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상회 노란상상 그림책 86
한라경 지음, 김유진 그림 / 노란상상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상회>는 노란상상에서 출간된 ‘노란상상 그림책’ 86번째 책입니다. ‘노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요, 노란상상 출판사는 봄날의 개나리, 샛노란 병아리와 같이 시작과 성장을 상징하는 ‘노랑’에, 아이들의 '상상'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주제를 책 속에 담아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책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그림책 <오늘 상회>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은 ‘오늘’의 의미와 가치를 그림책 속에 녹여냈어요.

‘아침마다 저를 오늘로 이끄는 작은 존재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한라경 작가의 글과 ‘한 점 한 점, 오늘이라는 붓질이 모여 우리 삶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작업했다’는 김유진 작가의 그림으로 <오늘 상회>가 완성됐습니다.



아침 해가 아스라이 비춰질 무렵, 오늘 상회에 전등이 켜지고 그 불빛의 색을 담은 <오늘 상회>라는 제목이 책 표지를 밝힙니다.

표지를 넘기면 앞면지부터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파란빛이 감도는 방에 바람이 불어 커튼은 흩날리고 있고, 창가에는 뚜껑이 닫힌 병 하나가 보입니다. 핑크빛 액체가 담겨져 있고, 창밖으로는 해가 뜰 때의 하늘빛이 펼쳐지고 있어요. 어떠한 글도 쓰여 있지 않지만 앞면지는 마지막 장면과 비교해서 보시고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닫힌 병과 열린 병, 가득 찼던 병과 비워진 병, 빈 병 속에 꽂혀져 있는 활짝 핀 꽃 한송이... 저는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게 되더군요.



속표지에는 창가에 병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오늘 상회에 불이 켜지며 시작됩니다. 어스름한 새벽, ‘오늘’이라는 병을 실은 트럭이 들어오면 주인은 오늘 상회의 문을 엽니다. 주인은 손님들이 오기 전에 매일 작은 병을 반짝이게 닦고 병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한대요.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없는 이름도 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름도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각양각색의 병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하루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어떤 병은 아주 작고 어떤 병은 아주 크고 깁니다. 화려하게 생긴 병도 있고, 단순하게 생긴 병도 있어요. 하루 24시간이라는 하루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하루를 채우는 방식은 각양각색이잖아요. 오늘을 의미 있고 알차게 보내는 이들도 있고, 쳇바퀴 돌리듯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하는 이들도 있고요. 작가는 각기 다른 병들을 통해 각기 다른 우리들의 오늘를 그려낸것 같습니다.

오늘 상회 주인과 함께 고양이의 뒷모습도 보이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이 목숨이 9개라며 신격화 할 정도로 좋아했다는 고양이가 오늘 상회에 있는게 이 가게의 신비롭고 묘한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죠?



해가 뜨자 '오늘 상회'에 손님들이 밀려옵니다. 바쁜 현대인의 대명사인 회사원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뒤이어 노인과 아저씨, 소녀와 소년들이 오늘 상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끄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도 오늘 상회를 찾습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서 더 미스터리하고 신비롭게 다가오는 오늘 상회 주인은 할머니에게 오늘을 건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할머니가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부터, 소녀가 됐을 때,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할머니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줍니다. 피할 수 없는 일들도 할머니의 오늘에 드리웁니다. 비어버린 병에 꽃힌 하얀 꽃, 떨어지는 꽃잎... 할머니 인생의 굴곡을 글과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할머니의 인생은 계절로도 느끼실 수 있어요. 꽃이 피는 봄, 담쟁이 덩굴이 싱그럽게 벽을 감싸는 여름, 낙엽 지는 가을을 지나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할머니의 삶이 사계절로 나열되죠.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나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책등 제목 위에도 호랑나비가 있어요!)

백발이 된 할머니 곁을 맴도는 호랑나비. 무기력해진 할머니에게 지나가던 아이의 인사, 오랜 친구의 연락 등 작은 관심이 찾아들고 할머니는 다시 오늘을 맞이합니다. 그때 할머니는 나비를 쫓아 오늘 상회로 발걸음을 내딛어요.

나비는 여러 문화권에서 환생한 영혼으로 여겨지고 즐거움과 행복을 의미하는데, 우리 선조들 역시 책 속에 등장한 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을 점쳤다고 하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아름답지만 얇은 날개를 가진 약한 나비가 꼭 우리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는듯 해요. 지구라는 행성 위에 존재하는 우리 인간들은 한없이 약하고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한 번의 날갯짓으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나비효과처럼 하루를 대하는 우리 일상의 태도가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고, 세계의 미래도 변화시킬 수도 있지요.


오늘 상회의 주인이 할머니에게 오늘을 내밀며 전한 이 말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내고 싶었던 말이겠지요?

여전히 소중한 '오늘'이 여러분 앞에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졌습니다. 그러니 책 속의 할머니처럼,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오늘 피어난 꽃과 오늘 더 자란 풀 향기를 맡으며 여러분들도 새로운 '오늘'을 느끼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카페 제이그림책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노란상상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오늘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가지만 소중하게 보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답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오늘은 금방 어제가 됐고 소중하게 보내지 않은 오늘은 금방 잊히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소중한 오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9:47 -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2022 천보추이아동문학상 본선, 2021 한국출판문화상 본선 글로연 그림책 24
이기훈 지음 / 글로연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작이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뼈를 갈아넣었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인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과와 악당 바람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사토 메구미 지음, 황진희 옮김 / 올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과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죠. 백설 공주가 좋아한 사과는 미녀를 위한 과일로 꼽기도 하고,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사과’로 불리며 건강을 지키는 대명사로 떠올립니다. 세상을 바꾼 사과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호기심과 욕망, 그리고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과 사과라던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뉴턴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 로고도 한입 베어 문 사과인데,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킨 사과로 꼽기도 하죠.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과일 ‘사과’가 그림책 속 캐릭터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사토 메구미의 <사과와 악당 바람>에서 말입니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사과모양 가방을 메고 맛있는 숲에 등장하는 모습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망고스틴 꽃과 방울토마토 꽃, 애플망고 새와 오이 나비가 맛있는 숲을 채우고 있네요.

잘 익은 사과의 속 살색 같은 앞면지를 넘기면 이 책의 주인공들이 속표지에 등장해요. 노랑사과, 빨강사과, 그리고 초록사과입니다. 사과 삼총사는 맛있는 숲에 놀러왔는데요, 맛있는 숲 속 과일 채소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던 사과 삼총사는 친구들에게 기마전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빨강 사과의 가방 속에는 기마전을 위한 색색깔의 머리띠가 들어 있었어요. 뭔가 ‘도장깨기’ 느낌이 들죠?? 자신만만한 초록 사과, 여유 가득한 노랑 사과, 승리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빨강 사과의 표정만 봐도 이미 결과는 보이는 듯합니다.


크기가 같은 사과 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삼총사의 합은 잘 맞아보이죠. 이 부분을 통해 아이들은 '협동과 균형'에 대해 배울 수 있어요.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크기가 비슷해야 한다.’ 같은 것들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팀을 이기며 사과팀은 무패신화를 써내려갑니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 되듯 독자들도 사과팀을 응원하고 그들의 행보를 쫓아가게 되죠.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이어지는 승리로 너무나 자신만만해 하던 사과팀 앞에 ‘이상한 갈색 바람’이 나타납니다. 촉이 좋은 레몬은 갈색 바람을 수상하게 여기게 되는데요, 사과들을 쫓아온 갈색바람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만만하던 사과 삼총사는 무사할까요? 과일채소 히어로즈는 ‘맛있는 숲’의 평화를 어떻게 지켜낼까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채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누릴 수 있는 시리즈 그림책의 정석!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사과와 악당 바람>.


전작과 동일하게 ‘맛있는 숲’을 배경으로 ‘과일 채소 히어로즈’들의 정의감 넘치는 활약은 흥미진진하고, 매 시리즈마다 바뀌는 주인공 캐릭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입해서 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뽐낼 만한 실력을 가진 사과들도 약점은 있었고, 위기의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늘 이길 것 같은 사과팀도 패배를 경험해요. 그 이유는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고 고심한 다른 과일 채소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어요.


우리 주변 어디선가 마주했을 법한 과일 채소 캐릭터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는데, 번역자 황진희 선생님께서 저자 사토 메구미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그림책 속 과일 주인공들의 성격은 어떻게 설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과일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주인공들의 성격!! 저도 정말 궁금했었는데, 우리 아이와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이들의 성격을 캐릭터화해서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고 답하셨네요.

전작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깨알 등장과 케미 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은 배울 수 있어요. 아주 자세하게 적고 싶지만 ‘갈색 바람’ 존재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렇게 살짝 언급만 해드립니다. 책을 구입하시면 함께 동봉되어 오는 “독후활동 자료”로 아이와 집에서 재미난 실험을 해보실 수 있어요. 물론 그 실험 역시 '갈색 바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과와 악당 바람>을 읽고 나서 아이와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부모님들께는 큰 도움이 될거예요.




아이와 함께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를 읽으며 나는 어떤 캐릭터와 닮았나, 내 아이와 내 주변 사람들의 캐릭터들을 그림책 속에서 찾아보세요. 아이와 더 많이 대화하고, 아이가 그림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테니까요.


*본 서평글은 올리출판사 서포터즈 '올리올리 2기'로 선저오디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먼드 브릭스 일러스트레이터 3
니콜레트 존스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 작가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북극곰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를 알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전작에서 주디스 커, 딕 브루너 같은 세상을 떠난 작가들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여전히 활동 중인 살아있는 전설 '레이먼드 브릭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과 작품, 일러스트 107컷으로 빼곡히 채워진 <레이먼드 브릭스>는 작가이자 비평가이며, 어린이책 편집장을 맡고 있는 니콜레트 존스(Nicolette Jones)가 글을 썼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와 공동 작업을 통해 2003년 그의 작품선집 <Blooming Books>를 출간한 전적이 있는 니콜레트 존스는 레이먼드 브릭스가 창조한 작품의 형식적 실험과 발전을 설명하고 그의 영향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그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의 스타일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 책을 통헤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레이먼드 브릭스>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정치적 그림부터 어린이 고전까지 레이먼드 브릭스의 60여 년 동안의 작품 활동과 80년이 넘는 그의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감정과 기법으로 작품을 탄생시켰는지 그 뒷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소중한 책이죠.


<곰돌이 푸 이야기>를 쓴 앨런 알렉산더 밀른, <제비 호와 아마존 호>의 작가인 아서 랜섬과 같은 날 태어나 어린이 책 작가의 운명을 이미 점지 받은(!) 레이먼드 브릭스는 1934년 1월 18일에 태어났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 부모의 연애사는 그의 작품 <에델과 어니스트>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가정부 에델 보이어가 벨그라비아의 창문에서 먼지를 털 때,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 브릭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에델에게 손을 흔들며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레이몬드의 가족은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레이먼드 역시 ‘책 선물 받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밝인 바 있는데요, 그가 연재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예술에 빠져들었고, 신문 만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열세 살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가 예술학교에 진학해서 겪은 혼돈기부터 첫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고, 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아이가 한동안 끼고 살았던 그림책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의 탄생울 담은 부분과 <눈사람 아저씨>에 대한 챕터였어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1973년작)는 그가 이전 작품들을 통해 갈고 닦은 다양한 기법들을을 녹여낸 작품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의 일상을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이어지는 만화 기법에 담고 있는데요, 왜 레이먼드 브릭스가 이런 형식을 그림책에 가져왔는지 너무나 궁금했는데 그 답이 이 책 속에 있었어요.

바로 '전통적인 그림책에서 통용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한 쪽에 담고 싶어서' 였다고 해요. 하고 싶은 말과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았던 레이먼드 브릭스는 만화 기법으로 원없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과 이야기를 풀어냈던거죠. 그때까지 영국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연재만화 형식이 도입된 적은 없었다고 하니, 당시에 이 시도는 혁명적이었고 덕분에 레이먼드 브릭스는 영국에서 연재만화와 그래픽 노블의 위상을 높인 장본인으로 꼽힌다고 하네요.

레이먼드 브릭스의 <산타 할아버지> 속에는 또 하나의 편견을 깨는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산타 할아버지의 캐릭터입니다. 그동안의 산타 할아버지가 푸근하고 인자한 이미지였다면, 레이먼드 브릭스가 탄생시킨 산타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산타 할아버지였어요. 그가 창조한 산타 할아버지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아버지 어니스트를 바탕으로 했는데, 추운 날씨에도 선물을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 우유 배달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래요. 레이먼드 브릭스는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의 산타 할아버지를 그려 냈고 소소한 배경들 역시도 이 설정에서 출발했답니다. 레이먼드의 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 사이의 연관성은 그림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유 배달차 번호판에 적힌 'ERB 1900'과 '눈속에 세워진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책 <레이먼드 브릭스>에서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레이어를 나누어 자르고 붙여 작업할 수 있지만, 레이먼드 브릭스는 작은 벽돌 하나, 벽지 문양까지도 신경 써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은 그림에도 질감을 살렸고 정성을 드긴거죠. 가족을 잃은 슬픔도 그림책으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어린이 그림책의 경계를 확장한 노력의 결실이며, 예술가로서의 족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둥그스름하고 은은한 그림은 우리에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교차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레이먼드 브릭스는 결코 미화하지 않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투덜대며 화장실에 가고, 눈사람이 햇볕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았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런 솔직함 때문이겠지요.

정치적 그림책부터 어린이 고전까지 레이번드 브릭스의 60 여년 작품활동이 총 망라된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레이먼드 브릭스>. 이 책 한 권이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일러스트레이터 '레이먼드 브릭스'를 이해하는데 충분할겁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 카페 '책이 있는 마을, 북촌'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마가 꿀꺽!
정현진 지음 / 올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다섯 가지 감정이 공존합니다.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라는 감정이죠. 영화 속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11살이 소녀 라일리는 '이사'라는 환경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라일리가 늘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기쁨이는 라일리가 새로 상황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낯선 감정을 위로해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일리를 치유한건 슬픔이었어요.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마주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나를 치유하는 길이었던 거죠.


정현진 작가가 쓰고 그리고 올리출판사에서 출간된 그림책 <히마가 꿀꺽!> 역시 그런 '감정 마주보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마를 닮은 ‘히마’를 책표지와 앞면지에서 마주하고 나면, 속표지 옆에 '작가의 말'이 남겨져 있습니다.


히영이에게 히마가 찾아오게 된 이유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전학’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뀐 학교와 교실은 낯설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도 아직은 어색합니다. 전학 온 첫 날, 히영이를 향한 반 아이들의 낯선 시선과 소곤거림들은 히영이 머리 위에 까만 먹구름을 띄우게 합니다.



처음에는 주먹만 했던 먹구름은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그 먹구름이 ‘히마’를 부르게 되죠. 시커먼 먹구름이 히영이 머리 위를 완전히 덮어버린 날, 모두가 미워져버린 그날! 히마가 히영이를 찾아옵니다. 히영이가 만든 먹구름 속에서 탄생한 희마는 자꾸만 희영이를 쫓아다닙니다. 피하고 도망 다녀도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히마. 과연 히영이는 히마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히마가 사라질까요?


히마’라는 존재는 영이의 음 속 불안함이 불러낸 것이었지만, 어느덧 히영이의 일상을 점령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히영이까지 꿀꺽 삼킵니다. 히영이가 희마에게 잠식당하는 과정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위축된 사람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히마에게 꿀꺽 삼켜졌지만 히영이는 히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런데 그 노력은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같은 반 친구들의 부름과 관심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히영이 옆에서 "너도 같이 놀래?", “아까부터 불렀는데...” 라고 말을 건네는 친구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감정에 눈과 귀를 닫아버린 사람들이 놓치는 주변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말하는거겠죠. 그러고보면 말풍선 마저 '하트'모양으로 보입니다.




감정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은 짐을 계속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중에서) 해소되지 못한 감정 덩어리들이 히마가 되어 우리를 꿀꺽 삼키기 전에 솔직하게 마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안의 다양한 감정은 모두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으니까요.

책 뒤표지 히마 모양 속 QR 코드를 찍으면, 책을 읽고 바로 활용가능한 독후활동 자료와 수업 자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히마가 꿀꺽!> 으로 그림책도 보고 내 감정도 읽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길 바랍니다.



* 본 서평글은 올리출판사 서포터즈 '올리올리 2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