임원진 회의는 늘 그랬다.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금지시키면 눈알 굴리는 소리밖에 안 날테지.

📖 36_ 결국 쉬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쉬고 다시 이 그칠 줄 모르는 바담 풍이 불어닥치는 난리동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쉬어가든 쉬지 않든, 결국 인생을 담배 연기처럼 바람 속에 태워 날려버리는 것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황 사장 같은 사람조차, 또 이전 팀장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이미 3년이나 일했고 결혼, 출산, 승진, 어쩌면 이직까지 수많은 일이 밀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

...

배운다는 걸 똑같이 따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따라 하는 건 배우는 방법이다. 따라 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더 잘하려고, 가르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배우는 거다. 여러분 모두 아직 젊고 많은 일을 배워나갈 때니 이 말을 기억해줬으면 싶습니다. 우리가, 또 어떤 사람도 여러분보다 더 나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먼저 태어났고 먼저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것이 선생, 먼저 난 사람이라는 말뜻입니다. 배우고 익히되 우리처럼 되지는 마십시오. 부디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근 직전의 최부장의 고별인사였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또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깨닫고 배웠다는 말. 아직 나는 이러한 말을 하는 사수나 부서장을 만나진 못한 듯 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에서는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이는 없었다. 사라질때엔 다들 바람처럼 자신의 모든 흔적을 쓸어담아 치부까지 싸악 들어내서 갖고 가버리더라. 더러는 도망가듯 사라지기도 했다. 같이 일해서 고맙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은 이유가 아니라 먼저 태어났기에 했던 순리의 과정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 일하면서도 배울 것들이 손에 쥐어질텐데 역시 소설속에나 있는 인물일까.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연관성이 없는 업종을 건너뛰기 하듯 이직해왔다. 문대리보다 더 의외의 이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웨딩업, 철강업, 지금의 조선업까지. 역시 사람의 인생이 대학 전공에 따라 가진 않지. 그렇게만 이어진다면 너무 순탄했겠지.

문대리가 먼저 말한 쉬어가는 것밖에 안되는 타이밍이라 했던 말과 고민의 답을 최부장이 툭 내어두고 갔다. 이 길이 옳지도 끝이지도 않았다. 이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경우의 수 일부를 제시해준 듯 했다. 각자의 이정표가 있으니 에둘러가든 뛰어가든 그건 각자의 방식이고 이곳이 꼭 답은 아니란뜻 처럼 보였다. 요즘 광고로 많이 보이는 잡코리아의 카피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선배와 옥상에서 나누는 이야기였지 아마. 꿈은 꾸는 자의 것이 아니야. 버티는 자의 몫이지. 버텨, 버틸 수 있다. 버 튀어.....(튀어) 그리고 그 선배는 튀었다. 퇴사하며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지 아마. 약간 다른 길로 새어버린 이야기이지만 문대리에게 숨구멍을 툭 밀어준 최부장의 마지막 멘트가 좋았다.

📖 37_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년,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렇다. 회사다 갖다 쓰는 내 젊음은 다음달 한장의 급여 명세서와 바꾸게된다. 20대에 들어와 나는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젊음을 주고 꼬박꼬박 그만큼의 급여를 받아갔다. 퀭한 눈과 굽어진 어깨, 고장난 손목이 그간의 세월의 찌꺼기로 남아있는 듯 하다. 10년치의 젊음과 쾌활함은 결혼하고 집을사고 차를 사게 해주었다. 또 10년치의 내 노고를 이 회사는 기꺼이 받아줄 것인가는 모를 일이다. 지난 10년만큼의 값어치가 유지될지는 내 손이 아니라 오너의 연봉계약서 마지막 싸인에 달려있겠지. 연봉 협상이 아니라 연봉 통보가 될 터였다. 정치싸움에 기꺼이 참전할 용사는 되지 못할 문지기 수준의 병사인데 이젠 내 능력을 믿어야할지 어느 줄에 모가지를 받쳐야할지는 아직도 고민중이다. 회사란 그런 곳이니까.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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