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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평점 :
직장 소설 전문가(?)다운 특정 직군에 대한 생각들과 사회생활을 하며 얻게되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었다. 어느 집단이든 계급은 존재한다는 기본 개념은 여전하다. 지금은 같은 사무실에 앉아있지만 퇴근 후 이곳을 빠져나가면 각각 다른 삶으로 스며들게된다. 특히 4명의 인물들은 시작점도 달랐고 도착지도 다를 것이다. 다만 지금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이유는 우연찮게 교차되는 순간에 만났기에 가능한 것이라 말해주고싶다.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작가의 말 대로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 섞이지 못할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너무 다르기에 끌렸을지도 모르고, 자신과 너무 다르기에 부담스럽지만 때론 갖고싶다는 욕심이 울컥하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제목 '사랑의 이해'는 사랑하지만 상대의 사정을 헤아려 받아들이는 과정의 순간도 찾아오고, 때로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게 된다는 가정을 하며 이익과 손해를 아우르며 저울질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다 결국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이해의 순간도 찾아오는게 사랑이고 이해였다.
말장난 같지만 다 사랑하기에 가능한 고민이며 결정이고, 결론이었다. 인물들의 직업을 빌어보면 적당히 나이대가 나온다. 상수와 미경은 내 또래일테고, 종현과 수영은 나보다 두어살 아래의 이제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 정도겠다. 사랑만 쫒을 수 없는 나이. 사랑이라는 환상이 흐릿해지고 현실이 더욱 또렷해지기에 청춘로맨스 영화처럼 사랑하나만 바라보며 직진 할 수 없는 나이. 그래서 때론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서도 어찌보면 저런게 현실이지 싶어지는 그들의 애정 종착지. 그래서 또 한번 감탄한다. 직장 내에서 얻어지는 이슈와 에피소드들로 이뤄졌던 '누운 배'와 '관리자들'을 통해 얻어진 단단한 스토리에 로맨스를 딱 두 방울 정도 떨어뜨린 소설.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듯하며 알려지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흔하지않은 인물들로 만들어 내었다. 다만 드라마는 정말 예쁘고 멋진 배우가 연기했다는게 현실과 많이 동떨어지는 것일 뿐. 암튼 어른들의 사랑은 이렇게 잴게 많고 비교할게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 갖기 전까지 아무리 따지고 비교하고 뜯어봐야 유리창 너머 보이는 가방, 옷걸이에 걸린 코트였다. 좋아 보일 뿐인지, 정말 좋은지, 그저 그런지 열두 번 환생해도 모른 채 콧물 같은 미련, 재생 휴지 같은 후회만 남는 것이다. 아무리 풀고 닦아 봤자 코밑만 벗겨지고 쓰라려, 다 집어 던지고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싶어지는... ...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마냥 드러내서는 안되는 위치. 내가 너무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와 비교 했을 때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수영. 반듯해보이고 누구에게나 호감있는 사람을 내가 좋아할 때에 상대가 포기하거나 실망할 것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 덜 가지진 자들은 항상 이렇다. 내 손해를 먼저 떠올리기보단 상대가 얻게되는 손실비용을 먼저 따진다. 수영이 유별나게 여겨질수도 있겠지만 직군전환이 절실한 불안정한 위치도 한 몫 할테고, 돈으로 등급을 메기고 돈으로 상대를 바라보게되는 은행에서 일하다보니 보여지는 시야폭이 거기에 맞춰진 것이라 느꼈다.
눈인사 한번으로 모든걸 스캔 하며 상대의 재력기반과 기품까지 빠삭하게 알아채는 직업병이 수영의 감정을 더 가두는 것 처럼 보였다.
📖 좋아할수록 많은 것이 보이지만 그만큼 못 본 척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기쁨과 슬픔은 함께 늘어난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 걸 무시하고싶지만 너무 잘 드러나니 어찌 할 수 없는 마음. 그런데 이걸 티내선 안되는 상황. 상수와 수영은 서로를 택하는 것 대신 다른 이를 선택했기에 끊어내어야 하는 마음이었다. 차라리 미련 두지 말 걸, 애초에 앞뒤 재지 말고 마음만을 믿고 먼저 사랑해 볼 걸 이라는 후회가 와르르 밀려오는게 보였다.
결국 이것 도 다 욕심이었다.
📖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았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종현이나 상수에게서 구하려고 했을 뿐 자신에게서 구하려고도, 차라리 깨끗이 체념해 버리지도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처지였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종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수, 그리고 그 자신이란 명백히 안수영, 자기 자신이었다. 부서지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자신이 망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망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망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스스로 망쳐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와 자유로, 유혹하고 유혹당할 수 있는 그 힘과 권리로.
욕심이었고 고집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믿지 않은 자의 결말이었다. 무엇하나 손해보기 싫은 이의 결론일 수도 있겠고, 어느하날 선택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거라 결론을 낸 이의 마침표 일 수도 있겠다. 나로 인해 상수, 종현, 미경에게까지 쥐어질 행복하지 않을 삶에 수영 자신이 일조했다는 몫을 남기기 싫어 모두의 손을 놓아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아님, 내가 완벽한 행복을 얻지 못 할 바엔 모두의 행복 또한 있어서는 안된다는 수영의 내재된 이기심이라 봐야할까?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사랑갖곤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겠지.
결국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앞세우지만 사랑만 놓아 둘 수 없는 현실에 주저하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