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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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단편은 없다. 그저 어디든 다 있을 이야기들 뿐이다.

뭐랄까, 평소와 다르지 않게 걷는데 갑자기 발 뒤꿈치가 찌릿해오는 느낌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애썼던 그 순간에 드는 감정은 딱 그정도의 고통이었다. 평범하게 대해왔던 것들이 상대에겐 따끔거리는 마음의 흠이 났었던 것이고 그게 나에게 되돌아온 고통이었다.


뒤늦게 알았던 서운함에 유나가 잘못한 것보다 미련했던 자신에게 생겼던 짜증도 그러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숲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그간 못했던 마음의 서운함을 이렇게 표현하나 싶었던 숲의 끝. 웃으며 그 때 왜 그랬냐며 꼭 답을 듣고팠던 문동, 호시절이라며 즐거워했던 엄마와 다르게 주인공에게는 전혀 호시절이 아니었던 어린시절 아파트 이웃들과의 생활. 누군가는 몹시도 애가 닳도록 마음과 힘을 다했고, 그에 반해 또 누군가는 사사로운 감정이라 여겼다. 상대가 허투루 다뤘던 마음에 상처를 받아봤다면 이 단편들에서 마음이 많이 요동쳤을 거다. 나처럼 공감도 했을 것이고, 왜 모르나 싶을 정도로 의문도 든다. 때로는 직설적인 말보다 눈빛들에 더욱 마음을 다치기도한다. 꼭 주먹을 휘둘러야 폭력이라고 성립되는게 아니다. 언어와 시선과, 감정적 폭력은 때론 더 깊은 생채기를 남기곤 한다.


자, 이제 이 단편들 속에서 어떻게 애써왔고 어떻게 마음앓이 해왔는지 각각의 인물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제3자로서 바라보며 다양한 경우를 만났다. 그대는 어떤 답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혹시나 허투루 다뤘던 타인의 마음은 없었는지 떠올려보자. 아마 생각보다 더 많은 애쓰지않아도 속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도 안 써본 반성문을 오늘 거창하게 쓸 타이밍에 도달했다. 완독했다면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의 속편이자 내 인생의 반성문을 시작하자.



애쓰지 않아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엄마로 인해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학을 오면 시선은 바삐 움직이고 어느 무리와 친해져야할지 아니면 이대로 혼자 생활을 해야할지를 선택하게된다.(초3 전학을 처음 왔던 나도 별반 다를게 없었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때, 그리고 성인이 되었다고 자부하던 대학때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그때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유나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무리에 끼워준다. 유나를 동경했던 마음이 커져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드러내면 더더욱 친해질꺼라 믿었으나 둘만의 비밀로 여겼던 그 이야기가 나만 모르고 있던 이야기로 알게된 순간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 그 자체가 좋았던 것인지, 그저 인기가 많았던 모습이 좋았던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낯선 환경에 들어와 어떻게든 동떨어지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친구부터 만들고 싶었고, 같이 무리지어 다닐 만한 친구를 찾게된다. 그리고 비슷한 관심사의 소근거림에 귀가 예민해진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마음이 참 팔랑거렸던 듯 하다. 초반엔 인기있는 몇몇 인물들 위주로 무리가 형성이 되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그 그룹도 소원해져서 결국 마음 맞고 생각의 결이 비슷한 끼리끼리 또 모이곤 했다. 그렇게 초반부터 전전긍긍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우린 참 바빴다.


그렇게 바쁜 학창시절의 학기초를 겪고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의 어른이 된 후로는 애써봤자 그때 뿐이라는 걸 알고있다. 급히 뭉쳐진 모래알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이 빠져 파스락서리며 쪼개지고 스르륵 흩어지고 마는 것 그게 결국 인간 관계였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길 아이들에 백번 천번 해봤자 소용없음도 알고있다. 다 겪어 봐야 이해 할거다. 주인공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으로 같은 학교를 다녔던 유나에게 느꼈던 감정처럼 이건 시간이 흘러봐야 터득하는 애써왔던 마음이니 말이다.


데비 챙‣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둘. 동갑이었고, 여행하는 방식도 잘 맞았던 터라 함께 여행지를 다니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좀 더 멋있고 괜찮은 어른이 될 둘을 기대한다. 홍콩인 데비는 비행기 정비사가 될 것이며 지금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그녀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미래를 알려주는데 주인공과는 다른 확고한 미래의 계획에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주인공은 본인이 말했던 것 처럼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자, 불안정한 가능성보단 적당한 불행과 적당한 익숙함에 심취한 무사안일주의자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주인공은 데비를 질투할 인물의 범주에 넣지 못했다. 그냥 그는 나와 레벨이 다른 확고한 인생관이 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만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동갑내기의 멋진 미래를 꿈꾸는 친구와 헤어진 후 간간히 연락을 이어가며 정말 원하는대로 뜻하는대로 다 이룬 사람도 있음에 살짝 거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뜻밖의 만남에서 사랑했던 이와 사별하고 마냥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 후 또 한번의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주인공은 먼저 선뜻 연락을 하지 않는다. 왜애? 그토록 멋진 삶을 꿈꿨고, 또 이루었던 그가 대단했는데 너무 딴세상 사람 같아서 연락을 하지 못한걸로 봐야할까? 아님, 그렇게 잘난 사람이지만 결국 행복을 모두 다 누리고 슬픈 이별을 한게 쌤통처럼 여겼나? 아냐, 그렇다고 그런 이별을 한게 주인공의 탓도 아닌데? 뭐지?


데비는 끝까지 근사한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변화도 두려웠고, 동시에 바뀌는 삶의 흐름도 거부하고싶었던 잔잔한 사람이었다. 데비는 원하는 삶의 방향을 이루었고, 최고의 행복을 맛본 동시에 최악의 슬픔도 겪었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그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이라 여기는 단단한 멘탈에 같이 있으면 자신이 더 초라하게 보일듯하니 거기서 인연의 끈을 끊은듯 했다. 세상에,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라며 자신의 슬픔도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데비 그는 정말 나이가 들어도, 아픔을 겪어도 멋진 사람이었다. 옆에 있으면 자연스레 주눅들게되는 근사한 사람이에 쳇!(정말 많이 부러운 점들만 갖고있어서 질투가 나서 그런거다!)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유리와 송문은 같은 인턴쉽을 하며 겹치는 시간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렇게 공유한다고 마음속의 결 자체도 같이 나누긴 어렵다는걸 느낀다. 사람의 성향은 주변인물에 의해 바뀔 수 있는게 아니다. 소위 물든다는 말 처럼 쿵짝이 맞는 사람 옆에 있다보면 상대의 습관이나 행동을 따라하기도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기보단 잘잘못으로 판단하는 이와 있다보면 가끔씩 선을 그어 두며 여길 넘지 말아주길 바라게된다. 아마 송문은 유리에게 그런 마음을 느꼈을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래도 유리와 송문은 제법 괜찮은 방식으로 풀어가는 듯 하여 그 둘을 바라보는 내가 다 뿌듯했다.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에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적어보며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을 기록하며 유리도 자신의 방식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유리와 송문의 방식에 잘한 일이라며 어깨를 툭 쳐주고 싶었다.



손편지‣ 각자의 사정은 굳이 손으로 긁어올려 끄집어 내지 않는다면 알 길이 없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소풍날 보물찾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헤집어 버린다면 마음을 열고싶은 결심이 생기다가도 이내 닫아버리게 된다


손편지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점장에게 그때엔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적어낸 글이다. 주인공을 위해주고 도와주려 애썼던 점장인데 억울하게 퇴사를 할 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주인공도 곧 퇴사를 하게되는 시점에서 점장을 떠올리며 써내려간다. 마음의 문은 억지로 당긴다고 열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대가 있더라도 함께 열고자하는 마음과 열어주고픈 생각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다. 그 때의 점장이 왜 그리도 잘 대해줬던건지 그 태도가 오히려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게되며 지난 순간에 감사함을 표현한다.


그 때의 나로 돌아 갈 수 있다면 마음써준 점장을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는지의 반성문과같은 글을 보면 우리는 항상 한박자 늦어버리는걸 아쉬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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