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안아줘야 할 시간 -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한성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이른바 만지면 바스라지는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사람이다.

의연한 척 해보려 해도 쉽게 흔들리고, 무던한 척 해보아도 금새 얼굴로 들어나는 자존감 약한 사람.

그래서 유독 심리학 책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


가끔 자존감이 높은 주변인들을 보면 부럽다. 항상 자신감에 넘치고, 당당해서인지 주눅드는 일 보단 못해도 나는 괜찮아 라는 긍정의 기운이 가득차 있는거 같다.

남편이 그러하다. 자신감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장난스레 거울보며 잘생겼다며 우스개소리도 하고, 멋지다는 말을 하며 스스로를 추켜세우길 잘한다.

웃음기섞인 말들이지만 나는 내 평생에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손가락안에 꼽힐 것이다. 그만큼 무엇을 결단하고 보여기지게 낯설어하는 사람이다.


대학 시절 PPT 발표를 많이 하는 학과 이다보니 학기 내내 앞에 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성격탓에 밤을 새워 완벽히 준비해도 자존감과 당당함이 결여되어

단상에 나가기도 전에 손엔 땀이 한가득이고 심장은 다급히 뛰는게 나만 그러지 않고 다들 그럴꺼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보니 이건 모두 내 성격과 마음에서의 문제 였던 것. 나를 조금이라도 믿어주면 될 것을 왜 그리 못미더워하고 모자라다 생각했을까.


작가는 본인과 같은 혼란기를 맞이한 3,40대의 애매한 청춘들에게 이 시기에 해보아야 할 생각과 구체적 행동, 나의 인생 후반을 이끌어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전했다. 작가도 30대 후반에 어렵게 떠난 미국 연수 중 진로의 고민과 허락된 시간과 기회에 결심을 못했던 것.

혼란이 있어야 고군분투도 하며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꺠닫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싶은 희망을 품으라고 전해주었다.


나같이 툭 쳐도 바스라지는 멘탈이 과연 터널을 빠져나온 들 달라지긴 하려나?

 

86P_ 사람들은 모두 불행을 두려워하고 행복해지기만을 바란다. 다시 말해 불행 없이 행복만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닌다. 그래서 기쁘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고, 슬프다고 마냥 울고 있을 일도 아니다.


맞다. 행복하기만 바란거 같다. 기분좋게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바라는 거고, 나의 인생 드라마와 같던 '그들이 사는 세상'의 남자 주인공 지오가 했던 '드라마처럼 살아라' 라는 말대로 살고 싶은 거다. 드라마 같은 삶. 하지만 드라마가 모두 해피엔딩이 아니듯 장르물도 다양했던걸 간과하고 있었다.

불행이 무서워 행복할수 없을 거란 생각도, 행복 뒤에 올 불행이 두려워 마냥 웃지도 못할것도 없다. 걱정한다고 안 생길 일도 아니더라. 어차피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거라면 놔둬야 되는거였는데 말이다.

87P_ 조물주는 신기하게도 나이에 따라 즐거움의 목록을 준비 해놓고 있다. 어느날 2,30대 때 관심을 끌었던 일들이 별 의미가 없고, 아무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121P_ 그러나 조금은 약게 굴 필요가 있다. 모든 순간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기적일 권리를 자신에게 주자.


열 번 못하다 한 번 잘한 사람이나,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못한 사람이나 주변에서 생각하는건 다 나같은 맘은 아니었다. 그러니 어차피 평가는 그들의 몫.

그러니 이왕 삐뚤어 질거면 제대로 삐뚤어져 보는것도 방법이었다. 어설프게 굴었다간 자기전 이불킥하기 딱 좋더라. 이왕 이기적일거 제대로 나쁜x으로 보내보는것도 내 맘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이기적이어봤자 얼마나 이기적이겠는가.


127P_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엔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만큼 '평범하게 살고 싶은 욕구'도 커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범해지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이전에는 몰랐던 평범함의 특별함에 눈뜨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173P_ 타인과의 관계에 연연하는 이유에는 의존 욕구도 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언제나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자기애적 욕망도 있다. 때론 자신의 숨겨진 적대감이 드러날까 봐 역설적으로 그 관계를 포기 못 하는 예도 있다. 이렇게 인간은 모두 나약하고 취약한 존재이기에 언제나 관계에 흔들린다.


나도 10대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했을때 '선한 사람'이 되고프단 이야길 한적이 있다.(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싸이월드 일기장에 적어 놓은 걸 보고 나는 내 손발이 잘리도록 오그러림에 발악을 했었지.) 악의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이른바 예쁨받는 사람이 되고팠던 거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하고픈 쓴소리 하기도 어렵고, 나는 언제나 'YES 맨'이 되어야 했던 거다. 내 몸에 사리가 나올 지언정 분노를 표출 하지 못해 감정이 썩어 문들어 질 지라도 나의 표정은 항상 웃고 모두를 포용하는 사람. 이제와서 느끼지만 그건 성인군자로 살지 않는 한 어렵더라. 10여년의 사회생활과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소속되어있는 많은 울타리 속에서 나는 회사 구성원이기도 했고, 쓴소리를 해야하는 선임이기도 했으며, '네네'를 연발하는 며느리였고, 세상 악한 잔소리마녀 막내딸이기도 했다.

관계속에서 나는 어떤 위치이며 무엇을 무기로 삼느냐에따라 독설가도 되고, 목석이 되기도 했으며, 천사로 변하기도 했다.

감정을 정리하는 힘을 가져야만 내가 살 수 있더라. 관계에 휘둘리다보면 정작 '나'는 없더라는 결과. 세상에 모두에게 선한 사람을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와 시선에만 소비하기엔 나는 매우 약한 존재였다. 정말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희생을 하며 살아갈 이유는 없는 거였다.


198P_ 부부는 사랑하되 사랑이 족쇄가 되지 않아야 하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되 서로 홀로 있는 공간을 존중하는 그런 관계여야 한다. 부부 사이에 깊이 있고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평생의 작업이다.


​5년의 연애.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해 온 4년의 결혼 생활. 각자의 사회속에서 역할을 하고있는 직장인 부부. 서로 일을 하는 사이라 그런 걸까? 집만 지키며 상대방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순종적인 관계는 아니다. 휴일에도 함께 여가를 보내기도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남편은 게임을하고 그래픽 작업도 하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친구와 만나 술 한잔을 하겠노라 하면 그 시간을 존중하여 굳이 사사건건 연락을 강요하지도 않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의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게 우리 부부만의 암묵적인 룰 아닐까?

상대방만을 바라보며 나만 봐주길 바라는 해바라기같은 마음은 연애때부터 없었다. 사랑은 하지만 각자의 삶도 있다는게 공감되어 더 끌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흔한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이별의 순간도, 권태기도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있어야만 너를 사랑하는 나도 있을테니 나를 무조건 너에게 결속시키진 말아달란 거겠지. 그래서 서로의 안정권을 유지하는거 같다.

이건 우리 잘 하고 있군. 계속 이 안전거리를 유지하는게 좋겠어.

 


233P_ 대한민국에서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지킬 앤 하이드로 살아갈 위험이 크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받을 기회가 적은 탓도 있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없어도 비난받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감정의 문제는 여자, 이성의 문제는 남자의 것으로 둔 채 남자가 감정 관리에 미흡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나는 참 감정에 서툰 사람이다. 마음의 변화가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고, 분노의 상태가 목소리와 말투도 단박에 들어나니 말이다.

그래서 나를 오래 겪어본 동료들이나 남편은 어느 제과의 CM송 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외친다. '니 얼굴에 다 나와 있잖아!' 가 부제가 되겠지.

표출이 힘드니 그나마 내 의지와 상관없는 안면근육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 억압. 아예 하지 말아야 되는건 아니겠지만, 떄떄로 상황에 맞는 연습은 필요한 거였다.

264P_ 나는 이 개념이 꽤 설들력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서른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30대의 감수성을 갖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마흔도 마찬가지다. 마흔이 가까웠다고 해서 곧바로 중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없다. ... 앞으로 다가올 인생 후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성장의 그림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틀만에 후루룩 읽었다. 막힘도 없었고, 사례들도 이해하기 쉬웠다. 이름만 다른 다 같은 '나'였으니까.

긴 말 필요 없더라. 딱 이만큼의 자문자답으로 답이 내려졌다.


 

이만하면 잘 살고있는거지 더 얼마나 잘 살려고 그러냐? 쟤는 쟤고 너는 너지 뭐.

굳이 쓸데없는 걱정 말고 '바로, 지금'을 살자. 그것도 잘. 그러니 너도 좀 내려 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