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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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제목에 들어간 단어들이 꽤나 묵직하죠?

인문(人文)’, 인류의 문화, 인물과 문물을 이르는 말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하죠. 거기에 유현준 건축가의 전공인 ‘건축(建築)’이 중심에 자리 잡고 여행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는 ‘기행(紀行)’이란 단어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책은 건축물에 대해 건축가 유현준씨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고 적은 글입니다. 처음 책을 마주하고 492쪽이나 되는 두툼한 두께에 살짝 놀랐지만 책을 읽다보면 유현준 건축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건축물을 바라보는 건축가의 전문적인 지식과 일반 독자들에게도 무리 없이 다가오는 편안하고 다정한 설명들로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여는 글에서 유현준 건축가는 자신이 건축 공부를 하면서 감명 받은 서른 개의 근현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서른 개의 건축물을 뽑은 기준은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에 성공한 건축물들’ 이랍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건축물들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사람들의 흔적이라는 것이죠.


서른 개의 건축물을 뽑기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유현준 건축가는 마치 ‘이상형 월드컵’ 하는 것과 같았다고 표현해요. 백 개 가까운 쟁쟁한 후보 중에서 고르고 고른 서른 개의 건축물들을 ‘기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대륙별로 모아서 1부에서는 유럽, 2부는 북아메리카,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아시아에 있는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독보적인 건축가들과 주머니 두둑한 건축주들이 많은 곳에 혁신적인 건축물들이 세워지는 것이 순리인지라 유럽에 12개의 건축물, 북아메리카에는 11개, 아시아에는 7개의 건축물이 이 책에 이름을 올렸어요.




1부에 소개된 유럽 대륙에 세워진 건축물들을 읽다보면 역시 현대 건축사에서 빼놓을 없는 스위스 태생의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라는 건축가 이름이 뇌리에 박힙니다. 빌라 사보아, 롱샹 성당, 피르미니 성당, 라투레트 수도원, 유니테 다비타시옹까지! 유현준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또 르 코르뷔지에다. 정말 지겹게 나온다. 웬만하면 다섯 개까지는 소개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p.121)’라고 하는데 그만큼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이 현대 건축물에 끼친 영향이 크고 혁신적인 건물이었다는 증거겠지요.

건물로 들어서게 되는 입구 풍경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입면, 내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 건축물에 쓰인 재료, 그 건축물이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건축물의 평면도와 조감도는 마치 VR로 가상체험 하듯 건축물을 느끼게 해요. 거기에 유현준 건축가의 다채로운 묘사는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건축 투어하는 기분이 듭니다. 각 건축물의 설명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건축물의 이름과 건축 연도, 건축가와 위치, 주소와 운영시간까지 디테일한 부분까지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유현준 건축가는 '이 건축물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각 장의 말미에 위치를 정확하게 수록했다고 하는데, 건축물을 직접 보지 못한 이들에게, 또 직접 가서 확인하려고 마음 먹은 이들에게는 더 없이 친절한 책이에요.





퐁피두 센터를 통해 ‘하이테크 건축’이 무엇이며 왜 이런 건축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개미지옥처럼 퐁피두 센터 쪽을 향해 빠져드는 건축학적 이유와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에 숨겨진 동양의 음양 사상을 엿봅니다. 또 롱샹 성당에서는 벽이 주인공인 서양 건축과 지붕이 주인공인 동양의 건축의 차이점, 피르미니 성당에서는 한 건축가의 가치관 변화가 건축물에는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통해서는 우리나라 아파트 천장고 2.3미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깨알 건축 상식도 얻게 된답니다. 독일 국회의사당을 통해서는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국격, 퀘리니 스탐팔리아에서는 ‘테토닉tectonic'이란 단어와 함께 건축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게 되죠.

이런 건축학적 지식 외에도 유현준 건축가의 입담에 빵 터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명하면서 르 코르뷔지에나 아이젠먼을 종로에 깡패 조직을 가진 김두한이라면, 프랭크 게리를 만주 일대를 다니며 혼자서 주먹 세계를 평정한 시라소니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건축 비전공자인 일반 독자들 머리 속에 르 코르뷔지에와 프랭크 게리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이해되는 설명이라 할 수 있지요.



2부 북아메리카에서는 11개의 건축물을 소개합니다.

공중권 개념이 만들어진 배경과 함께 제약을 넘어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우뚝 선 ‘시티그룹 센터’, 건축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 이미지는 친숙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물 ‘낙수장’,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인류는 왜 돌을 세우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소개되는 ‘베트남 전쟁 재향군인 기념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건축 설계를 한 루이스 칸의 ‘킴벨 미술관’, 게비온(Gabion)이라는 용어와 함께 불규칙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도미누스 와이너리’, 헷갈리는 발코티와 베란다, 테라스 용어를 말끔하게 해며 소개하는 ‘해비타드 67’ 등 독특하면서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찬찬히 설명하고 있어요.


'인류의 조상들은 왜 죽음을 기리기 위해 노력했을까?'라는 질문과 '공감을 자아내는 기념의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 부분에선 건축물을 통한 인문학적 접근에 감탄했었고, 킴벨 미술관에 방문할 때 어떤 시간대가 방문해야 가장 멋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해가 서쪽에 있을 때)에선 역시 한국인의 감성을 아는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집의 가치를 왜 집값으로만 보는지를 찬찬히 짚어내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쳤어요. 발코니가 확장되어 모든 세대의 모습은 유리창 뒤로 숨어 버리고 각 집들은 개성을 잃어버린 현상을 꼬집으면서 모든 집의 모양이 획일화 되면서 가치관이 정량화되는 문제가 생겨버렸다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인스타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공간에 왜 카페나 펜션 인증샷 남발로 이어지죠.

우리에게 '해비타드 67'같이 마당 같은 공간에서 내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아파트가 필요하다는 말에 큰 공감이 갔습니다. 법규 문제나 건설비 상승, 방수 공사와 단열 처리 같은 현실적인 벽도 함께 언급하셨는데, 법규라는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 되어서 마당 같은 발코니나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가 중산층 주거의 표준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유현준 건축가의 바람에 저도 격하게 동감했습니다.



3부에서는 아시아에 건설된 7개의 건축물이 소개됩니다.

현대 건축계의 진정한 힙스터 이토 도요오의 ‘윈드타워’로 시작해, 일본 전통 건축의 공간 시퀀스와 서양 전통 건축의 기하학적 특성을 융합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아주마 하우스’, 두꺼비집을 짓는 원리를 이용해 완벽한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한 ‘데시마 미술관’, 혁신적인 구조를 이용해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CCTV 본사 빌딩’,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공간적 차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하이테크 양식의 금융회사 사옥인 ‘홍콩 HSBC 빌딩’, 아랍 전통 건축에서 사용되는 마시라비야에서 모티브를 따와 환경과 물질, 현상과 체험자의 심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조율한 장 누벨의 ‘아부다비 루브르’ 등을 다루고 있어요.


아시아에 있는 건축물들을 다룬 챕터라 반가우면서도 우리나라 건축물들은 목록에 없어서 살짝 아쉽더군요. 3부를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도 많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한국에서는 집에서 담장이 아주 중요한 건축 요소가 된다는 점이라던가, 일본 전통 건축에서 진입로가 복잡하게 디자인 된 이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실질적인 이유, 안도 다다오 스타일을 우리나라에스 무작정 따라해서는 안되는 점 등 이었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꼭 책을 읽어보세요!!)


건축의 묘미는 경험하는 자의 신체의 크기, 과거의 경험, 무의식 등에 의해서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 공간은 자세하게 설명된 소설이라기보다는 읽는 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시와 더 비슷하다.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던 30편의 ‘공간의 시’가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닫는 글 중에서, p.485


유현준 건축가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해석을 달아준 30편의 '공간의 시'-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시대가 투영된 건축물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공간에 담아야 하는 마음과 방향을 조심스레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물들을 보며 마냥 부러워할게 아니라 우리 건축물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지어져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확장된 인문학' 책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신 유현준 건축가에게, 또 아름다운 건축물 사진과 도면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편집하고 출간한 을유문화사 담당자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독서 기록을 마무리 합니다.


*본 서평글은 을유문화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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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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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곱씹으며 읽게되는 글, 몇 번이고 사진인지 손그림인지 확인하게 되는 환상적인 그림. 세계적인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가 탄생시킨 현대판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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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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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벨문학상, 부커상에 빛나는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와 2018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부문, 2018 화이트 레이번즈상을 수상한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잃어버린 영혼>으로 그림책을 즐기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두 작가가 <잃어버린 얼굴>로 다시 손을 맞잡았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지나치게 바쁘게 살아가던 주인공 얀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해 영혼이 길을 잃는다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신작 <잃어버린 얼굴>에서는 현대인의 외모지상주의 문제를 건드리며 기묘한 허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원제는 <Pan Wyrazisty>. 폴란드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윤곽이 뚜렷한 남자’래요. 국내판 제목은 전작과 이어지는 듯 <잃어버린 얼굴>입니다. 표지는 전체적으로 연두와 파랑을 띈 단색조의 바닷가 풍경이 펼쳐지는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멀리 보이고 포커싱이 맞지 않은 한 소년의 모습이 앞표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 특유의 연필선(스트로크)이 도드라져 보이죠?



하나의 색으로 톤으로 맞춰진 사진 위에 조각 조각난 픽셀들. 궁금증을 안고 앞면지를 펼치면 더 모호해집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독특한 무늬를 만드는 마블링 그림 위에 조각난 픽셀들, 그리고 차렷 정자세로 서서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 뭘까요??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면지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책장을 넘겼습니다.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는 나오지 않고)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의 사진이 나와요. 다음에는 조금 성장해서 걸음마 하는 모습, 그 다음에는 조랑말을 타고 웃고 있는 아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산타할아버지와 찍은 사진도 있고, 더 늘어난 형제자매와 함께 한 사진, Homecoming 댄스파티 혹은 Prom Party 순간이 포착된 사진도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성장 앨범을 보는 듯 유아기부터 아동, 청소년기를 지나 드디어 검붉은 속표지가 나타나고 펼침 화면을 열면 앞표지 그림이 다시 등장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돼요.



표지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주인공은 아주 또렷한 얼굴을 가진, 한 번만 봐도 기억에 새겨지는 호감형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그가 거리를 나가기만 해도 모두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미소 건네는 그는 일명 ‘또렷한 사람(=Pan Wyrazisty)’입니다.

그 자신도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주 거울을 보고 카메라 기능이 뛰어난 최신형 핸드폰을 샀을 때 신나서 셀카를 찍어댔습니다. 그가 방문한 여러 장소들은 멋진 배경이 되었지요.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숨과 차,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남겼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남겼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또렷한 사람의 일상은 온통 이미지로 남겨지죠. 수많은 그의 사진들 인터넷에서 떠돌았습니다. 지금의 인플루언서나 틱토커, 과거 싸이월드나 하두리 캠 이미지로 얼짱이라 추앙받던 그들처럼요.


그러던 어느 날, 또렷한 사람은 자신의 눈부신 외모에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또렷한 사람이 겪게 되는 변화와, 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에서 우리는 현대인들의 외모지상주의, 성형열풍, 얼짱몸짱 신드롬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고 마지막 페이지의 한 문장, 뒷면지의 픽셀의 이미지에서는 반전의 드라마를 한편 본 것 같은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SNS 세상 속에 불행은 없다고 하죠. 자기 과시적인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미지 조각들을 누군가의 일상이라 생각하며 상대적인 박탈감과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나도 그 이미지 속에 속하긴 바라죠. 핫한 장소에 가서 유명하다는 한정판 음식을 먹고 인증사진을 남겨야 하는 세태가 번집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하는 3포 세대들이 남에게 보이는 환각적인 이미지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이미지를 위해 무엇을 감수하는지, 또렷했던 자신을 잃고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면지 속 마블링 그림과 미키마우스 그림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면지를 채운 마블링 그림은 one and only라 일컬어지는 단 한 장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이고, 대중문화의 상징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는 미키마우스는 마음대로 복제할 수 없는 저작권계의 거물이죠. 무인도에 갇혀도 해변에 미키 마우스를 그려두면 디즈니가 (저작권 소송을 위해) 잡으러 와서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이들이 앞면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면지에 흐려지는 주인공 ‘또렷한 사람’. 이는 전 세계에 단 하나 뿐인 우리가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셀카를 찍으며 무한 복제를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꼬집는 느낌입니다. 또 '또렷한 사람'이라 지칭됐지만 속표지 이후 단 한번도 명확한 얼굴이 나오지 않은 셀카 찍는 주인공과 페이지 마지막을 장식한 빗방울이 맺히고 습기가 차서 빛이 번지는 창가의 모습은 오늘날의 '보여주는' 문화의 공허함을 담아낸 것 같았고요.

곰곰이 곱씹으며 읽을 수 밖에 없는 글, 몇 번이고 사진인지 손그림인지 확인하게 되는 환상적인 그림. 세계적인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가 탄생시킨 현대판 우화의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꼭 <잃어버린 얼굴>을 펼쳐보세요!


📌 본 서평글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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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키비움 J 다홍 -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 J
제이포럼 외 지음 / 제이포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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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잡지’라는 특화된 주제로 벌써 7번째 발행된 잡지가 있습니다.



라키비움J 다홍!

라키비움(Larchiveum)은 도서관 Library와 기록관 Archives 박물관 Museum 의 합성어이고 여기에 J가 더해졌습니다. 이 잡지 서문에 J의 다양한 뜻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가장 아랫줄에 적힌 이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라키비움J는 당신과 그림책 세상을 연결하는(Join) 독자 기반 그림책 잡지이다.

그림책 세상을 연결하는 독자 기반 그림책 잡지. 왜 독자 기반이란 표현이 있을까 궁금하실 텐데, 필진으로 참여한 분들 대부분이 네이버 그림책 카페 ‘제이그림책포럼’의 운영진이자 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림책을 연구하고 정보를 공유하다가 그림책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잡지까지 만든 거죠.

각호마다 레드, 옐로, 민트, 보라, 핑크 등 표지색을 표제호로 붙였는데(예외로 롤리팝의 경우 레드부터 보라까지 4권을 엮은 합본호), 1호부터 4호까지는 오픈 마켓에서 출간 즉시 입소문을 타고 매진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인기 그림책 잡지입니다.


이번 7번째 라키비움J은 ‘다홍’입니다. 총 264쪽으로 앞선 롤리팝(232쪽)보다는 32쪽, 핑크(196쪽)보다는 68쪽이 늘어났구요, 그만큼 수록된 기사와 글들은 더 다채롭고 깊이 있어졌습니다.

표지그림은 ‘우리 창작 그림책 1세대’ 로 꼽히는 이억배 작가님이 맡으셨어요. 책으로 만들어진 집 속 책 읽는 아이가 보이고 그 주위로 놀라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두더지, 호랑이, 토끼, 기린 등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책을 읽고, '책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책 풍선을 잡고 악어는 두둥실 하늘로 날아가려는... 어떤 상상도 모두 허용되는 책의 세계! 그림책 잡지 표지로 찰떡이지요?


판화 그림책의 아름다움과 기법에 따른 특징을 소개해주는 글부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그림책 상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의 이름이 바뀐 이유, 책이라는 물성을 이용한 구멍 난 책에 대한 기사도 흥미로웠고, 부모들은 열망하지만 아이들은 심드렁한 논픽션 그림책에 빠지게 하는 비결, 다채로운 그림책 놀이법, 그림책과 문해력의 관계나 그림책의 힘을 다룬 글, 영어 그림책 중에서도 파닉스 하는 아이가 읽으면 좋을 그림책 총집합, 우정에 관한 그림책을 다룬 기사 등은 그림책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될 만한 글이었습니다.


그림책과 전집, 동화 등의 장르를 불문하고 ‘수원 화성’이 궁금한 부모와 아이들 모두 빠져들게 만들 수원화성 기획기사, 아이 기질 맞춤 그림책 이야기, 칼데콧 상을 네 번이나 받은 거장 폴 O. 젤렌스키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는 라키비움J의 기획력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었고 이시내 선생님이 쓴 ‘기록’에 관한 기사나 하예라 기자님의 음악(슈만)과 그림책을 연결시킨 기사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두 분의 평소 성향과 관심사가 듬뿍 묻어나 있고, 현재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노인경 작가의 인터뷰는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또 ‘엄마표’라는 표현에 대한 편집장 전은주님의 사려깊은 글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었어요.


라키비움J의 '메인디쉬'라 할 수 있는 ‘아르고스(Argos)’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지요?

책이 묶여있는 책등 반대쪽인 책배 쪽을 보시면 아르고스 기사 부분만 표제호 색으로 구별되어 있는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열과 공을 들인 기사들이 수록되있는 부분이죠. 그리스 신화 속 눈이 100개 달린 괴물 아르고스처럼 한 권의 그림책을 100가지 눈으로 모두 다르게 보면서도 그램책을 꿰뚫어보는 하나의 시각을 의미하는데, 이번 '다홍' 호에서 꿰뚫어 본 책은 <간다아아!>였습니다.


코리R. 테이버 작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제목에 담긴 이야기와 원서 제목과 다른 우리말 제목이 다른 그림책들, <간다아아!> 속 주인공 멜처럼 작지만 존재감 뿜뿜하며 그림책 속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을 모은 기사나 <간다아아!>에서처럼 책을 읽는 도중에 책을 돌려보게되는 책들,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책들과 '아이가 좋아하는' 칼데콧 수상작 모음 등 <간다아아!>라는 한 권의 그림책을 통해 다양한 그림책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음을, 하지만 관통하는 하나의 시각으로 깊이 있고 다채롭게 그림책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라키비움J의 전매특허 기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복간된 책, 절판된 책, 또 그림책 별점을 다루는 기사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이래서 독자 기반 잡지구나!' 싶었어요. 절판된 좋은 책이 다시 빛을 볼 수 있기를 염원하고 복간된 책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림책 출판사 입장에서는 예민하고 불편할 별점 평가 부분에 꾹꾹 눌러 담은 기자님들의 글을 보면서 독자의 눈으로 고심하고 평가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취향에 가까운 기자님들의 평가를 찾아 그분들이 추천하는 책을 따로 찾아보는 것도 그림책 선택에 실패하지 않는 전략 중 하나랍니다. 😉



잡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문화적 가치를 기록하는 매체'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라키비움J 다홍을 보면서 이 잡지는 '그림책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림책의 문화적 가치를 기록하는 잡지'라는 수식어가 딱이겠다 싶었어요.

알고 있던 그림책도 다시 보게 만들고, 모르는 그림책은 찾아 보게 만드는 마성의 잡지 <라키비움J 다홍>. 그림책을 애정하는 분이라면,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시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 카페 제이그림책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잡지를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좋은 그림책 잡지를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제이포럼 관계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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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화가에게 project B
존 밀러 지음, 줄리아노 쿠코 그림, 김난령 옮김 / 반달(킨더랜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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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니! 이 책은 그냥 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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