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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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요한 물음을 고찰할 때 강력한 해결 수단 혹은 현명한 생각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르상티망, 페르소나, 마키아벨리즘, 리바이어던... 일상속에서도 자주 접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 용어들의 의미를 정확히 습득하여 적절한 곳에 적절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는 철학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식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을 접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 잘 적용하지는 못했다. 철학은 왠지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는 아닌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생각을 뒤집는 책이다. 철학 교양서인데 은근히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이 든다. 직장생활에 밀접한 철학 이론 활용법을 풀어내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하는지를 조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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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회사원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개인이라는 세 가지의 인격요소(융식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페르소나인데)를 구분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직장인, 특히 경영자에게 도움이 되는 철학 교양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조직생활 경험이 있는 현대인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느꼈다. 이론에 대한 깊은 고찰보다는 실생활에 적용가능한 다양한 이론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볍게 풀어 설명하는 짧은 꼭지들로 구성되어있다. 덕분에 철학을 지루하게 느끼는 독자층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쉬는 시간에 잠깐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 적절할 것 같다.


살짝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은 저자가 이론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유보하고 생각할 문제를 남긴 후 꼭지를 끝맺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 이론의 방향성이 항상 같지 않다보니 이론에 대한 입장을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통독하면서 생긴 작은 불만. 꼭지 앞에 붙어있는 철학자에 대한 짧은 설명이 왜인지 흐름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도인 걸까?). +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원서 아마존 리뷰를 잠시 읽어봤는데, 철학자 설명이 위키에 있는 걸 그대로 인용한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정말 그런가? 하고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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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세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언어학 전공자로서 눈에 익은 이론,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나와 반가웠다. 학부시절에는 외우기에만 급급해서 이걸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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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깔끔하다. 직장과 관련된 픽토그램 안에 철학자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구조인데, 제목과 어울리게 가장 중앙에 있는 만년필 촉의 중앙이 검 모양으로 되어있어 재미있다. 서점 매대에 올라와 있을 때 자주 시선을 끌었는데, 구매해서 보니 역시 전체적으로 예쁜 책이었다. 본문 디자인도 깔끔하고 가독성이 좋다. 구성도 시간 순서대로 철학가가 나열되는 방식이 아닌, 핵심 개념에 따라 이론들이 분류되어있어서 훨씬 접근하기가 쉽다.


평소에 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려울까봐 철학책과 내외하고 있는 독자들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철학 교양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이렇게 중요한 물음을 고찰할 때 강력한 해결 수단 혹은 현명한 생각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 P18

이는 회사원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개인이라는 세 가지의 인격요소(융식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페르소나인데)를 구분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 P61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세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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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피로회복 심리학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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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걱정거리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해서 실제로는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그런 순간은 매우 자주 찾아온다. 피곤함, 중압감, 실패에 대한 공포. 여러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지치면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기력이 없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행동할 용기를 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채운다. 어떤 행동을 하던 이보다 더 상황이 악화될 것 같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타들어가던 속은 결국 병이 된다.


저자 이시하라 가즈코는 심리상담사이다. '자기중심 심리학'의 제창자인 저자는, 각 챕터마다 상담했던 여러 직장인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들의 심리를 서술한다.


동료를 불편해하는 마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하는 마음, 결정하기 두려워하는 마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공감이 가지 않는 챕터가 없었다.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행동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나는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저자는 이런 마음 또한 타자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생각 논리를 수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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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기주의적인 삶을 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서 맨 앞자리에 자기자신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정도로 다사다난한 직장 속의 다양한 상황에 저자가 내리는 처방은 매우 간단하다.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두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타자중심시각에서 자기중심시각으로 생각의 시점을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정신이 강한 사내 문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타자중심적인 시각이 습득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배려와 희생은 미덕이며, 개인주의는 종종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폄하되곤 한다.


그렇기에 더욱 남의 시선을 신경쓰게 된다. 되도록이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 자신도 모르게 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행동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억지로 부탁을 들어주거나 좋은 척 회식에 동행해도 상대방은 본심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챈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끝까지 숨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가식적이라는 평을 받게끔 행동하는 것 대신 오해없이 공적으로 선을 긋고 거절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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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걸 뜻하니, 거기서 다시 한 번 자기점검을 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쉬운 설명으로 이루어진 짧은 챕터들의 연속이라 지루하지 않고 빠르게 읽힌다.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하지만 결국 요점은 하나로 귀결된다.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자신에게 솔직하라'는 것이다.


제목은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이지만 절대로 이 책은 도망을 권장하는 책은 아니다. 모든 것을 승패로만 바라보는 타자중심적인 사고를 그만둔 시점에서, '도망'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현명하게 '도망칠'것인지에 대해, 저자는 사례에 따른 행동지침을 내어준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주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그 어떤 타인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해 행동할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이정은 옮김, 홍익출판사



어느 시점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걸 뜻하니, 거기서 다시 한 번 자기점검을 할 마음을 먹으면 된다.

그렇다고 이기주의적인 삶을 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서 맨 앞자리에 자기자신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해서 실제로는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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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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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에서 본 딜런의 그 모습,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모습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장난꾸러기 아이의 기억과 씨름을 벌였다."

 

99년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쓴 에세이이다. 두 범인은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열세 명을 죽였고 스물네 명을 다치게 한 후 자살했다.

 

나에게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은 재미 한국인이 범인이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이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사건 후 범인 딜런은 악마화되었고, 딜런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수많은 추측과 비난이 쏟아졌다. 나또한 책을 읽기 전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딜런의 가정환경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저자가 회상하는 딜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자가 알고있는 아들과 아들이 저지른 짓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큰 충격과 혼란이 문장 하나하나마다 담겨있었다.

 

좋은 번역과 진솔한 문장이 무거웠다. 완벽히 소화해내기 힘든, 어려운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15년간 중˙고등학교의 교사였다.

 

'원래 부모는 자식 속 모르는 거야.' 한국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문제 행동을 저지르거나 일종의 우울 신호를 보이는 아이의 부모와 상담을 나눌 때 언제나 나오는 말이 '우리 애 그런 애 아니에요. 집에서는 안 그래요.' 였다고 한다. 엄마 왈,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기 힘들다. 물증이 있어도 믿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사춘기에 대한 편견 때문이든 사회적 시선 때문이든, 언제나 깨닫는 건 일이 벌어진 후 일 수밖에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나 무서운 말이었다.

 

"그러니 딜런이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346

 

'너도 나 속였잖아.'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속인 적은 없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 우울했다. 진단을 받지 않아 병명은 모르겠지만 책에 나온 '청소년 우울 증상'과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자기 파괴적인 욕구가 심했고 자해를 했으며 우울한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주 원인은 따돌림이었는데, 지역이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조금씩 우울에서 빠져나왔다.

 

성인이 된 내가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도 엄마는 그것을 몰랐다고 한다. '아니, 정말로 몰랐단 말이야?' 나는 어이없어했지만, 솔직히 안도했다.

 

저자는 자신이 아들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계속해서 후회한다. 그 모습에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엄마는 나의 상태를 알고 한동안 '내가 잘못 키워서 그래'라며 자책하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모습이 나는 정말로 싫었다.

 

어린 나는 내 말 때문에 상대방이 괜히 조심스런 태도로 나를 대하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했다. 애초에 가족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도 기대하지 않았다. 가족이 겪을 충격, 책임감, 실망을 견뎌내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중학생의 나는 입을 열지 않은 게 아닐까. ‘가족은 이 일과 관계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비디오 속 딜런의 모습을 보며, 어째서 딜런이 부모에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지 않았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45

 

저자는 자신의 아들이 끝없는 우울 속에 잠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저자 뿐 아니라 전문가인 심리상담가, 경찰, 교사 또한 몰랐다. 그 정도로 뇌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 뇌건강 문제는 '누구든' 겪을 수 있다. 누가 폭력적인 행동을 할 지 골라내어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어렵고 끔찍한 일이지만, 폭력 자체를 예방하는 일은 효과적인 진단과 개입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저자는 사회가 바뀌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뇌건강과 폭력에 대해 편견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을 막는 것은 언제나 편견에 기반한 시선에 따른 공포와 수치심이다. 사소한 계기로 사람을 죽음의 문턱까지 사람을 몰 수 있을 정도로 우울증에 걸린 뇌의 판단력은 흐리다. 폭력행위로 이어지는 선을 넘기 직전까지도 멈추게 할 기회는 있다. 그걸 만드는 건 적극적인 관심뿐이다.

 

청소년 시절에 정신건강이 나빴던 사람으로서 낙인이 심한 대한민국 사회에 이 책이 나온 것이 참 감사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만큼 사회가 조금씩 바뀔 것이니 말이다. 육아책으로 분류되어있기는 하지만 나는 양육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건강이 나쁜 사람은 어디든 존재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나의 가족'일 수 있다. 노력해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늦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비디오에서 본 딜런의 그 모습,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모습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장난꾸러기 아이의 기억과 씨름을 벌였다.


그러니 딜런이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 P346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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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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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본적으로 범죄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범죄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쏟아지는 범죄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영화에서까지 폭력을 접하고 싶지 않다. 시사점이 있다고 평해지는 영화들은 보지만 피해자에 이름조차 붙지 않거나 범죄를 미화하는 영화는 피한다. 범죄를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이런 성향인데도 나는 고민 없이 책을 들었다. 이유는 저자였다. 평소에도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찾아볼 정도로 이수정 박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믿습니다 이수정 박사님' 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다혜 기자가 아무튼, 스릴러의 저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분석이 이루어질지가 짐작되었다. 아무렴 그렇지, 어떤 방향으로 토크를 진행할 것인지가 서문에 명확히 적혀있었다. 피해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분석할 거라는 것.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심했다.

 

이 책은 영상 매체에서 등장하는 범죄를 분석하는 동명 팟캐스트를 엮은 것이다. 이수정 프로파일러의 냉철하고 현실적인 분석과 MC 이다혜 영화 저널리스트의 깊은 조예는 새로운 캐미스트리 자아낸다. 두 저자의 대화는 새롭고 흥미로우면서도 묵직한 시사점을 내어준다.

 

완독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팟캐스트를 같이 정주행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루는 영화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보기위해 OTT플랫폼을 휘젓고 다녔다. 완독까지 거진 한 달이 걸렸다. 책 한 권 읽는 것뿐인데 사서 고생한 걸 수도 있지만 심한 스포일러를 줄이기 위해 적정한 선에서 조절한 영화 설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뿌듯했다. 이 책은 지식도 주고 영화도 보게 하는 엄청난 책이다. 범죄 교양을 얻기 위해 책을 손에 들었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순간 영화를 찾아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런 부적절한 행위를 반복하는 교사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적 판타지를 구축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제목은 영화 프로파일이지만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도 다룬다. (넷플릭스 다큐 <팔려 가는 소녀들>은 꼭 보고 싶었는데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제일 놀란 점은 범죄가 소재의 메인이 아닌 영화 또한 다루고 있었다는 거다.

 

성별과 시대를 초월한 로맨스로 유명한 <번지 점프를 하다>를 미성년 그루밍 성폭행을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것에 무릎을 쳤다. 판타지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참신하고 새로운 픽션이라고만 받아들여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미디어는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범죄를 미화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결과 피해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프로파일'이라는 단어를 강력범죄,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와 연관짓는다. 하지만 이 책은 강력범죄만을 다루지 않는다. 권력구조, 사이비, 차별문제 등, 더욱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조명 받아야 할 소재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책에 수록되지 않은 팟캐스트 중에는 도박문제나 동물학대, 트라우마를 다루는 화도 있다. 위험은 생각보다 일상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효용적인 법안의 필요성을 이수정 박사는 반복해서 주장한다.

 

이수정 박사는 영화 속에서 나온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현행법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의제 강간 연령의 낮음이나 있으나마나한 신고 포상금 제도 등, 부족한 법안들에 분노를 느끼다가도 '현장은 틀림없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이수정 박사의 말에 위로와 응원을 받게 된다.

 

현실은 나아질 것이다. 더욱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리고 변화의 시작은 개인의 연대와 지지에 있다. 두꺼운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에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표지이다. 여성 인권, 아동 인권, 성폭력, 가부장제와 관련된 중요한 단어들이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작고 어두운 색이라 가만히 들여다봐야지만 보이는 이 단어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어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는 표지이다. (+ 보라색은 박이다. 내 사랑 박. 가산점 오백만점)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 이다혜 ·최세희 · 조영주 지음, 민음사

저는 기본적으로 범죄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 P6

그런 부적절한 행위를 반복하는 교사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적 판타지를 구축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 P297

많은 사람들이,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결과 피해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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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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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185p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을 개개인으로 돌려 당신은 차별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여성, 장애인, 퀴어,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일상에서 들려오는 차별적 언동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심코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쓰거나, 중국인들이 많다고 하는 거리를 의식적으로 피해 다녔던 과거의 행동이 떠올랐다. 반성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만 놓치는 것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은 고무줄처럼 돌아가기만 한다. 왜냐하면 보편성은 소수자들의 차별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사회구조가 만들어놓은 차별에 무의식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소수자와의 평등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일상이 어그러질까 두려워 좁아진 시야로 방어적이게 행동하기도 한다. 평등에 대한 편견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만큼 견고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치별과 함께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는 자신이 그 대상이 되었을 때 정도뿐이다.

 

 이 책은 평범한사람들이 어떻게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 사회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차별들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와 쉬운 문장에 생소한 개념도 쉽게 이해된다. 표지부터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귀여운 것만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더욱 좋았다. 도비라에 그려진 오리 일러스트가 챕터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차별과 평등에 대한 교양 입문서로 주변 사람들에게 절로 추천하게 되었다.

 

 자신은 선량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무해한 사람이니 이미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항들이라 '굳이' 이런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평범한사람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언젠간 읽을지도 모르니 소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156p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지만 퀴어가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음란한 축제(아마도 퀴어 퍼레이드를 말하는 것 같다)를 해서 불쾌하다는 남동생. 지하철에서 새빨간 생리대 시위가 위생적으로 불쾌하다고 공공연히 SNS계정에 글을 올린 지인 등,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고 존재를 내보이는 행위를 거슬려하는 사람들은 예상 외로 일상 가까이 존재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평화롭고 절차를 맞추어 얌전하고 조용하게 진행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말한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기에 무식한 방법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해롭다고 칭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정신건강과 종교적 해석과 공공질서에 말이다.

 

나는 차별이 좋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왜 하필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데.’

 

그렇게 중요시되는 공공장소공공은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모든구성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깊이 박힌 문화, 유신의 잔재, 종교적 이유, 이유가 어떠하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부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선량한 인식은 결과적으로 소수자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권리가 빼앗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호하는 질서는 단순히 기존 관습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일상 속 불편함과 불쾌함에 막혀 쉽게 간과된다.

 

악의 평범성처럼 권위에 순종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존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커다란 악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곧 암묵적으로 차별을 용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본 이미지가 있다. 키 큰 어른과 키 작은 어른과 키 작은 어린이가 담을 넘어 경기를 보는 그림이었다. 키 큰 어른은 무리 없이 경기를 볼 수 있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올라 설 상자가 필요했는데, 키 작은 어른에게는 한 개, 키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두 개가 주어졌다. 이것을 본 키 큰 어른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신에게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등, 즉 역차별을 느낀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상자 한 개가 키 큰 어른에게로 옮겨간다. 세 사람에게 각각 상자 한 개씩이 주어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만족스럽게 경기를 보지만, 어린아이는 담에 시야가 막혀 경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일종의 법칙이다. 개인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인식할 수 있는 차별의 범위는 다르다. 그렇기에 개인의 도덕적인 합의에 맞춰 평등을 바라보면 언제나 소외되는 층이 생겨버린다. 저자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구체적인 법안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아무리 불편하든, 들어야 한다. 불편하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만큼 차별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종, 민족, 성별, 장애,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출신 국가 등, 차별은 일상에 공기처럼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완벽히 안전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평등을 위해 저자는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포함된 우리가 아닌 그들의 존재를 인식해야한다. 그리고 꾸준히 연대해야한다. 평등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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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P185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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