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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2023년 올해 처음 완독했던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를 다 읽고 곧장 이어서 읽기 시작한 것 역시 이혁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있는 '관리자들'을 선택하여 이어 읽었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은 적은 없는듯 한데 확실히 세밀한 묘사로 인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고 있는 느낌이 강해서 이해하기도 쉽고 그만큼 집중도 잘 되었다. 과연 이 책도 그러할지 기대를 해본다.
📖 2_ 관계가 대등하지 않으면 거래도 공정할 수 없다. 우위에 선 쪽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장도 알고 본인 역시 인부들에게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있었고, 소장이 그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뭐가 계속 찜찜하면서도 어쨌든 이야기는 됐자고, 한 다리 걸쳐 놓은 셈이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 강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도움을 주는 것뿐 아니라 받는 것도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라고.
소장은 이걸 사람 부리는 방식이라며 한대리에게 대단한 스킬을 전수하듯 말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맞아 돌아가고 고여있던 웅덩이에 같이 휩쓸려 흐려지고 처음의 맑고 청량했던 빛이 혼탁해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 똥물이라면 결과는 더한 오물로 변하는걸 멧돼지 사건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첵의 초반이지만 바로 알겠더라. 아.... 이 집단의 우두머리들에겐 배울게 없겠구나. 날때부터 영감을 받고 스스로 터득한 잔재주는 아닐테고 소장도 막내시절 자신을 가르치던 선임을 통해 짓밟히듯 깨지고 배워먹은 버릇일텐데 왜 이런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만 받아먹고 더욱더 고약해지나 모르겠다.
📖 3_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소장이 이렇게 말하고 흡족해 할 모습. 자신이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느껴졌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었을 장면을 생각하니 뭔 사단을 내더라도 낼 인물이구나 싶어졌다. 책임은 지는게 아니라 지우는 거라는 말. 어차피 방패막이는 따로있다는 소리.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두었다는 꿍꿍이. 왠지 이 말을 듣고나니 산업재해로 인해 관리자들과 대표들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기사와 뉴스 꼭지를 볼 때 이들도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책임 지어지도록 마련된 허수아비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 처음 씌워진 잘못된 생각으로 모든 것들이 옳게 보이지 않았다.
📖 6_ 어쩌면 저렇게들 뻔하고 뭘 모를까. 역시나 관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라 세우고 갈라 세우고 오로지 어떻게든 갈라 세우는 일이었다. 줄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저희끼리 알아서 치고받도록, 그러느라 뭐가 중요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도 못 하도록. 인간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지기 싫어한다. 그 속성마저 남들만 그렇고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래서 싸우고, 그래서 싸우기때문에 싸울수록 더 편향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 불신을 극복하지도, 서로 이기거나 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진흙탕 밑바닥까지 서로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
몰라서 모른채 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만 직급이 깡패고 갑을관계가 밥줄과 이어지다보니 소장이 장단 지어주는 대로 인부들은 춤출 수 밖에 없었다. 명절에 호주머니 두둑히 채워 나가려면 일을 해야헸고, 소장의 다그치는 완공일까지 어떻게든 해 내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손에 돈이 쥐어지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이른바 까라면 깔 수 밖에 없는 실정인데 소장은 그게 바보같아보이고 미련해보이며 자신이 이 무리를 쥐고 흔드는 우두머리라는 확신이 들어 어떻게하면 제 맘대로 더 갖고 놀지 궁리만 하게 되는 행색이다.
📖 8_ 결국 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아 있고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의 숙명인 것 같았다. 잔인하고 비겁하게 거짓말하거나 침묵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죽은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그것이 산 사람의 몫, 생존의 대가 같았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독자에게 묻는 문장은 없지만 자연스레 그 문장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니가 현경이었다면? 한대리였다면 어쩔껀데? 라는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는다. 결국 나도 산 사람일테고, 선일은 그대로 죽은 자로 남아있는데 책임을 물으며 진실을 알린다 한들 이 목소리가 과연 어딘가에 닿기나 할지. 최악의 경우인 소장에게만 닿아 이 판을 떠나는걸로만 시시하게 마침표를 찍을지로 수없이 가정을 해본다.
똑같아지는게 당연한 비율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나는 좀 다른 사람으로 살아도 되지 않나 싶은 정의감과 함께 덜 더러운 인간으로 살아보고픈 시도를 하는게 맞을까? 당장 닥쳐온 현실이 빤한데 그게 가능할까? 물을 사람도 없는데 계속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앞서 읽었던 '누운 배' 처럼 회사라는 집단을 통해 시작된다. 이 집단 역시 계급이 나뉜 이해관계들이며 주인공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와 함께 소설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빤한 현실의 이야기를 들여다 놓은 듯 해서 씁쓸하고 미안함이 드는 사건 수사 종결을 보인다. 현실로 옮겨온다면 아마도 평일 저녁 어느 지역 뉴스의 3분이 채 되지 않는 작업현장 사건사고 보도로 짤막하게 전달 될 것이고 기승전결의 마지막 결말의 리포터 보도는 관리자의 허술함과 현장직에 대한 아쉬운 부분을 내비치며 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보인다는 말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사건사고들은 빈번히 일어나고 이렇게 보도하고 알린다 한들 이후에도 약간의 전후상황만 다를뿐 별반 다를바 없는 이유로 어떤이는 희생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현장에서 빤한 결말이 보이는데도 흐린눈으로 못 본 척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이미 벌어진 일이니 남은 이는 살아가야하지 않겠냐며 남겨진 이들끼리 수근대겠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러한 방식으로 흘러갈게 훤히 보이는 세상이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는게 없이 굴러가는 집단이다.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굳이 왜 그래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울컥울컥 하지만서도 내가 한대리였다면 소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손 털고 나올 배포가 있었을지, 아닌 것은 아니라며 말할 당참이 있었을지(옳고 그른걸 구분해 어필하는 것도 손아래사람에겐 당차고 용감함을 양 주먹에 쥐어야 한다. 그게 계급이고 직급빨이다.) 생각하보지만 딱히 답이 안 나온다. '누운 배'의 한 문장처럼 직급이 깡패니까.
여기 이 집단엔 빤한 사람들이 태반이라 현경의 후반 행보가 놀랍고 때론 통쾌하기도 했다. 이 바닥이 한다리건너 알음알음 소개받는 일일텐데 그걸 다 걷어차고 소장이 하는 꼴을 깨 부쉬듯 굴착기를 굴리는 현장감은 영상으로 보지 않아도 현경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에 힘이 쥐어지며 턱아래가 지끈거리며 어금니가 아리어진다.
이해관계를 사전적의미로 찾아보면 그에 파생된 갈등이라는 단어도 덤으로 읽게된다.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는 무리라는 뜻도 있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얽혀 살아야하는 상황인데 때때로 이 짓이 질리도록 정이 떨어진다. 이러한 이벤트 덕분인데 옳은데로 정석대로, 이른바 FM대로 사는게 그렇게도 바보같은 짓이고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이고 막대해도 될 부류로 치부된다면 이 세상은 참 재미없고 졸렬하게 다가올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