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인주의자의 결혼생활
이정섭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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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비슷한 부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궁금해서 찾아본 이정섭 작가의 책. ‘두 개인주의자의 결혼생활’이라 함은 결국 우리 부부 또한 개인주의적 성격의 지분이 많아서 이렇게 사는 걸까? 싶은 의문형도 생겼고, 따로 또 함께 라는 일상의 행복 중 모르고 지나친 것은 없었는지 얻어갈게 많은 글이겠단 기대감으로 시작을 했다.




■019_ 주변에선 “각방 쓰면 멀어져”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지”등 남들이 만든 정답과 기준을 끊임없이 들이밀었지만, 우린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 우리가 진짜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행복할 수 있었고, 독립적이기에 진짜 필요한 순간 지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다.

참 많이도 들었던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 순간마다 넘어야 하는 필수 수행 과제가 있는 느낌이다. [초→중→고]에서 끝날 줄 알았던 우리의 반 강제적인 인간 완성 모양틀.(얼음트레이에 비유) 모양틀에 나를 부었을 때 넘치면 버려야하고(버려지고) 남는 공간은 부단히 노력해서 채우고, 그러고 나서 성인이 되면 더욱 까다로운 세부 공정으로 이어진다. [대학→직장인→연애→결혼→출산→육아&직장인→부모와 자식의 보호자]로 분신술까지 해가며 나를 여기저기 필요로 하는 곳곳에 심어 두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뭐지? 뭐가 남지?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누구의 남편이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보호자. 그 누구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체적인 ‘나’란 놈만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를 다들 한결같이 강요하고 있던 건 아니었나 싶은 질문과 답을 하며 더욱 복잡해진 길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니 제발 부부간에 결정지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입을 대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 크다. 감 나라 배 나라 한다고 진짜 당신들의 말처럼 감도 자라고 배도 자라는 뿌리면 뭔들 못하겠소. 당신들도 못했던 인륜지대사에 대해 강요하지 않았음 하는 간절함이 크다.

그래서 우린, 진심을 다해 우리의 소리만을 귀 담아 듣기로 했고 그 외의 이야기는 흘리자 다짐했던 신혼 초가 생각났던 단락이다.(사람 나름이라고 흘리고 싶어도 흘려듣지 못하면 때때로 그 말의 독성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병이 생기기도 하니 흘려듣자 할 때 미련 없이 흘려버리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022_ 모든 사소한 일이 연인과 함께라는 이유로 즐길 거리가 되는 셈이다. 어제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사랑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게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어제와도 같으며, 그제와도 별반 다르지 않는 일상이며 똑같은 장면의 연속이다. 으레 매일매일 방영하는 일일 드라마였다면 구독자는 다시보기 할 때 스크롤을 당겨보거나 스킵을 누를 장면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가장 재미난 장면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연애를 하면 모든 것들이 우리 위주로 돌아가고, 모든 사랑 노래가 우리 이야기였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118_ 예측 불가능한 존재인 인간 둘이 만나 이루는 결혼이란 우주가 그리 단순할리 없다.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지만 않으면, 뒤집어 말해 부부가 자기들의 기준으로 결혼생활을 꾸려 나가면 거기에 일반론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둘의 의지와 노력만 남는 셈이다.

광활한 우주 속, 그 지구라는 작은 행성, 수많은 나라와 인구 속에서 당신과 내가 만날 확률만큼이나 우리는 참 많이 다르기도 하고, 어쩜 이래? 라는 의문이 날 정도로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천생연분인가보다 싶은 생각을 하고, 다르면 당신의 모자란 부분을 내가 채워주려고 이렇게 만난 것이라고 멋대로 로맨스 소설을 짜 맞추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린 부부이고, 그러니깐 어쩔 수 없이 당신 옆에 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이왕 그렇게 제멋대로 내 맘대로 지어낸 사랑이야기라면 끝까지 기승전행복론을 이어갔음 한다. 은비 까비 속 동화도 그랬고, 배추도사 무도사 아저씨들도 이야기 보따리 속에서 꺼내준 것들이 전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이었으니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믿음을 이어가며 우리도 행복하자는 거다.

결국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당신과 나 뿐이니깐 우리 둘만 잘하면 되는 거야.



■157_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나이 들어서 둘만 있으면 외롭지 않겠냐고 말한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어떤 희망이 있냐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처럼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 눈엔 반복돼 보이는 삶 속에서 사소한 발전을 찾기로 했다.

... ... 5년 뒤 혹은 10년 뒤를 생각했을 때 우리 곁에 사소한 변화는 있을 것이고, 그 정도 희망의 감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초반에 이 질문을 받으면 감정이 요동치며 반감이 더 세게 들었다. ‘당신이 왜?’라는 반박을 하며 양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그렇게 혼자 가시를 세우지만 정작 표현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감정으로서는 당신이 보기엔 내가 평범한 다른 이들과 다르니 ‘걱정’되어 하는 말 이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고쳐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의 주변 사람들처럼 우리를 둘러싼 친구네 부부들도 아이 없이 둘만이 행복하게 잘 살자고 마음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듯 결혼과 출산의 순서를 밟아가는 가정도 있다. 인류의 다양성 중 한 갈래로 좋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작사가 김이나님이 한 예능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희 같은 부부는 죽었다 깨어나도 자식을 가진 기쁜 우주를 체험해보지 못하겠지만 다른 부부들은 체험 못 하는 아이 없이 부부끼리만 사는 즐거움은 (그 부부들이) 절대 못 경험하니까.”라는 대답이었다. 12년째 아이를 갖기 않고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너무 만족스럽고 좋다고 이야길 하는 모습이 우리가 하고팠던 대답이고, 계속 이어나갈 목표이기도 하다.




■176_ 그래서 노후를 위해 또 한가지 준비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을 즐기는 습관이다.

내가 자녀를 안 낳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부분이기도 하다. 내 노후를 위해서 자녀를 낳진 않고 싶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태어난 것도 아닌데, 부모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아이가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그 아이도 존재로서의 가치와 삶의 이유가 있을 텐데, 어느 시점부터는 본인보다 부모의 부양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그게 재미난 삶으로 분류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다. 으레 자기를 낳아준 부모라면 부양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애쓸 자식들이다. 결국 나도 그러한 수순을 밟고 있으니 효자 효녀 유전자는 대물림인가보다.

나는 그러한 유전자를 내 선에서 끊어냈으니 배우자와 나를 위해 더 견고하게 노후를 준비해야한다. 노후 대비를 다 하더라도 둘 중 한명을 먼저 이승으로 보내기라도 한다면 그 허전함은 남은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공간이다. 가족들의 탄생과 사망을 다 본 나로선 슬픔과 행복의 깊이와 농도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그렇다고 그 죽음에 대한 대비만하며 살기엔 죽기만을 바라는 삶처럼 여겨지니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될지 모르는 일상에서 슬픔보단 기쁨의 순간이 더 많았으면 한다. 그게 남겨질 사람에게 남아있을 추억도 될 테니 말이다.

내 또래라면 이 CF 광고 문구를 기억 할 것이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광고에서도 인생을 즐기라며 말하는데, 이렇게 산다고 누가 뭐랄 것도 없으니 제발 누리고 즐기고 표현했음 싶다.





■185_ 그러다가 생각한다. 둘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순간이다. 이렇게 행복한 날들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너랑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고, 그래서 같이 살 자 했으니 다른 것 필요 없고 ‘너랑 나’만 생각하며 살자고 했던 남편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문장이다.

작가의 부부의 일상들과 우리 부부의 에피소드들이 참 많이 겹쳐 보이던 책이다. 비슷한 생각과 행동들 덕에 이 책에 더 깊이 몰입을 했고, 나의 속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고 말해주는 듯한 문장들이 가득해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 내가 말해도 이해 못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면 내 모자란 어휘력 때문에 표현하지 못한 내 생각들을 다 알아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우린 공장에서 찍어낸 인간1, 인간2가 아니다. 각자의 뜻하는 바와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삶의 기대치 또한 다른 것을 인정해 준다면 마주보는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를 바라보는 부부와 타인간의 시선의 온도도 조금은 따수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크다.


이 리뷰는 출판사 허밍버드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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