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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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이 1900년대의 조선 김해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인지 익숙한 지명과 사투리들은 낯설다기보단 오히려 음성인식되듯 아주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쏙쏙 들어왔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 일수도 있고,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 일수도 있는 이민 1세대 여성의 순간을 그려내고있다. '사진 신부'라는 낯선 단어.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 '사진 신부'가 되어 포와에만 간다면 옷과 먹을것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나무도 있고, 사탕수수라는 농장의 지주이며, 차도있고 돈도 많은 그곳의 남자들과 잘 살수 있을거란 기대를 품고 타국으로 떠나게된다.

왜놈들의 억압도 없고, 여자이기에 차별받던 높은 학업의 문턱도 없을거란 희망을 품지만 마냥 행복하게 놔두지많은 않았다. 내 가족, 내 새끼들 안 굶기게 하기위해 손이 부르트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털고 일어나야했던 고된 순간들. 그 속에 '사진 신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언니동생하기도하고 동무가 가족보다 더 애틋한 사람이되어 힘을 얻는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호강하지 못해도 좋았다. 설령 고생을 한다고 해도 한 번쯤은 자신만을 위해서 하고 싶었다.

이렇게나 배움의 열망이 큰 버들인데, 마음이 아팠다. 다들 그렇듯 나를 위한 것 보다 내가 희생해야됨이 당연했던 그 시절. 동생들은 공부를 시킬 지언정 본인은 일을하고 가정을 유지할 수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꼭 나의 엄마를 보는 듯 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마냥 어린 놈은 아들이니깐 대를 위해서라는 말도안되는 핑계. 둘째딸은 둘째라서 해주면 안되겠냐 싶지만 이 위치는 원한것도 아닌데 가족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라는 그런 역할긋은 왜 만들어 두었나 모르겠다.

 

거울 속 여자, 사진 속 남자

✎“어무이요. 쪼매만 더 고생하이소. 지가 호강시켜 드릴게예.

버들이 말했다.

“치아라. 내가 자식 덕 볼라꼬 니를 그 먼 데로 보내는 줄 아나? ...”

결국 '사진 신부'가 되기로한 버들. 어머니와 가족의 곁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 아무리 팔을 쭈욱 뻗어도 닿지 않을 곳으로 영영 가버릴 아이. 돈을 받고 팔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어머니는 성공해서 호강시켜드린다는 버들의 말이 당신의 가슴에 비수가 된듯 쿡쿡 찌른다. 하고싶다는 것도 제대로 맘껏 시켜주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 되려 당신을 위로하고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릴까. 핏덩이같은 아직도 그냥 앤데, 이제 보내버리면 영영 못 만날거 같은 마음에 어머니는 마음을 다잡고, 이른 아침 뜨듯한 밥을 먹이고, 혹여 가는 동안 배라도 곯을까 주먹밥을 싸주고, 옷가지와 베갯잇, 혹시 모를 손주가 될 생명이 입을 베냇저고리까지 살뜰히 만들어 챙겨준다. 그래 엄만 그랬어. 정 떼어두려고 맘에 없는 말은 하지만 뭐라도 챙겨주고픈 손은 따뜻하고 또 안쓰럽기까지 하지.

알로하, 포와

✎하루하루 새롭고 즐거운 생활에 빠져 언제부턴가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감싸 안고 있던 소중한 물건들을 가방에 빼앗기고 그만 버려진 보자기가 마치 어머니 같았다. 버들은 죄책감에 털썩 주저앉아 빈 보자기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선에서 바로 갈 수 없는 포와. 조선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모든 항목을 통과해야만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포와. 그동안 사진속의 남편이 될 사람이 준 돈으로 처음 즐겨보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들. 남편이라는 사람이 준 돈으로 예쁜옷도 사입고 처음으로 내가 고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가방도 구입하는 재미.  하지만 한켠에서 아려오는 죄책감. 나만 이렇게 호강해도 되나 싶은 미안함과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왜 안 그러겠어. 눈에 밟히는 어린 동생들과 자신의 몫까지 일하고있을 어머니의 손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 일거야.

 

5월의 신부들

✎반지는 살갗에 상처를 내고서야 제 자리를 찾았다. 버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면사포는 되돌려 줘야 하고 꽃은 시들겠지만 반지는 영원히 손가락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고 친정을 도울 수 있다는 증표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반지를 늘려준다는 말은 버들의 결혼이 순조롭지 못함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맞지않은 반지를 욱여 넣으면서 그 자리가 본인의 자리라고 믿고 싶었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사진 신부'로 온 조선의 여인들 중에 본인의 남편이 될 사람은 외모를 속이지도 않은 듯 하니 모든게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조건 또한 속이지 않았고, 조선의 내 가족에게 보탬이되고 나도 공부를 할 수 있을 미래의 나를 짜맞추려 한게 짠했다. 어찌어찌 하더라도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하는 버들.

 

삶의 터전

✎어쩌면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건지 몰랐다. 버들은 자기 살기에도 벅찼다.

눈뜨면 시작될 하루가 버들은 버겁기만하다.

조선을 떠나오기전 생각한 포와는 사시사철 날이 따숩지도 옷가지가 주렁주렁 열리는 신기한 나무도 없다. 당장이라도 피부를 태울 듯한 햇살 아래에서의 고된 노동과 함께 이어지는 현실 자각의 날들. 지주가 되어있을 남편도, 사진속의 말쑥한 청년도, 달콤한 글들로 설레게 만든 사람도, 자기차처럼 배경으로 두고 찍은 호탕한 모습도 모두 없다.

그래서 홍주도 송화도 먼저 연락할 수도 없었고 찾아가보지도 못한다. 생판 처음 들어본 나라에 나는 이방인인냥 뚝 떨어졌고,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되는데 지지대가 되어주어야할 남편은 정을 주지 않으니 혼자서 모든걸 이겨낼 어린 버들은 많이 지쳤을테지. 어쩌면 공부는 맘껏 못하더라도 나고자란 익숙한 마을에서 어머니의 품삯을 도우며 큰 시련없이 잔잔하게 사는게 나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후회도 분명 했을거라 느껴졌다. 오늘을 살아갈 버들은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세븐 캠프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야 했으니 말이다.

1919년

✎어두운 발밑을 핑계 삼아 태완의 팔짱을 꼭 끼고 걷다 보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는 불행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목석같은 남편이 나를 그리 대했던 이유도, 마을사람들이 버들과 태완에 대해 쉬쉬했던 것들도 모든걸 한바탕 울음으로 털어낸 후 조금씩 변화된 두 사람. 그렇게 둘은 의지를 했고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았다고 여겼다. 마냥 따뜻할 것 같던 포와에 찾아오는 스콜처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픈 행복 뒤에는 깎아내리는 듯한 불행의 절벽이 있다는건 슬픈 일이다. 왜 그리도 빨리, 자주 찾아오는지 모를 날들. 이런 소설을 볼땐 느낀다. 소설에서라도 한번쯤은 눈 딱 감고 이들이 행복하게 내버려두면 안되나 싶은 순간이 많다. 나는 비록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리 고생한 버들에게 한번은 스콜이 비켜가길 바라는데 맘같지 않아 지금 이렇게 행복해할 그녀의 얼굴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나의 엄마들

✎도대체 엄마 가슴속엔 상처로 얼룩진 이야기가 얼마나 들어 있는 걸까. 그런데 엄마의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그곳에 살고 있을 송화가 떠올랐다. 나는 얼른 그 모습을 지워 버렸다.

함께 시스터 런드리를 운영하는 버들의 이야기에서 시간이 한달음에 펄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넘어온다.(너무 순식간이었고, 이제 급하게 끝을 내야 하는 단락인가보다 하는게 느껴졌다.) 태완과 버들이 딸이라면 짓고팠던 진주라는 이름. 펄은 정말 버들의 딸이 된다. 펄이 딱 '사진 신부'가 되던 버들의 나이가 될때 이야기는 몇줄의 단어로 출생의 비밀을 로즈(홍주)의 추억상자들로 줄줄 풀어낸다. 진짜 버들의 딸이던 여자아이는 죽고, 산달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던 송화의 아이가 펄이 되기로 한다. 송화는 결국 무병을 이기지 못해 조선으로 돌아가 본인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은 자라고 홍주를 재혼을하고 로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게 된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펄은 자기의 엄마가 버들이 아니라 송화라는 것에 혼돈이 오지만 이걸 알지 못했다면 평생 가슴에 뭍어두고 품어줬을 엄마들(버들, 홍주, 송화)에게 한편으론 감사함을 느끼고 굳이 엄마들에게 알려 마음의 짐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쉬엄쉬엄 말했다. 편안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나는 울음을 꾹 참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 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왔고, 그 덕에 나는(펄)은 좀 더 수월하게 사는 걸지도 모름을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정리. 송화의 아이가 펄이 될 수 밖에 없던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나만 느끼는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급하게 제목에 걸맞도록 나의 엄마들에게 잘 살아와줘서 고맙다고 하고픈 끝맺음. 시간이 된다면 여건이 되는거라면 작가님과의 대화나 인터뷰를 통해 듣고픈 후반부의 내용이 많다. 질문도 하고싶고. 이건 무지개계모임의 그녀들이 감추고싶은 오프더레코드의 일부라고 여겨야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온 엄마들. 시대와 장소를 구분짓지 않아도 엄마들은 어떠한 언어를 막론하고도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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