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머 p.371
- 세상의 끝 -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발생하는 입장차이는 너무 선명하다. 슬며시 웃음짓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내가 부서장이라면 어떻게든 사무실 분위기를 깔금하게 정리할 텐데 말이야." 내가 부서장이라면! 빈츠는 유난히 전체 부서의 장이 되고 싶어 한다. 그의 예민한 후각으로 판단하건대 경리부서는 기강이 해이하고 염치도없다. 그는 날마다 두툼한 2절판 서류에 팔꿈치를 괴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개혁을 꿈꾸면서 자기가 개혁의 엄격한 집행자가 되길 꿈꾼다. 아무렴, 부하직원이란 그런 거다.
"게르머 씨, 더 정확하게 계산해야지요." 어음부서의 과장뤼에크가 채근한다. 그는 나이가 지긋하고, 조용하고, 안경을 끼고, 깡마르고, 단조롭고, 머리가 세고, 수염을 기르고, 얼굴이 창백하고, 목소리가 애절하고도 폐부를 찌르며, 부하직원한테 상사 티를 내는 사람이다. 게르머가 대꾸한다. "뤼에크 씨,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알았어? 꺼져!" 이건 도저히 부하직원이 할 소리가 아니다. 매일 밥벌이를 해야 하는사람이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직책에서 쫓겨날까봐 노심 초사하는 사람이 할 소리도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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