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노래
김창기.양희은 지음, 키큰나무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뜻밖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노래인데, 이때가 내가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해이다. 27년가까이 엄마곁에 붙어살고 껌딱지처럼 떨어질 생각조차 안하다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정신없었던 기억이 있다. 누가 보면 진짜 멀리멀리 떨어져 살았나 싶겠지만 결혼하고 직장으로 인해 친정과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거주를 해도 매일 보던 얼굴이 아니라 그런지 전화를 해도 멀게만 느껴지는 내가 아는 어휘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들에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전주 없이 시작하는 노래의 첫 부분처럼, 책 또한 앞 부분엔 '엄마'가 자기 독백적인 말들을 한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엄마의 인생은 나로 인해 하고싶은 걸 모두 포기한채 살아오셨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부업과 식당일을 함께 하셨기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패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의 거리에서만 오가시면서 30년 가까이를 살아오셨다. 어디 좋은 데를, 남들 다 간다는 한번의 해외여행도 친구와 함께 간다는 계모임 단풍구경도, 햇살이 좋은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서는 벚꽃여행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부터 일하시는 식당으로 가는 길목의 가로수를 통해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는걸 느끼셨을 터.

그렇게 하루, 한달, 일년.... 그러한 반복된 시간 속에서 엄마는 나를 낳던 27살의 여인에서 딱 곱절의 세월을 넘긴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정신없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라는 생각이 얼마나 들었을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 뭣하나 나를 알아주는 가족들이 없다는 생각을하면 한없이 허무하고 허망할 것이다. 내 속으로 낳은 놈은 사춘기에 접어들어 대화 자체를 안하려하면 얼마나 야속할까.

조막만한 녀석이 마냥 어린 아이 같았는데 스스로 할 줄 아는게 늘어가면서 제 또래랑만 어울리고 학업에 바빠 온갖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쏟아내면 얼마나 엄마의 가슴에 비수가 꽂힐까. 왜 나는 그 때 바로 알아 차라지 못하고, 이제서야 후회를 하게 되는지 그 어린 시절의 내가 원망스러워 질 때도 있다.

1절이 엄마가 이야길 하는 거라면, 2절은 딸이 망설이다 조금씩 풀어내는 마음속의 이야기들이다.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묻을 더 굳게 닫지....

조금 더 다정하고 상냥한 딸이 되고파도, 뒤돌아서면 다시 틱틱거리는 사춘기의 반항심 많았던 딸이 되기도 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내가 하려했던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은 하지만 정말 마음과 다른 말들로 들어주는 엄마도, 나도 속으로 같이 울었을거다.

어느날은 쫑알쫑알 미주알 고주알 다 말해주며 안기는 애살쟁이가 되기도하고, 또 어느날은 가시돋힌 선인장보다 더욱 따갑게구는 예민쟁이로 변하기도 했으니 엄만 이 변덕쟁이를 오죽 어려워했을까. 그걸 나는 성인이되고, 엄마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느꼈다.

엄마에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나였고, 대화를 가장 많이하고 통화를 많이 하던 사람도 나였고, 처음 문자쓰는걸 가르쳐주고 오타 가득한 단어들이지만 가장 많은 문자를 보냈던 사람도 나였다. 처음 영화관의 큰 스크린을 본것도, 구하기 어렵다는 뮤지컬의 맨 앞좌석도, 타지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자그마하고 분위기있는 카페를 함께 간 것도 나였다. 갱년기의 호르몬 변화로 힘들때 매일 밖으로 끄집어내어 바람쐬며 추운 밤거리를 쏘다녔던 것도 엄마는 다른 친구나 동생들이 아니고, 딸인 나랑 함께했던 것들 이었다. 지금에서야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왜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도 몰랐을까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엄마의 청춘을 모조리 받쳐 나를 키우느라 애쓰셨는데, 그 청춘에 대한 보상이 이정도로 되긴 할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내가 엄마의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글의 내용은 엄마와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굳이 사춘기의 딸을 향한 이야기들은 아닌 거라 느껴졌다.

엄마에게 딸은 늘 어리고 마냥 여린 존재인 듯 하고, 딸에게 엄마는 생각만해도 눈물나게 만드는 눈물샘의 주인 같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이미 이렇게 나를 키워준 것 만으로도 대단하고 감사한 분인데, 왜 당신은 늘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실까. 당신이 가진 10개를 다 주어도 하나를 더 못 주어 애닳아하는 사람이 엄마라 그런가보다 싶다가도 왜 나한테 다 주려고만 하는지 생각만하면 엄마가 답답하기도하고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

 

책에 그려진 삽화를 보며 과거의 나를 회상하고, 단어를 손으로 밑줄긋듯 매만지며 읽어내려갈땐 굳이 글밥이 많지 않아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엄마만큼 멋진 엄마가 될순 없을 거 같아. 그래도 적어도 엄마에게는 자랑스럽고 어디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도록 나는 열심히 살꺼고, 내가 엄마 나이만큼 늙어도 영원히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고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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