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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합본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상수 옮김, 배미정 그림 / 신세계북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읽었을 때 고양이가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들이 너무 재밌었던게 기억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작가의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부분이 여러군데 있었다. 미래에는 죽음보다는 자살이 일반화될 것이라는 것과 결혼의 무용성 및 비혼의 가능성 등 지금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들을 100년도 더 전에 다뤘었다니, 새삼 감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밌었지만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 한없는 여유로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취준 전에는 번듯한 직장을 가진 주인의 여유로움이 부러웠었는데, 취직 후에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유가 부러웠다.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엄청난 고집이 있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람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제일 잘하고 자신의 신변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그저 방관하는 사람이다. 우여곡절로 주인의 집에 살게 된 고양이가 이런 주인을 묘사하고 풍자하는 이유가 있을만큼 세상을 그냥 대충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주인의 생각과 행동이 살아가기에 참 편하다고 생각되는 것일까. 따지고보면 주인은 본인이 멍청하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딱히 피해를 준 일이 없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뿐이다.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며, 다른 사람들을 흉보며, 주인의식으로 일하기보다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메이테이같이 미꾸라지처럼 농담이나 하는 친구와 간게츠군같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살아가는 친구들이 주변 일상이나 세상사를 논하는 내용들은 우리가 흔히 지식인들이 대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들과 완전히 상반된다.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도로 이런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것 같은데, 난 이들이 그렇게나 부럽다.
주인, 메이테이, 간게츠군 등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피하고 싶은 사람들뿐이다. 내가 주변인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릴없이 이상한 농담이나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이라면 세상 사는게 참 편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던 다 흘려듣고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여유로 인생을 보낸다는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식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명백히 자기 자신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개개인의 인생을 그러한 본질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다. 직업을 그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로 생각하며 자신의 여유시간을 풍요롭게 즐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직업적으로 목표를 설계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개인시간까지 반납하며 일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은 학교 선생이지만 고양이의 말에 따르면 멍청하여 학생이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다. 간게츠군은 학교에서 박사를 받기 위해 밤낮없이 유리알을 갈지만 포기하고 만다.(유리알을 갈아서 박사가 된다니? 실용적이지 못하고 이상한 주제로 연구하면서도 자신은 연구자라는 자부심이 있는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들은 직업적으로 실패를 했을 뿐 자신의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어쩌다 싸우더라도 자기들까지 모여서 욕 한번 진탕 하고 우스개소리를 해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면 자기 몫까지 떠넘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미꾸라지처럼 자신의 일인데도 모르는척 책임을 회피하고, 칭찬발림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타인을 조종하려 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위의 등장인물들이 오히려 더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자신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타인에게 자신의 책임을 넘겨버리는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는 지금, 나에게는 오히려 주인과 메이테이, 간게츠 군 같이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신경쓰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조금은 이기적일지라도 나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그들의 얼굴에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기꺼이 이기적으로 살겠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지 않겠는가.
가끔은 이들처럼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