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디오에서 본 딜런의 그 모습,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모습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장난꾸러기 아이의 기억과 씨름을 벌였다."

 

99년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쓴 에세이이다. 두 범인은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열세 명을 죽였고 스물네 명을 다치게 한 후 자살했다.

 

나에게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은 재미 한국인이 범인이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이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사건 후 범인 딜런은 악마화되었고, 딜런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수많은 추측과 비난이 쏟아졌다. 나또한 책을 읽기 전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딜런의 가정환경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저자가 회상하는 딜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자가 알고있는 아들과 아들이 저지른 짓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큰 충격과 혼란이 문장 하나하나마다 담겨있었다.

 

좋은 번역과 진솔한 문장이 무거웠다. 완벽히 소화해내기 힘든, 어려운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15년간 중˙고등학교의 교사였다.

 

'원래 부모는 자식 속 모르는 거야.' 한국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문제 행동을 저지르거나 일종의 우울 신호를 보이는 아이의 부모와 상담을 나눌 때 언제나 나오는 말이 '우리 애 그런 애 아니에요. 집에서는 안 그래요.' 였다고 한다. 엄마 왈,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기 힘들다. 물증이 있어도 믿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사춘기에 대한 편견 때문이든 사회적 시선 때문이든, 언제나 깨닫는 건 일이 벌어진 후 일 수밖에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나 무서운 말이었다.

 

"그러니 딜런이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346

 

'너도 나 속였잖아.'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속인 적은 없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 우울했다. 진단을 받지 않아 병명은 모르겠지만 책에 나온 '청소년 우울 증상'과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자기 파괴적인 욕구가 심했고 자해를 했으며 우울한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주 원인은 따돌림이었는데, 지역이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조금씩 우울에서 빠져나왔다.

 

성인이 된 내가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도 엄마는 그것을 몰랐다고 한다. '아니, 정말로 몰랐단 말이야?' 나는 어이없어했지만, 솔직히 안도했다.

 

저자는 자신이 아들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계속해서 후회한다. 그 모습에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엄마는 나의 상태를 알고 한동안 '내가 잘못 키워서 그래'라며 자책하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모습이 나는 정말로 싫었다.

 

어린 나는 내 말 때문에 상대방이 괜히 조심스런 태도로 나를 대하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했다. 애초에 가족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도 기대하지 않았다. 가족이 겪을 충격, 책임감, 실망을 견뎌내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중학생의 나는 입을 열지 않은 게 아닐까. ‘가족은 이 일과 관계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비디오 속 딜런의 모습을 보며, 어째서 딜런이 부모에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지 않았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45

 

저자는 자신의 아들이 끝없는 우울 속에 잠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저자 뿐 아니라 전문가인 심리상담가, 경찰, 교사 또한 몰랐다. 그 정도로 뇌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 뇌건강 문제는 '누구든' 겪을 수 있다. 누가 폭력적인 행동을 할 지 골라내어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어렵고 끔찍한 일이지만, 폭력 자체를 예방하는 일은 효과적인 진단과 개입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저자는 사회가 바뀌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뇌건강과 폭력에 대해 편견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을 막는 것은 언제나 편견에 기반한 시선에 따른 공포와 수치심이다. 사소한 계기로 사람을 죽음의 문턱까지 사람을 몰 수 있을 정도로 우울증에 걸린 뇌의 판단력은 흐리다. 폭력행위로 이어지는 선을 넘기 직전까지도 멈추게 할 기회는 있다. 그걸 만드는 건 적극적인 관심뿐이다.

 

청소년 시절에 정신건강이 나빴던 사람으로서 낙인이 심한 대한민국 사회에 이 책이 나온 것이 참 감사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만큼 사회가 조금씩 바뀔 것이니 말이다. 육아책으로 분류되어있기는 하지만 나는 양육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건강이 나쁜 사람은 어디든 존재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나의 가족'일 수 있다. 노력해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늦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비디오에서 본 딜런의 그 모습,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모습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장난꾸러기 아이의 기억과 씨름을 벌였다.


그러니 딜런이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 P346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P4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