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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185p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을 개개인으로 돌려 ‘당신은 차별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여성, 장애인, 퀴어,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일상에서 들려오는 차별적 언동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심코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쓰거나, 중국인들이 많다고 하는 거리를 의식적으로 피해 다녔던 과거의 행동이 떠올랐다. 반성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만 놓치는 것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은 고무줄처럼 돌아가기만 한다. 왜냐하면 보편성은 소수자들의 차별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사회구조가 만들어놓은 차별에 무의식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소수자와의 평등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일상이 어그러질까 두려워 좁아진 시야로 방어적이게 행동하기도 한다. 평등에 대한 편견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만큼 견고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치별과 함께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는 자신이 그 대상이 되었을 때 정도뿐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 사회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차별들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와 쉬운 문장에 생소한 개념도 쉽게 이해된다. 표지부터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귀여운 것만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더욱 좋았다. 도비라에 그려진 오리 일러스트가 챕터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차별과 평등에 대한 교양 입문서로 주변 사람들에게 절로 추천하게 되었다.
자신은 선량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무해한 사람이니 이미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항들이라 '굳이' 이런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언젠간 읽을지도 모르니 소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156p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지만 퀴어가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음란한 축제(아마도 퀴어 퍼레이드를 말하는 것 같다)를 해서 불쾌하다는 남동생. 지하철에서 새빨간 생리대 시위가 위생적으로 불쾌하다고 공공연히 SNS계정에 글을 올린 지인 등,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고 존재를 내보이는 행위를 거슬려하는 사람들은 예상 외로 일상 가까이 존재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평화롭고 절차를 맞추어 얌전하고 조용하게 진행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말한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기에 ‘무식한 방법’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해롭다고 칭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정신건강과 종교적 해석과 공공질서에 말이다.
‘나는 차별이 좋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왜 하필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데.’
그렇게 중요시되는 ‘공공장소’의 ‘공공’은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깊이 박힌 문화, 유신의 잔재, 종교적 이유, 이유가 어떠하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부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선량한 인식은 결과적으로 소수자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권리가 빼앗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호하는 질서는 단순히 기존 관습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일상 속 불편함과 불쾌함에 막혀 쉽게 간과된다.
‘악의 평범성’처럼 권위에 순종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존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커다란 악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곧 암묵적으로 차별을 용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본 이미지가 있다. 키 큰 어른과 키 작은 어른과 키 작은 어린이가 담을 넘어 경기를 보는 그림이었다. 키 큰 어른은 무리 없이 경기를 볼 수 있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올라 설 상자가 필요했는데, 키 작은 어른에게는 한 개, 키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두 개가 주어졌다. 이것을 본 키 큰 어른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신에게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등, 즉 역차별을 느낀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상자 한 개가 키 큰 어른에게로 옮겨간다. 세 사람에게 각각 상자 한 개씩이 주어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만족스럽게 경기를 보지만, 어린아이는 담에 시야가 막혀 경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일종의 법칙이다. 개인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인식할 수 있는 ‘차별’의 범위는 다르다. 그렇기에 개인의 도덕적인 합의에 맞춰 평등을 바라보면 언제나 소외되는 층이 생겨버린다. 저자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구체적인 법안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아무리 불편하든, 들어야 한다. 불편하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만큼 차별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종, 민족, 성별, 장애,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출신 국가 등, 차별은 일상에 공기처럼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완벽히 안전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평등을 위해 저자는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포함된 ‘우리가 아닌 그들’의 존재를 인식해야한다. 그리고 꾸준히 연대해야한다. 평등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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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P185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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