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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브릭스 ㅣ 일러스트레이터 3
니콜레트 존스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9월
평점 :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 작가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북극곰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를 알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전작에서 주디스 커, 딕 브루너 같은 세상을 떠난 작가들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여전히 활동 중인 살아있는 전설 '레이먼드 브릭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과 작품, 일러스트 107컷으로 빼곡히 채워진 <레이먼드 브릭스>는 작가이자 비평가이며, 어린이책 편집장을 맡고 있는 니콜레트 존스(Nicolette Jones)가 글을 썼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와 공동 작업을 통해 2003년 그의 작품선집 <Blooming Books>를 출간한 전적이 있는 니콜레트 존스는 레이먼드 브릭스가 창조한 작품의 형식적 실험과 발전을 설명하고 그의 영향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그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의 스타일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 책을 통헤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레이먼드 브릭스>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정치적 그림부터 어린이 고전까지 레이먼드 브릭스의 60여 년 동안의 작품 활동과 80년이 넘는 그의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감정과 기법으로 작품을 탄생시켰는지 그 뒷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소중한 책이죠.

<곰돌이 푸 이야기>를 쓴 앨런 알렉산더 밀른, <제비 호와 아마존 호>의 작가인 아서 랜섬과 같은 날 태어나 어린이 책 작가의 운명을 이미 점지 받은(!) 레이먼드 브릭스는 1934년 1월 18일에 태어났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 부모의 연애사는 그의 작품 <에델과 어니스트>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가정부 에델 보이어가 벨그라비아의 창문에서 먼지를 털 때,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 브릭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에델에게 손을 흔들며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레이몬드의 가족은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레이먼드 역시 ‘책 선물 받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밝인 바 있는데요, 그가 연재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예술에 빠져들었고, 신문 만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열세 살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가 예술학교에 진학해서 겪은 혼돈기부터 첫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고, 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아이가 한동안 끼고 살았던 그림책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의 탄생울 담은 부분과 <눈사람 아저씨>에 대한 챕터였어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1973년작)는 그가 이전 작품들을 통해 갈고 닦은 다양한 기법들을을 녹여낸 작품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의 일상을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이어지는 만화 기법에 담고 있는데요, 왜 레이먼드 브릭스가 이런 형식을 그림책에 가져왔는지 너무나 궁금했는데 그 답이 이 책 속에 있었어요.
바로 '전통적인 그림책에서 통용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한 쪽에 담고 싶어서' 였다고 해요. 하고 싶은 말과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았던 레이먼드 브릭스는 만화 기법으로 원없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과 이야기를 풀어냈던거죠. 그때까지 영국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연재만화 형식이 도입된 적은 없었다고 하니, 당시에 이 시도는 혁명적이었고 덕분에 레이먼드 브릭스는 영국에서 연재만화와 그래픽 노블의 위상을 높인 장본인으로 꼽힌다고 하네요.
레이먼드 브릭스의 <산타 할아버지> 속에는 또 하나의 편견을 깨는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산타 할아버지의 캐릭터입니다. 그동안의 산타 할아버지가 푸근하고 인자한 이미지였다면, 레이먼드 브릭스가 탄생시킨 산타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산타 할아버지였어요. 그가 창조한 산타 할아버지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아버지 어니스트를 바탕으로 했는데, 추운 날씨에도 선물을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 우유 배달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래요. 레이먼드 브릭스는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의 산타 할아버지를 그려 냈고 소소한 배경들 역시도 이 설정에서 출발했답니다. 레이먼드의 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 사이의 연관성은 그림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유 배달차 번호판에 적힌 'ERB 1900'과 '눈속에 세워진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책 <레이먼드 브릭스>에서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레이어를 나누어 자르고 붙여 작업할 수 있지만, 레이먼드 브릭스는 작은 벽돌 하나, 벽지 문양까지도 신경 써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은 그림에도 질감을 살렸고 정성을 드긴거죠. 가족을 잃은 슬픔도 그림책으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어린이 그림책의 경계를 확장한 노력의 결실이며, 예술가로서의 족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둥그스름하고 은은한 그림은 우리에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교차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레이먼드 브릭스는 결코 미화하지 않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투덜대며 화장실에 가고, 눈사람이 햇볕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았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런 솔직함 때문이겠지요.
정치적 그림책부터 어린이 고전까지 레이번드 브릭스의 60 여년 작품활동이 총 망라된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레이먼드 브릭스>. 이 책 한 권이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일러스트레이터 '레이먼드 브릭스'를 이해하는데 충분할겁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 카페 '책이 있는 마을, 북촌'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