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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빠진 아이 ㅣ 마음별 그림책 11
미겔 탕코 지음, 김세실 옮김 / 나는별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부터 학부모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그림책 <수학에 빠진 아이>.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님이라면 ‘아니! 수학에 빠진 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 싫다는 수학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지?’ 하며 책을 집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빠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생긴다는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수학에 빠졌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분명 TV속 영재라고 소개되는 아이일 테니까요.
책 표지를 보면 빨간 곱슬머리 아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비행기는 궤적을 남기며 어디론가 날고 있고 그 종이비행기를 아이와 고양이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지요. 아이 주변엔 뭔가 수학과 관련된 소품들이 펼쳐져있습니다. 삼각자, 각도기, 종이에 적힌 수학 공식들과 그래프. 제목에도 수학 코드가 숨어있는데, 참·거짓 명제를 나타내듯 X와 O가 수학이란 글자에 빨간 색으로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판권 정보가 있는 페이지에서 찾은 원제목은 <Count on me>(해석하자면 나를 믿어).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의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원제를 초월한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뒷면 표지 전체를 펼치면 하나의 풍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같은 실내공간에 빨간 곱슬머리를 한 두 아이가 있지요. 치마를 입은 아이는 신나게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고, 또 한명의 아이는 자기 몸보다 더 큰 금관악기(튜바)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서로 등지고 서 있으면서 서로를 신경 쓰거나 눈치 보지 않고 본인이 빠져 몰두하고 있는 두 아이. 뭔가 느낌이 옵니다.
7,80년대 벽지무늬마냥 같은 모양이 끝없이 반복되는 프랙털 면지가 보이고, 속표지에는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사방치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속표지를 넘기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빨간 머리 소녀의 가족은 저마다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오빠까지도 말이지요. 주인공인 나도 자신이 푹 빠질 만큼 좋아하는 걸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찾아냅니다.

‘기적의 연산’을 통해 빠르고 실수 없는 셈을 하며 수학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생활 주변에 살아 있는 수학을 발견하는 데에 빠집니다. 거리에서, 놀이터에서, 호수나 거실 창밖 풍경에서 아이는 날마다 수학을 찾고 수학을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페이지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벼룩시장에서 보인 빨간 머리 소녀 가족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세상을 보는 방법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고 말하고 있고, 그림 속 아빠와 엄마, 오빠, 그리고 빨간 머리 소녀 모두 자신이 빠진 분야에 몰입하는 모습입니다. 서로가 빠진 분야에 대해 우위를 정한다던가, 비교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빠져 들고 있지요.

부록처럼 보이는 <나의 수학 노트>는 학부모 입장에서 무척 매력적입니다. 어려운 수학 개념들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거든요. 작가 미겔 탕코는 <나의 수학 노트>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의 열정을 따라서 꿈의 별에 다다른 모든 친구에게” 라며 이 책을 마무리 합니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지요. 한 가지 일에 열정적으로 빠져들어야 그 분야에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습니다. 하나에 무조건 빠져들 수 있는 힘, 그 열정이 한없이 간절한 2020년 1월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수학을 좋아하는 내 열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하지만 세상을 보는 방법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니까. 수학도 그중 하나야. 넌 무엇에 푹 빠져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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