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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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시작된 마스크 생활화는 이제 일상이 되어 생필품 구매 목록의 0순위가 되었다. 1년이 넘어선 지금은 언제 끝날지를 예측하는 언론의 보도에 콧방귀를 뀌듯 쓸데없는 소리로 여겨진다. 당장 올해? 아니 내년? 글쎄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니라고 보여지니깐. 의료계 종사자도 아닌 내가 보기에도 우리의 일상에 너무 녹아든 감염균. 

작년 봄 예전에 읽었던 '페스트' 를 다시 찾아 완독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엔 세계문학 명작이라고 읽었다면 다시 읽어보면서부터 나도 어쩌면 이 시대속의 어떤 이가 되는 건 아닐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본 기억이 있다.

계속 변해가며 견고해지는 감염병의 온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 보기로 한다.


■ 뭔가 이상한데도 그 이유가 확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격다짐으로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대부분 아주 유치한 원인을 들이댑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국민성'이죠. ... ... 이렇게 서로 병립할 수 없는 음모론이 난무합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미국인 네명 중 한명이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습니다.

음모론. 그리고 여론 흔들기. 이런 사건들과 기사들은 대기업들이나 정치적인 사건을 두고 사건을 이야기 할 때 쓰이는 단골 용어라 여겨왔다. 그런 음모론이 이러한 감염병을 두고 나오는 단어라는게 기가 찰 뿐이다. 그리고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자극적인 결말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들을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도 집중을 해야 한다. 수 많은 정보들 중에서 정확한 펙트만을 집어내어 이해하는 것. 그것에 집중 할 수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본 후에 보도기사 솎아내기도 괜찮은 방법이라 여겨지는 초입이었다.


​■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조상의 삶, 우리 조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인류가 역병을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우리 안의 원시인' 입니다.

사회적 갈등. 심리적 불안. 오늘을 살아오면서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산 건 아니다. 우리는 탄생의 순간부터 다양한 균속의 일부가 되어 자라났다. 과거 오랜 시간동안 생존해왔을 감염균도 있을테고, 그 질긴 인연의 고리를 끊고자 개발된 감염균 퇴치 항생제를 몸에 투여하면서 인간은 좀 더 우월한 생명체로 살아왔다. 우리가 손에 꼽기도 힘들도록 수 없이 앓아온 감기부터 시작하여 그 나이 또래들이 한번씩 앓는다는 수두나 수족구까지. 과거엔 치사율이 높았더라도 지금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병원 주사 한방이면 끝이나는 단순 과정으로서의 절차로 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모든 혜택을 누리는 우리는 과거 인류가 느꼈던 많은 갈등을 무시해선 안되겠지. 우리 이후의 세대가 과거 인류의 기록을 찾아볼 땐 똑같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는거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 애써 개발한 항생제도 결국 다양한 내성균을 양산했지만, 그래도 항생제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항생제 덕을 참 많이 본 나로서는 내성균보단 맨몸으로 버티는게 더 두려운 순간으로 여겨진다. 인생의 큰 굴곡 없이 살아왔지만 잔잔한 너울은 무시 할 수 없더라. 잦은 잔병치레와 함께 가족의 걱정과 근심이었던 나로서는 묵묵하게 감염병과 싸워 이기는 것 보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으니 인류의 많은 고난과 함께 개발된 치료제가 가장 고마웠던 수혜자였다.

과로를 해서 20대 초반에 대상포진에 걸렸던 악몽같은 기억은 면역력에 대한 중요성도 일깨웠지만 항생제 없이는 어찌 버티며 다시 일하러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심한 염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할 텐가. 내성균에 대한 예후보다는 당장 내가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결정이 우선시 되리라 본다. 그러니 항생제가 없는 세상은 상상 그 이상으로 고난과 재난이 겹친 재앙의 핵이 될지도 모르겠다.


■ 아이가 새로 태어나거나 오래 두고 먹을 음식을 새로 만드는 것, 이렇게 중요한 일일수록 경험적 행동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게 됩니다.

의례와 관습화된 절제된 행동규약. 전통적으로 내려온 감염에 대한 대응. 예전 우리 또래는 알 거다. 배추도사 무도사나 은비까비의 전래동화 TV만화들을 보면 그 마을에 새로 아이가 태어나면 문 밖에 금줄이라며 고추나 숯, 솔잎을 볏집 사이에 엮어서 걸어두며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두었다. 그러면 그 집에는 금줄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게되고, 더욱더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시절 면역이라는 단어가 있었겠는가. 그저 세상의 빛을 본 아이에게 악한 기운이 외부로부터 깃들지 않도록 하자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든 삶의 방식이지.

그걸 지금의 눈으로 보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생아의 면역을 위해서도, 외부의 감염균에 대한 대응을 위한 최선의 조치. 거리두기이자 자가격리와도 같은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관례와 규범 덕에 인류는 그 많은 고비를 다 넘기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모두가 모두를 혐오합니다. '나'말고는 다 더럽답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감염병 상황에 부닥치면 모두 불안합니다.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약간의 부정적 단서만 있어도, 금세 역겨워집니다. 서로를 의심하기 쉽습니다. 감염병 유행에 원인 제공자라고 지목되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삿대질을 하고 눈을 흘깁니다. 강력한 처벌,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성이 차지 않으면 사적 제재에 나섭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점점 가속화됩니다. 고리를 끊지 않으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이미 무수하게 겪어온 일입니다.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는 세상이다. '나' 말고는 다 더럽다는 저자의 문장에 살짝 비틀자면, 가끔은 '나'마저 더럽다는 느낌을 주는 세상이다. 지역감염자 번호로 메겨지는 순간 '나'의 존재에 대한 본질은 사라지고 감염자인 내가 했던 모든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더불어 다시 사회에 스며들어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되는 갉아먹고 뜯어먹는 댓글과 혐오성 발언들. 최선을 다해 방역하고 조심하며 애써왔던 순간이 감염자와 동선이 겹쳤고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보람 없는 시간. 

저자는 프롤로그 말미에 이런 이야길 했다. '우리는 분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되돌아가는 길은 막혔고, 앞에는 아무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이 얼마나 허무한 말인가. 또, 이 또한 얼마나 절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문장인가. 


뭐, 인류가 겪은 어떤 팬데믹도 단기간에 종결된 적이 없음을 미리 이야길 해주었으니 짤아도 몇 년, 길면 수백 년 감당해야 할 몫이긴 하다. 1년이 지옥같았고, 1년을 넘긴 지금은 익숙함에 젖어들어 습관이 되어버린 탓에 마스크 이전의 삶이 어색하고 낯설기만하다. 오죽하면 TV재방송을 볼때 길거리의 시민들이 얼굴이 노출(?)된 채로 지나는걸 볼 때 이 녹화는 코로나 사태 이전인가보다 라는 날짜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페스트'에서는 페스트균이 졀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있을 수 있다고 했다. 꾸준히 살아남아있다 또 다시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름돋는 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모든게 픽션같지만 팩트로 다가온다. 


감염병을 중심에 두고, 인류학 / 진화학 / 종교학 / 면역학 등 다양한 분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느 하나 배제할 만한 학문이 없었다. 인류가 만들었으며 사회가 키웠고 미래엔 더 복잡한 지도를 그려가며 확대해 나갈 진득하고 끈덕한 인류와의 대립적 정체. 같은 인류라면 말이라도 하고 설득이라도 할 텐데, 이 균은 무언(無言)의 형태로 분열하고 번식하며 생을 이어간다. 그래서 더 환장할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이가 아니다. 기초 과학만 아는 정규교육만을 받아온 평범한 사람1에 불과하다. 의료계 종사자도, 과학분야 발전에 기여하는 인물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이가 감염병에 대해 좀 더 수월하게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기록들을 뒤져보는 수고로움 없이 책 한권으로 이해하기엔 참 괜찮은 페이지들의 조합이다.


다만 에필로그에서 말한 어두운 미래에 나왔던 페스트의 문장이 바로 코앞의 미래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덮게 된다.


◎ 이 책은 창비 출판사의 스위치 서평단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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