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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이 책은 몇 해 전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3년 동안 천주교 주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출간된 산문집인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작가의 신앙경험을 들려주는 글 속에는 그녀의 삶이 스며들어 있다. 세례받고 15년 동안 봉사 한번 해본적이 없던 작가는 자신의 글쓰는 재주로 봉사라는 것을 해보려던 것이 글을 쓰면서 자신이 봉사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말씀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보낸 후 비로소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떳떳하게 인정되었다는 작가는 말씀을 통해 신앙이 견고해짐을 경험한 듯.
믿음이란?
어릴적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청소년기에 세례받고, 세상물정 모르던 순수했던 시절에는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 당시 목사나 장로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가진게 많은 자들은 신앙이 다르게 다가오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맹목적인 믿음이 전부였던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가 되었다. 이 땅에서 개신교의 모습은 부끄러웠고, 그러면서 내 신앙의 모습은 점점 흔들렸다. 나에게 믿음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러다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하는 천주교인들의 모습이 내가 바라던 신앙인의 모습이란 생각에 개종을 하게 되었지만 그곳에도 내가 꿈꾸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분을 믿어야 하고,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살때에야 그 믿음이 옳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은 그것을 믿는 사람을 볼 수 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젠 의문을 가졌던 것이 나 스스로 이해될때까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납득이 되고 그것이 정의로울때여야만 인정이 되었다.
주님,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빈방에 인색해지다 보니 우리 마음 속에서까지 남에게 내줄 빈방이 없어지는 거 있죠. 마음속에도 빈방이야 많죠. 빈방이 많아 사는 게 이렇게 매일매일 허전하고 허망한 줄 알면서도 남에게 내줄 빈방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춥고 시리고 고달플 때 식구나 친구나 이웃의 마음에 있는 빈방에 들어가 쉬며 위안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남을 위해 내가 내줄 빈방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빈방이라면 잠긴 방과 무엇이 다르리까.(본문 중)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의 신앙에 대한 의문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결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식적인 것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하느님은 지극히 당연한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기 바라신다는 것을 말이다. 서로 조금씩 도와가며 살아라는 것이 결국 이웃사랑의 근본이며, 용서도 정의가 바로 서 있을때여야만 허용이 되는 것이다. 작가가 신자가 된 배경에는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는 단체이다.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이 양심의 목소리를 따르고 사회참여를 함으로 스스로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행동은 수백마디의 외침보다 더 큰 전도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믿음은 결국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 책은 나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줬다. 작가의 글 속에 주님께 선한사람을 이리도 빨리 불러 가셨다고 원망하고, 따지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기도 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지만 악착같이 신앙의 끈을 잡고 어떻게든 주님께 가까이 가려는 선한 노력으로 보였고 그 열심이 나에게도 있기를 소망해본다. 작가가 나보다는 윗 세대이지만 그녀의 감성이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 있어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랬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어쩜 같은 분을 흠모하고자 하는 마음 탓일 수도 있으리라.