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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의 초입에서는 찰리의 맞춤법때문에 도저히 글을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단지 그 이유로 그가 빨리 똑똑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를 알아갈 수록 어떤 선택과 결과가 따르든 응원을 하게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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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단어 자체를 없애버리곤 한다.
기존의 찰리는 외로움, 고독, 자기혐오라는 감정 자체가 없는 세상 속에 살고있는 듯 보였다. (물론 인간이기에 두려움, 고통 등은 느꼈지만 모두 일시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지 고독처럼 지속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
똑똑해진 찰리는 지식의 기쁨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제3자로써 돌아보며 혐오감과 외로움을 얻게 됐다.
이것이 찰리가 따먹은 선악과가 아닐까 한다. ‘실낙원‘을 다시 읽지 못하게 된 찰리가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낙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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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한 후의 내가 소설 첫페이지로 돌아간다면 찰리가 수술을 받지 않도록 권하고싶다. 사실 그가 원한 것은 긁을 잘 읽는 것이 아니라 긁을 잘 읽음에 따르는 사람들의 애정어린 관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엾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주변인이라면 혹은 찰리 자신이라면 기꺼이 관심과 사랑을 주고 책임을 질것이냐, 그건 아니기때문에 기만적인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