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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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민주화운동가였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의 시선에 담긴 모습들.

 

 

 

더이상 피는흐르지 않습니다.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것은 있습니다.

피는 흐르지 않다 한들 흔적은 있기 마련이다. 그저 상처에 흐르던 피가 굳고 딱지가 앉는 것. 그러므로 그건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으며 지우려고 그 말라비튼 딱지를 손으로 억지로 뜯어 내려다보면 영영 지울 수 없는 흉이 지기 마련이더라. 종이에 베여버린 손끝의 상처도 그러한데 사람의 인생을 할퀸 상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반창고로 가려볼거라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덧데여진 그 부분이 더욱 도드라지는 건데 왜 그걸 모를거라 생각을 하게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의 아버지의 일생에 담긴 상처는 누가봐도 뻔해보이는데 사람들은 그리고 세월은 안 볼 거라고 등을 돌리면 그게 끝인 줄 안다는 생각에 울컥해진다.

한 이름이 드러내고 다른 이름이 은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사랑이 세계를 바꿀 힘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용서나 관용, 무지 혹은 앎의 상태와는 어떻게 다르다며 구별될 수 있습니까. 용서 없이도 사랑은 성립합니까.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랑을 정의함에 있어서 생각해본다. 그 경계는 어디까지이며 비단 남자와 여자만을 만남과 애정을 사랑이라고만 단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 사랑을 포옹력이며 이해와 내가 무언가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게 만드는 목표이기도 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우리가 또다른 우리를 아끼고 우리들이 나라를 위해 애정어린 마음을 다해 지키려는 것. 그리하다보면 좀 더 괜찮은 시대가 올거라는 믿음으로 확장된 의미의 애정을 더한다. 가끔 나만의 일방적인 사랑 같아서 회의감이 들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

 

 

개인을 위한 삶이란, 자신의 입에 밥을 넣는 것뿐 아니라 다른 식구의 입에 밥을 떠넣는 것을 포함하는 개인적인 삶이란, 당신은 이제부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당신에게 더없이 낯설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혼자였던 적 없이 언제나 함께 투쟁했고 그래서 우리는 형제였고 겨레였고 민중이었으며 바로 그런 우리 자신이 우리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당신 동지들로부터, 벗들로부터, 민족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우리였던 당신은 한겨울 옷을 빼앗긴 맨몸으로 차가운 거리에 내던져진 듯하다.

가끔 당신들이 말하는 '개인'과 '우리'의 정확한 구분이 내가 아는 뜻과 다른건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우리'라는 울타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임을 말하는건지도 모르겠고, 당신이 열망하던 세상에 대응하던 우리들과 내가 지금 온몸으로 느끼는 우리는 참 많이 다름을 느낀다. 당신도, 당신의 딸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나도 '우리'라는 범주가 달라보인다. 시간이 지날 수록 '개인'에 가까워진 '우리'의 경계선. 그러니 당신이 본다면 내가 너무 야박하고 매정하다 싶을지라도 당신도 이 글을 읽는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개념속으로 좀 들어와주었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이나 민중, 넋, 한, 그리움 이러한 단어들은 이제 개별적인 존재로 놓아주고 당신과 당신의 아내, 딸 이렇게만을 생각하는 '우리'가 되면 안될까 싶은 간청을 하게 만든다. 비밀을 적던 그 자그마한 수첩을 늘 지니고있다가 벗에게까지 영향을 끼칠까 싶어 경찰이라도 다가올라치면 삼켜버리던 당신의 그 시절의 '우리'에서 이제 좀 벗어나서 살아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커졌다.

 

당신은 이제 전기 배선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은 영어 시험 급수를 취득해야 합니다.

당신은 엑셀 함수값 계산법을 익혀야 합니다.

당신은 한글 프로그램으로 그래프 그리고 표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전산 자격증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도 따야 합니다.

또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당신은 이제 신념있고 정의로우며 의로운 사람이 되어선 안되는 것이었다. 당장의 세상살이 고난과 '우리' 가족. 당신의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아야되는 이유만을 생각해야되는 거였다. 당신이 민주화운동을 하며 경찰에게 쫒기는 동안 옷 수선집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며 일하며 당신의 몫까지 삶을 살아야했던 아내.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학급임원으로 수학문제 풀이를 하는 야무지게 제 역할을 다 하던 아이를 위한 이유.

당장 무엇을 하고자 함이 없더라도 당신의 일부와도 같은 이를 위한 그 기나긴 시간에 대한 보상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무조건 고개를 조아릴 줄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동전 몇 개를 잘못 받았다고 물건을 바닥에 던지는 사람에게, 술 취해 유리상자 속 인형을 뽑다가 잘 안 되면 가게에 들어와 애먼 사람을 향해 화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도우려 애써도 빚을 지고 또 지는 형에게, 독재자의 따를 신으로 섬기며 매일 밤 그 신전에서 우리 형제의 미래를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가슴 한구석이 꽉 메어오는 듯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너나 할것 없이 화가 가득한 세상 속에 사는 기분이 든다. 내 뜻대로 안되면 마녀사냥의 힘을 빌어서라도 내가 옳은거고 상대가 무조건 그른 짓을 했기에 질타받아도 마땅하다는 답변을 찔러 넣고 이겨먹으려든다. 전후사정없이 힘이 센 사람이 답을 이야기하는 자. 그보다 약한자는 먹잇감이 되는게 마땅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힘이 센 독재자 편에 붙어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기 위해 옳고 그른 것 따위는 배제해두고 당장의 삶에 기대는 것. 시대가 지났다 하더라도, 요즘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라는 말로 시작하더라도 변하는 것 없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당신은 옳지 못한 짓을 한게 아니다는 것 알려주고싶지만 답은 나와있는데 답이 아니라고 하는 아이러니한 목소리들로 그득하다.

 

 

 

이제 수갑은 없습니다. 얼굴을 가렸던 검은 천도 없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을 묶는 포승줄도 없습니다. 결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은 왜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까.

양심수라는 이름도, 진주교도소에서 수감하던 수감원도, 그 골방에 갇혀있고 낯선 진주라는 도시에 묶여있지만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존재로 살지 않아도 되는데 아버지는 그 기억에 갇혀 산다.

아이가 가정환경조사서를 낭독하며 너희 아버지는 무엇에 봉사를 하시는지에 대한 물음에 발표를 하던 시절에서 한참을 벗어났지만 아버지는 그곳에 머문다. 빠져나오기 두려운 두꺼운 벽안에 갖혀있다가 나온 당신. 이제 좀 놓고 살아도 되는데 한때의 청춘을 끓어오르던 신념을 배신하고 함께하던 이들이 사장과 정치인, 공무원이 되었으니 그들의 부정. 그들의 불의. 앞서 이야기했던 '우리'라며 어깨를 잡아 함께하던 순간에 대한 허탈함이 아직 놓아주질 못하나보다. 이건 누가 밖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고, 스스로가 발로 차버리고 나와야되는데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은 꽤나 두껍고 단단한 듯 하다.

 

 

오천만원을, 어림잡아 이십 년으로 나누어보자.

일 년은 이백오심만원 정도 된다. 이백오십만원을 삼백육십오 일로 나누면, 그의 하루는 만원보다 값싸다. 그 보상은 세 사람을 향한 것이므로 그것을 삼분의 일로 나누면......

처음 내 노동에 대한 가치를 책정받을때, '연봉계약서'라는 걸 썼다. 한 해 동안 내 육신으로 인한 노고에 대한 사측이 주는 보상. 그 보상에 대한 약속을 하고 우리는 일을하고 기꺼이 내 시간을 제공한다. 자그마한 내 노동의 댓가도 이렇게 보상을 받는데, 나라에 대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이 참 작고 소박하다. 한 사람의 가장 화려한 시간을 오롯이 가져갔지만 나라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대단하고 화려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신문에 이름 석자가 찍히지도, 뉴스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은 유령같은 사람이라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배려비용이라 봐야되는건지.

아빠는, 아이가 없거나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 때문에 꽃을 달 수가 없어.

꽃을 보면 저마다 집에 있는 아이 얼굴이 떠오르지 않겠니.

그 꽃은 아빠 가슴속에 있단다.

희안하다. 당신이 말하는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먼저 미안해하고 가슴아파하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이해를 했을까? 어릴때나 지금이나 내가 느끼는건 당신이 말한 그 순간엔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속으로는 약간의 원망이 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단번만 모른척 하고 아빠 가슴팍에 꽃을 달아주게 해주지. 다른 친구들 맘 헤아리기전에 내맘이라도 먼저 헤아려주지. 그냥 한번만 모른척 하고, 눈 딱 감고 오늘만 그 많은 날들중에 딱 하루인 오늘만 그렇게 해주지.'라는 투정어린 마음.

여전히 당신은 '개인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우리'라는 전체에 갇힌 사람이겠지. 미련하고 우직하게도.

 

엄마가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넣었던 것과 같은 양갱을 사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도 같은 것을 먹고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같은 것을 나누는 시간일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같은 것을 나누는 시간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같은 공간에서의 행복감을 공유할 수 없는 부부. 그저 먹는 것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식신청을 하며 그것을 받아볼 당신을 그려보는 엄마. 함께하는 순간에 대한 바람보다는 내가 움켜쥐고있는 양갱을 아마도 당신도 먹고 있겠지. 그걸 바라보며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며 마음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도와주는 마음의 격려. 그게 엄마가 당신에게 보내는 응원이고 사랑이더라.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삶은 그런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려 했다.

모두가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함께 버텨온 사물들도 빛이 바래지고 같이 나이를 먹으며 잊어가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야속한건지 얄미운건지 한 사람이 기억하는 세월속 사건들이라는건 쉽사리 잊혀지지 않고 이리저리 치여 더 날카롭게 자신을 찌르기도 한다. 무뎌지길 바라자. 그냥 조용히 잊어가길 바라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날 당신. 당신을 바라보는 엄마. 알지만 모른척 해야되는 딸.

자전거 안장 뒤쪽을 붙잡아주며 함께 달리는 아버지가 있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아버지. 그래서 이제부터 함께 살게 될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아버지.

나는 민주화운동을 영상과 글로만 접한 세대 중 한명이다. 학생시절에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을 했고, 내가 그 시절의 그분들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지만 선뜻 나서기 어려워하는 '우리'보다는 '나'라는 개인에 더 갖혀있는 사람이다. 그때도 그러했고, 머리가 굵어진 지금도 변함이 없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는 아주 나약한 존재인걸 안다. 성공을 한다면 정말 대단히 칭송받고 우러러 보겠지만 만약 안될 경우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더 먼저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중 하나다. 그시절 나같은 사람도 분명 있었겠지만 당신들같은 사람 덕분에 지금의 나는 아주 편히 숨쉬고 할거 다 하고 누릴거 다 누리는 약은 인간중 하나라해도 할 말이 없다.

언론이나 기록물에 다 올라가지 않은 이름모를 이들의 노력. 가장 푸르던 청춘들의 삶과 맞바꾼 지금의 평화. 누군가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반짝이는 시간들. 그 빛나는 시간들로 얻어사는 우리는 적어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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