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얼굴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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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벨문학상, 부커상에 빛나는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와 2018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부문, 2018 화이트 레이번즈상을 수상한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잃어버린 영혼>으로 그림책을 즐기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두 작가가 <잃어버린 얼굴>로 다시 손을 맞잡았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지나치게 바쁘게 살아가던 주인공 얀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해 영혼이 길을 잃는다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신작 <잃어버린 얼굴>에서는 현대인의 외모지상주의 문제를 건드리며 기묘한 허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원제는 <Pan Wyrazisty>. 폴란드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윤곽이 뚜렷한 남자’래요. 국내판 제목은 전작과 이어지는 듯 <잃어버린 얼굴>입니다. 표지는 전체적으로 연두와 파랑을 띈 단색조의 바닷가 풍경이 펼쳐지는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멀리 보이고 포커싱이 맞지 않은 한 소년의 모습이 앞표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 특유의 연필선(스트로크)이 도드라져 보이죠?



하나의 색으로 톤으로 맞춰진 사진 위에 조각 조각난 픽셀들. 궁금증을 안고 앞면지를 펼치면 더 모호해집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독특한 무늬를 만드는 마블링 그림 위에 조각난 픽셀들, 그리고 차렷 정자세로 서서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 뭘까요??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면지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책장을 넘겼습니다.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는 나오지 않고)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의 사진이 나와요. 다음에는 조금 성장해서 걸음마 하는 모습, 그 다음에는 조랑말을 타고 웃고 있는 아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산타할아버지와 찍은 사진도 있고, 더 늘어난 형제자매와 함께 한 사진, Homecoming 댄스파티 혹은 Prom Party 순간이 포착된 사진도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성장 앨범을 보는 듯 유아기부터 아동, 청소년기를 지나 드디어 검붉은 속표지가 나타나고 펼침 화면을 열면 앞표지 그림이 다시 등장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돼요.



표지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주인공은 아주 또렷한 얼굴을 가진, 한 번만 봐도 기억에 새겨지는 호감형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그가 거리를 나가기만 해도 모두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미소 건네는 그는 일명 ‘또렷한 사람(=Pan Wyrazisty)’입니다.

그 자신도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주 거울을 보고 카메라 기능이 뛰어난 최신형 핸드폰을 샀을 때 신나서 셀카를 찍어댔습니다. 그가 방문한 여러 장소들은 멋진 배경이 되었지요.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숨과 차,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남겼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남겼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또렷한 사람의 일상은 온통 이미지로 남겨지죠. 수많은 그의 사진들 인터넷에서 떠돌았습니다. 지금의 인플루언서나 틱토커, 과거 싸이월드나 하두리 캠 이미지로 얼짱이라 추앙받던 그들처럼요.


그러던 어느 날, 또렷한 사람은 자신의 눈부신 외모에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또렷한 사람이 겪게 되는 변화와, 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에서 우리는 현대인들의 외모지상주의, 성형열풍, 얼짱몸짱 신드롬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고 마지막 페이지의 한 문장, 뒷면지의 픽셀의 이미지에서는 반전의 드라마를 한편 본 것 같은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SNS 세상 속에 불행은 없다고 하죠. 자기 과시적인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미지 조각들을 누군가의 일상이라 생각하며 상대적인 박탈감과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나도 그 이미지 속에 속하긴 바라죠. 핫한 장소에 가서 유명하다는 한정판 음식을 먹고 인증사진을 남겨야 하는 세태가 번집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하는 3포 세대들이 남에게 보이는 환각적인 이미지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이미지를 위해 무엇을 감수하는지, 또렷했던 자신을 잃고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면지 속 마블링 그림과 미키마우스 그림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면지를 채운 마블링 그림은 one and only라 일컬어지는 단 한 장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이고, 대중문화의 상징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는 미키마우스는 마음대로 복제할 수 없는 저작권계의 거물이죠. 무인도에 갇혀도 해변에 미키 마우스를 그려두면 디즈니가 (저작권 소송을 위해) 잡으러 와서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이들이 앞면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면지에 흐려지는 주인공 ‘또렷한 사람’. 이는 전 세계에 단 하나 뿐인 우리가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셀카를 찍으며 무한 복제를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꼬집는 느낌입니다. 또 '또렷한 사람'이라 지칭됐지만 속표지 이후 단 한번도 명확한 얼굴이 나오지 않은 셀카 찍는 주인공과 페이지 마지막을 장식한 빗방울이 맺히고 습기가 차서 빛이 번지는 창가의 모습은 오늘날의 '보여주는' 문화의 공허함을 담아낸 것 같았고요.

곰곰이 곱씹으며 읽을 수 밖에 없는 글, 몇 번이고 사진인지 손그림인지 확인하게 되는 환상적인 그림. 세계적인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가 탄생시킨 현대판 우화의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꼭 <잃어버린 얼굴>을 펼쳐보세요!


📌 본 서평글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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