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낭만적인 고백인지

삶의 한가운데 p.54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당신은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당신은 내 본질중 굳어 있는 부분을 용해시켰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좋은 일을베풀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은 끝나 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을 찾으려 나는 거리를 헤맵니다.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부디, 부디, 내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나를 찾아주시든지, 아니면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소식을 주십시오. 나의 삶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의 끝 - 로베르트 발저 산문.단편선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임홍배 옮김 / 문학판 / 2017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초반에 현학적인 부분보다는 후반의 현실적인 부분이 더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르머 p.371
- 세상의 끝 -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발생하는 입장차이는 너무 선명하다. 슬며시 웃음짓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내가 부서장이라면 어떻게든 사무실 분위기를 깔금하게 정리할 텐데 말이야." 내가 부서장이라면! 빈츠는 유난히 전체 부서의 장이 되고 싶어 한다. 그의 예민한 후각으로 판단하건대 경리부서는 기강이 해이하고 염치도없다. 그는 날마다 두툼한 2절판 서류에 팔꿈치를 괴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개혁을 꿈꾸면서 자기가 개혁의 엄격한 집행자가 되길 꿈꾼다. 아무렴, 부하직원이란 그런 거다.

"게르머 씨, 더 정확하게 계산해야지요." 어음부서의 과장뤼에크가 채근한다. 그는 나이가 지긋하고, 조용하고, 안경을 끼고, 깡마르고, 단조롭고, 머리가 세고, 수염을 기르고, 얼굴이 창백하고, 목소리가 애절하고도 폐부를 찌르며, 부하직원한테 상사 티를 내는 사람이다. 게르머가 대꾸한다. "뤼에크 씨,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알았어? 꺼져!" 이건 도저히 부하직원이 할 소리가 아니다. 매일 밥벌이를 해야 하는사람이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직책에서 쫓겨날까봐 노심 초사하는 사람이 할 소리도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어쩌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전근무
- 세상의 끝 p. 348 -
일하기 싫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눈물나게 생생한 묘사

여덟시 반이다. 헬블링은 회중시계를 꺼내어 회중시계의시계판을 커다란 벽시계의 시계판과 비교해본다. 그는 한숨을 내쉰다. 이제 겨우 모래알처럼 찔끔찔끔 10분이 지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산더미처럼 무지막지하다. 그는 이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시도해보려고 애쓴다. 그의 시도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하느라 시간이 조금 흘렀다. 고맙게도 5분이 더 지났다. 헬블링은 그렇게 지나간 몇 분을 좋아한다. 반면에 앞으로 다가올 몇 분,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몇 분은 증오한 다. 그는 그렇게 게으른 몇 분을 매번 때려주고 싶다. 그는 머릿속으로 시계의 분침을 죽도록 두들겨 팬다. 하지만 감히 분침을 바로 보지는 못한다. 분침을 보면 기절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의 끝
올가의 이야기 p.294

나는 모든 것을 망각했다. 나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느데 무엇인들 망각하지 않겠는가? 겉치레를 중시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마음의 평정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끝장났다. 하루아침에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자 기쁨도 다시 찾아왔다. 한 소박한 남자가 나와 평생의 인연을 맺고 싶어 했다. 그는 정직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병마가 그를 낚아채고 말았다.
나는 그의 무덤을 찾아갔다. 태양이 도시의 지붕과 성탑들,
나무의 우듬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 멀리 내 앞에 놓인 삶을 즐겁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 인생인데,
달리 어쩌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