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그림책 - 제3회 보림창작스튜디오 수상작, 2023 북스타트 선정도서 보림 창작 그림책
이은경 지음 / 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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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0G20회의 폐막 연설 후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은 정적만 흘렀죠. 침묵한 우리 기자들을 보며 국제적 망신이라 비난했지만 질의응답 시간에 흐르는 정적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입니다. '정답은 하나'라고 교육받은 우리에게 질문은 무의미 했고,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고 눈총을 받거나 창피당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렇게 질문이 불편한 우리가 2020년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을 만나게 됩니다

 

 

 

'작가주의 그림책 출간'을 목표로 한 '보림그림책 창작 스튜디오'의 제3회 수상작인 <질문의 그림책>"상상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라는 공모전의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기존 그림책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독보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입니다.

     

'그림의 마술사'라 불리는 에셔의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를 보는 것처럼 무한의 늪에 빠지게 하는 타이틀 글자 나열부터, 띠지에 그려진 그림까지-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질문의 그림책>이란 제목답게 자연스레 질문을 떠올리게 만들죠.

    

 

 

표지를 감싼 띠지 그림에는 잔잔한 물결 속에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배경 위로 새들, 아니 새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날고 있습니다. 껍질이 반쯤 벗겨진 과일인것 같은데 아주 평온히 날고 있습니다. 표지를 감싼 띠지를 벗기면 그 과일이 무화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뒷 표지는 친절하게 접시 위에 무화과와 새를 함께 담아 놓았습니다. 작가의 친절함이 엿보이죠.

    

 

 

작가는 몸속에 꽃을 품는 무화과를 하늘을 나는 새로 변신시켜 그려놓았고, 우리는 머릿속에 수십 가지 질문을 품고 책을 펼치게 됩니다. 첫 페이지부터 '질문은 어디에서 오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수많은 질문은 어디로 사라질까?'로 마무리 되며 그 사이에 엉뚱하며, 시적인 질문들을 작가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채워놓았습니다.

 

판권면 상단에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통해 쉴 새 없이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자기 안의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라는 작가의 말이 남겨져 있습니다. 칠레의 민중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죠. 죽는 순간까지 '철들지 않는 소년'이었던 그는 평생 대자연에, 육체적 사랑에, 고통 받는 이웃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꿈에 매혹돼 그 감상을 시로 옮겼습니다. 이은경 작가는 아마도 그의 초현실적인 시들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네루다의 시어처럼 이은정 작가의 그림에도 생동감과 열대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림 중간 중간 칠레의 전통모자 츄바야를 쓴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것이나 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경을 떠올리게 하는 바다 풍경 등도 네루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은정 작가의 전작들인 <악어가 쿵, 작은 새가 포르르><아기만 좋아해>와 비교해 보면, 이번 작품은 이국적이며, 그림의 깊이가 더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어요.

    

 

 

팝콘이 꽃망울로 표현되고, 개구리와 빨간 딸기의 경계는 점차 사라집니다. 수박이 쪼개진 모습은 화산 폭발을 연상시키고, 줄 맞춰 늘어선 가로수에는 아이스크림도 언뜻 보입니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기묘한 요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하고 있어요. 평범한 사물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으며 미술관에 걸려있을 법한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시적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질문의 그림책>.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며 정답 없는 질문들을 마음껏 펼치고, 시인처럼 노래할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세상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길 함께 바라봅니다.

질문은 어디에서 오지?

수많은 질문은 어디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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